잊힌 시간의 조각들 — 말해지지 못한 존재와 기억을 복원하는 시간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어두운 배경 속, 양갈래 머리를 하고 고개를 깊이 숙인 작은 여자아이의 실루엣이 한 줄기 희미한 빛을 받고 있다. 아이의 낡고 허름한 옷이 어둠 속에 잠겨 있으며, 그림 전체에서 깊은 슬픔과 고립감 속에서도 피어나는 작은 희망이 느껴진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나에겐 보기 힘든 류의 영화나 드라마가 있다.
아동을 대상으로 착취나 폭력사건, 사고, 다큐멘터리, 영화들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최근에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나를 다그치며 본다.
그만큼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류의 이야기를 접하면,
평소 성격이 유하고 털털하다는 소리를 듣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나는 그 아이에게 빙의된다.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극도의 흥분과 함께 가해자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피했다.
2011년에 개봉한 영화 『도가니』
그 영화조차 최근 몇 년 사이에야 봤으니,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왜 그럴까...
그런 이야기를 마주하면 나는 어느새 다시 그곳,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동시에 떠오르는 건, 우리 집 안방.
그 구석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몸을 웅크리며 엄마를 쳐다보던, 어린 날의 내가 보인다.
아무도 없는데도 누군가 절대 들어서는 안 된다는 듯,
흔들리는 눈빛과 낮은 목소리를 하고는 엄마는 나를 붙잡고 물었다.
"너 혹시 그곳에서 남자 어른이 네 몸을 만지거나, 기분 나쁜 행동을 했던 적이 있니?"
그 압도적인 분위기와 엄마의 행동과 표정과 말투에서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무의식적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반사적으로 고개를 내 저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내가 뭔가 큰 잘못을 저질렀구나’ 하고.
엄마는 그런 나를 끌어안고는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이고... 다행이다... 정말 천만다행이다."
엄마의 토닥임을 받으며 나는 확신했다.
이건 평생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걸.
그 이야기가 뭘까.
나는 다른 글에서 집에 돌아온 지 1년이 지난 후 9cm나 키가 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의 밥은 언제나 쿰쿰한 냄새가 나고 허여멀건 한 감잣국이나 된장국이 나왔으며, 고춧가루에 버무린 단무지 같은 반찬들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배부르게 먹지 못했기에 돌아서면 배가 고팠다.
빵이나 과자 같은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설이나 추석 또는 원장의 생일 같은 특별한 날에나 겨우 배급으로 과자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딘가에서 노동을 하다 잠시 부여된 휴식시간.
내 또래의 소대원 아이가 손에, 그곳에선 구경도 할 수 없었던 잼이 발린 빵을 들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를 쫓았고,
근원지가 바로 성인 남자 소대 아저씨였다.
아저씨를 만나고 오면 그 아이는 항상 손에 과자나 빵이 들려있었다.
의기양양하게 빵을 보란 듯이 먹고 있는 아이를 보며, 배고팠던 나도 그 아이 주변을 서성였고, 결국 나도 그 아저씨에게 눈에 띄었다.
그 아저씨에게 불려 간 그날,
나는 성인 남자 소대 입구 좁은 틈으로 몰려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자기 몸 안에서 습하고 물컹한 기형적인 무언가를 끄집어내더니
마치 귀여운 장난감 다루듯 그것을 의인화하며 나에게 그것을 만지게 했다.
그 아저씨에게 잘 보이려는 듯,
소대 남자 어른들은 연신 나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그 아저씨에게 말을 걸고 농담을 건넸다.
그리곤 나를 힐끗 쳐다보며 기분 나쁜 미소로 나를 훑고 지나갔다.
손에서 느껴지는 축축하고 기분 나쁜 촉감에 마치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한 기분을 느꼈고, 나는 거기서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나를 보고 그 아저씨는 급하게 내 손에 뭔가를 쥐여 주고는 나를 그곳에서 내보냈다.
그게 빵이었는지 과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말할 수 없는 불쾌한 기분에 나는 그 아저씨를 피했지만, 이후에도 바깥세상의 빵과 과자를 들고 있는 아이는 종종 볼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아저씨는 소대장이었거나 총무였던 것 같다.
그곳은 외부 출입이 절대 불가능한 곳이었다.
