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은 문서상 공식적인 내 생일이다.
엄마아빠는 내가 태어난 양력 9월 어느 날의 음력 날짜인 8월 15일을 공식 생일로 등록하셨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나의 생일을 양력 8월 15일로 알고 축하해 주신다. 광복절이 생일이라 생일을 잊을 수 없다는 친구부터, 자랑스러운 대한의 딸이라며 놀라워하는 지인까지 축하 문자는 다양하다. 실제로 가족들은 나의 생일을 양력 생일인 9월에 챙기지만, 여러 사람이 광복절에 생일을 축하해 주시기에 나는 본의 아니게 두 번씩 생일 축하를 받는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인 의미 있는 광복절이자 나의 공식 생일이었지만, 싱가포르에 있다 보니 대한민국 광복 80년보다는 싱가포르의 8월 9일 국경일(National Day) 행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싱가포르의 국경일은 1965년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한 날을 기념하고 주권 국가로 출발한 역사적인 순간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광복절인 샘이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국경일을 축하하기 위해 많은 행사를 준비한다. 군사 퍼레이드 및 사회단체의 퍼레이드와 함께 불꽃놀이, 항공쇼 등 다양한 이벤트가 마련되어 있다.
싱가포르에 오래 산 친구는, 싱가포르가 국경일 퍼레이드에 (NDP, National Day Paraid) 진심이라고 했다. 처음엔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느낄 수 있었다. 얼마나 진심인지를..
언제부터인가 SG60이라는 글자가 곳곳에 보이기 시작하고(싱가포르 SG 독립 60년이라는 뜻이다), 7월 언젠가부터는 싱가포르 국기가 도시 전역에 휘날리기 시작했다. 'Here We are'라는 노래가 상점 곳곳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싱가포르 시청 앞 넓은 잔디 광장은 대규모 스타디움으로 변신했다. 인스타그램에는 국경절 퍼레이드 예행연습 시간과 이를 무료로 볼 수 있는 장소를 멋진 동영상과 함께 소개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좋은 구경을 놓칠 수 없는 아들과 나는 7월 어느 토요일, 마리나베이에 국경일 퍼레이드 예행연습을 보러 갔다. 이미 6시부터 사람들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기 시작했고, 푸드코드는 사람들로 꽉 찼다. 제트기가 하늘을 갈랐고, 헬리콥터가 싱가포르 국기를 달고 날았다. 바다에는 멋진 배들이 지나갔고 해군이 손을 흔들었다.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자 간헐적으로 폭죽이 터졌고, 8시 마리나베이 앞의 멋진 분수쇼가 끝나자 본격적으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그야말로 미친 듯이 터지던 폭죽은 입을 다물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폭죽을 한번 터트리는데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어마어마한 폭죽을 7월 한 달간 매주 토요일마다 8월 9일 본 행사 때까지 매번 터트린다는 것만으로도, 싱가포르의 부와 국경일에 대한 진심을 알기에 충분했다.
8월 9일의 본식은 더 화려하다는 소문에 이를 보러 시내로 가고 싶었지만, 꼬꼬마 아들을 데리고 그 인파를 헤쳐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 친구네 가족이 추천해 준 대로, 유튜브 스트리밍으로 국경일 퍼레이드 생중계를 보기로 했다.
멋진 항공쇼와 스카이다이빙을 보려는 마음으로 시작한 유튜브 시청이었지만, 퍼레이드 생중계를 보며 국경일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는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육해공군 군대들이 퍼레이드를 하며 얼마나 싱가포르가 국방에 신경 쓰며 국민을 안전하게 지키고 있는지, 그랩과 같은 싱가포르 기업들이 얼마나 싱가포르 경제에 기여하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다인종 국민을 포용하며 지내는지, 그로 인해 싱가포르가 얼마나 성장하고 앞으로 더 발전되어 나갈 수 있는지, 노래 하나하나, 퍼포먼스 하나하나, 이벤트 하나하나에 우리는 하나라는 메시지를 가득 담고 있었다.
멋진 불꽃쇼가 끝나고 모든 사람들이 'Here we are'라는 노래를 부를 때는, 나도 모르게 감정이 벅차올라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성대하고 긍정의 메시지가 가득 담긴 싱가포르 국경일 행사에 반해, 며칠 후 인터넷 뉴스로 접한 한국에서의 광복 80주년 행사는 무척이나 엄숙했다.
왜일까?
우리나라의 광복은 왜 엄숙한가? 싱가포르의 광복처럼 희망찰 수는 없던 것일까? 너무도 당연했던 우리의 광복에 대해 갑자기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궁금증이 터져 나왔다.
같은 독립이지만, 싱가포르는 스스로 살아남아 발전할 수 있는 출발점이 강조되어 국민들에게 우리가 해냈다는 자부심을 주는 독립이었다. 특히 자본의 땅인 말레이시아에서 독립하며 무일푼으로 이루어낸 성장이었던 만큼 싱가포르가 견뎌낸 60년의 세월은 축하하고 서로 응원하는 따뜻하고 즐거운 독립이었을 것이다.
그에 반해 우리나라의 독립은 희생과 아픔의 기억이 강하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일제 강점기의 고통에 맞서며 쟁취한 독립이며, 그들의 희생에 머리 숙여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한다. 그렇게 어렵게 이루어 낸 독립이지만, 한반도는 이내 분단되고 곧이어 전쟁까지 일어났으니 역사적으로 우리의 광복은 엄숙하게 우리의 과거를 성찰하며 미래를 약속하는 날이어야 했다.
마침 나는 소설 '파친코'를 읽고 있었다. 광복 이후에도 여전히 고통받는 일본에서의 조선인과 대한민국의 광복 후 분단에서 오는 아픔을 겪고 있는 가족들의 삶을 읽으며 우리의 광복은 결코 신날 수만은 없었구나 새삼 느꼈다.
아직도 독립운동가의 많은 후손들이 어려운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한다.
내가 지금 이렇게 편안하게 아들과 한국에서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살 수 있는 것은, 그들의 숭고한 희생 없이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새삼 오늘 하루 아무 일 일어나지 않는 매일에 감사하며, 나의 공식 생일 815에 또 다른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기며 고개 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