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정이 사라진 시간

잊힌 시간의 조각들 — 말해지지 못한 존재와 기억을 복원하는 시간

by 순간의 기록자

[메인 이미지 대체 텍스트: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의 무표정한 얼굴은 내면의 상처와 감정을 억압하는 현실을 나타내고 있다. AI로 생성된 가상의 아이 모습]






회의를 시작하면 한동안 필수품으로 가지고 들어갔던 물건이 있었다.

노트북, 다이어리, 필기구, 그리고 나무젓가락에 보라색 색지가 깃발 모양처럼 붙여져 있던 '지금은 생각 중 : )'이라는 글씨가 쓰인 것이었다.


지금의 내 성격은 내향적이고

인상은 짙은 눈썹에 쌍꺼풀, 존재감 확실한 광대뼈까지, 거기다 웃는 상도 아니다 보니 영판 화난 사람 얼굴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한 마디로 마음만 먹으면 눈으로 욕할 수 있는 그런 얼굴이랄까.


업무특성상 협업을 많이 하는 구조라 회의를 많이 한다. 회의 중에는 자연스레 진지한 표정이 된다. 의견을 쉽게 내는 성격도 아니어서 더 그렇다. 다양한 업무 경험을 중요 시 하는 곳이기에 매년 팀이 바뀐다. 이제는 짧은 연차도 직급도 아니다 보니 내 눈치를 살피는 동료가 생길 수밖에 없다.


노력을 한다고 해도 꼭 한 번씩 오해 아닌 오해를 사는 경우가 발생한다. 작년에도 어김없이 오해를 사는 일이 발생했다.


최대한 팀원에게 오해임을 설명하고는 넋두리하듯 이제는 다른 팀이 된 팀장에게 털어놓았다. 고맙게도 해결책으로 만들어준 것이 저 깃발이었다. 덕분에 동료에게 웃음을, 개인적으로도 심적 도움이 많이 되었다.

지금이야 이렇게 담담하게 말하지만 이 문제로 꽤 오랜 시간 근심이 깊었다. 그렇다면 왜 나는 이렇게 무표정한 얼굴을 하게 되었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형제복지원에 잡혀가기 이전에 나는 누가 봐도 호기심 많고, 얼굴에 장난기가 그득한 외향적인 아이였다.

동네 아이들이란 아이는 다 모아서 딱지치기, 나무 타기, 슈퍼맨 놀이 등을 하던 말괄량이 삐삐 그 자체였다.


형제복지원 그곳은 곧이곧대로 느껴지는 감정을 드러냈다가는 득 보다 실이 더 많은 곳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던 내 또래의 겁 많고 눈물이 많아 자주 맞았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밤에 침대에다 실수를 했다.


다음 날 아침 그 아이는 잔뜩 겁을 집어먹고는 얼이 빠진 듯한 얼굴로 침대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 아이를 보는 순간 나는 숨이 멎는 듯했고 호흡이 가빠왔다. 흔들리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누구라도 '나 좀 도와달라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떤 상황이 일어난다는 걸 알았기에, 나 또한 두려움에 휩싸인 채 온몸이 굳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아이는 곧 총무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앞으로 질질 끌려가 인간 샌드백이 되어 사정없이 따귀를 맞았다. 그러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머리채를 잡고 이리저리 휘둘렀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를 외치며 절박하게 용서를 빌던 아이는 구석에 몰려 울음이 멈출 때까지 몽둥이로 매타작을 당했다.


그 실수는 내가 될 수도 우리 소대 누구라도 될 수 있었다. 나는 그 이후로 아무리 배가 고파도 저녁에는 물을 마시지 않았다.


잘못 맞아 한쪽 고막이 터진 그 아이의 어깨에는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해 누렇고 길게 굳어버린 고름자국이 생겼다.


그들의 심기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항상 부동자세로 맞아야 했다. 표정은 항상 무표정으로 고정, 얼굴은 정면, 시선은 아래, 열중쉬어나 차렷 자세. 어떤 폭력으로 자세가 흐트러지면 재빨리 최초의 그 기본자세로 돌아와야 했다.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지거나, 소리를 내거나, 눈물을 흘리는 건 폭력의 다양화와 시간만을 더 지속시킬 뿐이었다.


매일을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

숨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웠고, 언제 또 다른 폭력이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나는 점점 더 경직되어 갔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곧 죽음과 같았다.