항상 소등 시간에 그곳의 최고 권력자 중 하나인 중대장이 소대별로 찾아가면, 소대장이 정성껏 맞이하며 점호식을 거행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하나, 둘, 셋이 조금이라도 늦거나 틀리면 바로 단체 원산폭력이라는 기합이나 뺨을 맞아 뼈가 부러지거나, 고막이 터지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점호가 끝나면 나무문과 함께 철창문이 바깥에서 굳게 잠겼다.
단, 소대장의 경우는 외부 출입도 가능했고, 숙식도 가능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곳은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잡혀온 사람들 중 일부는 차출되어 알량한 권력을 부여받았다.
그들은 그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실제 권력자에게 아첨하고, 보란 듯이 잡혀온 사람들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며 폭행을 서슴지 않았다.
그들도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자신의 이득을 위해 기꺼이 도덕을 저버린 이들이었다.
그 소대장에게 아첨하는 총무, 조장 등등...
그들은 뒤틀린 아귀들의 세계에 톱니바퀴를 움직이게 하는 부품이 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내가 있던 아이 소대에서도 소대장과 총무가 있었다.
그들은 항상 향긋한 화장품이 얼굴에 발라져 있었고, 개인 목욕용품을 가지고 있었다.
나와 같은 아이들은, 세안 용품이라곤 공용으로 사용하는 지우개 크기만큼 잘린 빨랫비누가 전부였다. 그것도 아껴 쓰라고, 씻는 시간을 줄이라고 매를 맞았다.
청결이라는 말로 싹둑 머리카락이 잘렸다.
하지만 아이들은 머리에 항상 이가 들끓었고, 겨울에는 영양실조와 추위에
동상으로 손발은 붉게 붓거나 터져 있었고,
얼굴은 하얀 버짐이 꽃처럼 피어 있었다.
그런 알 수 없는 불쾌감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엄마의 질문은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걸 확신하게 했고, 말할 수 없는 비밀로 내 가슴에 깊이 각인되었다.
이후 겉핥기식 성교육이라는 걸 학교에서 받았을 땐, 내가 그렇게 더러울 수 없었고,
그 행위로 먹을 것을 받았다는 게 그렇게 역겹고 용서가 되지 않았다.
지인들이 아무리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줘도 머리로는 ‘그래, 내 잘못이 아니야’라고 생각했지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 생각은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내가 여성학 강의를 접하고 상담을 받고 나서야 겨우 ‘내 잘못이 아니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착취와 폭력적인 사건/사고를 접하면
그 아이가 나 같아서, 아무것도 모르는 그 아이가 나중에 얼마나 자기 자신을 혐오하고 자책할까 하는 생각에 치가 떨리고 이가 갈렸다.
아동 폭력과 착취,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에게 사람들은 쉽게 얘기한다.
“그만 잊어야지.”
“언제 적 얘기야.”
“합의했잖아.”
“너도 어느 정도 마음이 있었던 거 아니야?”
피해자들은 그 목소리를 내기까지,
자신의 행동 하나, 말투 하나까지 되짚고 후회하며 자책하며 자신에게 칼날을 겨눈다.
그 의심과 불안을 통과하고서야
생존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나 또한 이렇게 내 언어로 이야기를 풀어내기까지 4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지금처럼 마음에 ‘그럼에도’를 지니고
사회와 인간에게 따뜻한 시선을 담으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으나, 시간의 망각으로 디테일한 기억들은 희석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 형제복지원에서의 기억을 떠올릴라치면 그날의 감정, 기분, 공기는 몸에 각인되어 어제의 일처럼 되살아난다.
가십처럼 가해자를 두둔하는 2차 가해 발언이나 무심한 댓글을 볼 때면,
용기를 낸 피해자들이 다시 세상으로부터 부정당하고 상처받는다는 사실을 왜 모르는 걸까 하는 생각에 힘겹게 지켜내고 있는 이타심마저 소멸되는 기분이다.
나는 아직도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착취를 마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 있다.
나는 서늘한 시선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변화를 열망한다.
더 이상 내가 겪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우리의 침묵이 또 다른 침묵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의 현실은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작은 희망조차 허락되지 않는 시간일지 모릅니다.
과연 우리는 그들에게 어떤 연대의 마음으로 온기를 더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