“아프냐?”
“아닙니다!”
“그래? 안 아파?”
- 허공을 가르는 '휙휙' 하는 몽둥이 소리. 맞은 만큼 딱딱하게 굳은살이 박혔던 엉덩이.


“아닙니다! 잘못했습니다!”
“뭘 잘못했는데?”
“잘못할 짓을 왜 하는 데!”
- 철썩이는 날카롭고 둔탁한 소리만큼 암흑 속에 번쩍이던 별, 맞은 만큼 열감으로 벌겋게 부어오르던 뺨.


“대가리 박아, 이 썅년들아 내가 너무 오냐오냐 해줬지?”
“잘못했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 머리에 피가 몰려 호흡하기 어려웠던 숨. 발길질이 엉덩이에 닿으면 우리는 도미노처럼 우르르 무너졌다.


“울어? 뭘 잘했다고 울어!”
“셋 셀 때까지 안 그치면 내가 오늘 너 반 죽여 놓는다. 하나, 둘, 셋”
- 울음을 참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깨물었던 어금니. 울음이 터지거나 눈에 고인 눈물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나는 그 당시 숨을 참거나 들이마시는 게 버릇이었다.



상상이 될까, 일상다반사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머리채가 잡혀 이리저리 흔들렸다.


맞아서 찢어진 입술과 입안을, 혀를 굴려 더듬으며 인상을 찡그리고 피 맛을 느끼는 게 일상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대가리를 박는 것”보다 좀 더 빨리 끝나는 엉덩이 - 그 당시 하도 맞아서 굳은살이 박여 훨씬 덜 아팠다. -를 맞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3년을 보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 선생님, 어른들과 대화하는 일이 있을 땐 항상 지적을 받았다. 특이하다는 듯, “넌 그 ‘다, 까 체’를 어디서 배웠니? 꼭 군대 갔다 온 사람처럼 말을 하네. 하하"


초등학교 5학년인 내가 들었던 말이다.

조금이라도 경직이 되면 군대식 말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그곳에서의 시간은 말괄량이 삐삐의 영혼을, 아주 천천히 질식시키듯 완벽히 내 몸에서 밀어냈다.



고백하자면, 그게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인지를 깨닫고 이내 그러기를 접긴 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어릴 때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마음으로 싸움을 걸어오면

악으로 깡으로 더한 폭력으로 맞대응을 했던 적도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심각한 부작용으로 감정표현에 어려움을 겪었다.

누가 다그치기라도 하면 머리가 하얘졌다.

억울함도, 반박도, 말로 옮기지 못해 속으로만 곱씹는 날이 많았다.



나의 폭력의 역사가 그곳 형제복지원에서 마무리되었다면,

어쩌면 지금의 내 무표정한 얼굴이

조금은 다른 표정으로 사람들을 대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봤다.



하지만 어디 현실이 내 마음 같을까.

부모님의 울타리가 없는 세상은 너무나 척박했다.


폭력의 주체와 방식, 억압의 수위만 달랐을 뿐, 폭력은 여러 모습으로 내 주변을 맴돌았다.


때로는 월급을 체불하던 사업주의 얼굴로,

때로는 믿었던 사람의 배신으로,

아니면 생계를 미끼로 부정거래를 요구하는 등에 얼굴로.

삶의 마디마디마다 나를 잡아 흔들었다.



그럼에도 감사한 건

그 흔들림에도 나름의 기준과 원칙으로,

더도 덜도 아닌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것.’이었다.


또한, 감정을 말로 옮기는 일이 어려웠던 내가, 좋은 사람들에게서 영향을 받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점점 나아지고 있다.

물론 생동감 있는 표정까지 담을 수 있었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말이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나도 모르게

내려놓은 긴장의 틈새로 그 무표정이 불쑥 튀어나올지 모른다.


그럴 땐 ‘지금은 생각 중 : )’ 깃발이 다시 필요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노력을 멈추지 않는 이상,

그동안 나아졌고, 앞으로도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본다.



작년 이후로는 '오해를 사지 않는 거냐고?' 묻는 분도 계시겠지요?

현재는 잠깐, 일시 멈춤 상태랍니다.


조직의 배려로 제가 안식년을 지내고 있는 상황이라

몸도 마음도 올해는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거든요.


혹시 여러분도

마음을 대신 말해줄, 작은 깃발이 필요했던 순간이 있으셨는지? 여쭤보고 싶네요.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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