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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호스트는 이런 마음일까?

by 세상에

아들의 10월 중간방학 때 가족과 놀러 갈 궁리가 한창이었다. 여러 후보지 가운데 강력하게 끌리는 곳이 있으니, 그곳은 바로 호주의 서쪽에 위치한 퍼스(Perth)였다. 한국에서 직항은 없지만, 싱가포르에서는 비교적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곳이고 (물론 5시간의 비행이 있긴 하다) 빼어난 자연경관이 눈앞에 펼쳐지는 곳이라, 싱가포르에 있는 한인들에게 이곳은 Must go 관광지이기도 하다.


가장 고민스러웠던 것은 숙소였다. 남편이 함께 할 수 없는 애매한 시기였기에, 친정아버지와 초등학교 4학년 조카, 그리고 다섯 살 아들을 팀으로 짰다. 진정 남녀노소가 함께하는 여행이기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숙소를 고르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에어비앤비에서 딱 마음에 드는 호주 전형적인(?) 가정집을 발견하였다. 인상 좋은 70대 할아버지가 호스트인 이곳은, 슈퍼마켓과 한국 식당의 접근성이 좋을 뿐만 아니라, 사진상 군더더기 없이 정돈된 방과 발코니와 연결된 부엌, 그리고 작은 뒷마당이 참 마음에 들었다.


여행 일정상 중간에 2박을 다른 곳에서 묵었다가 다시 그 숙소에 숙박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호스트 할아버지에게 이런저런 사정을 메시지로 이야기했다. 아침을 일찍 시작하시는 호스트 할아버지는 오전 7시부터 메시지에 답을 주셨고, 여러 상황들을 고려하여 우리 가족이 그 숙소를 중간 퇴실 없이 쭉 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물론 금액적인 부분도 호스트 할아버지와 직접 이야기하여 잘 정리할 수 있었다. 왠지 모를 배려심과 따뜻함에 내가 호주에 있는 호스트 할아버지의 집에 그냥 놀러 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방 두 개짜리 싱가포르의 우리 집 에어비앤비는 지난 7월부터 만실이었다. (실제 싱가포르에서 에어비앤비는 불법이다.) 동생이 7월 한 달 와 있었고, 8월 초 시댁 형님과 시조카가 일주일을 그리고 이번 주말에는 나의 사촌동생이 4일을 와 있기로 했다.


한국에서 온 여행객을 맞이하는 호스트는 입실 전후로 괜스레 바쁘다.

일단 침대 시트 빨래, 베갯잇 빨래를 한 후, 화장실 청소를 한다. 그리고 싱가포르에서 잘 먹을 수 있는 열대 과일이나 로컬 간식을 사서 냉장고에 쟁여둔다. 숙박 3일 전에는 입국신고서 작성을 미리 안내하고, 미리 깔아 두면 좋을 앱, 생각지 못한 준비물, 근래의 날씨와 옷차림에 대해 미리 알려준다. 싱가포르에 와서 하고 싶은 일이나, 보고 싶은 것들을 미리 알려 달라고 하고 그에 따른 여행 팁이나 적절한 루트를 알려주기도 한다.


여행객들이 입실을 하고 난 다음에는, 씻을 때 보일러를 켜고, 씻고 난 후 보일러를 끌 것, 남은 음식은 냉장고에 바로 넣을 것, 외출 시 에어컨은 꼭 끌 것 등 몇 가지 집안 규칙을 공유한다. 또한 아들이 잠드는 시간과 학교 가는 시간 등 아들의 일정을 공유하며, 현관문 비밀번호와 콘도 출입키, 그리고 현금 100달러를 지급한다. 싱가포르 내 관광지에서는 거의 대부분 카드가 가능하지만, 가끔 현금이 필요한 호커센터가 있기 때문에 환전을 해오라고 하는 대신 내가 소액의 현금을 준다.


우리 집에 머무르는 동안 여행객들의 여행 취향을 존중한다.

동생네(여, 40대)는 조카(남, 초4)와 아들(남, 5세)이 외부 활동을 좋아했던고로, 낮에는 주로 바깥 활동을 열심히 하고 밤 10시가 되면 소등 후 모두 취침에 들었다. 물론 아이들을 재우고 동생과 나는 OTT 드라마를 보기도 했다.

시댁 형님(여, 50대)과 시조카(여, 30대)는 하루 종일 관광을 다니셨다. 아침에 나가 저녁 늦게 들어오는 알찬 일정이었다. 아마 나와 아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더더욱 밖으로 다니셨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다 밤이 되면 시조카는 맛있는 야식을 사들고 와서 캔맥주를 즐겼다. 덕분에 나도 아들을 재우고 매일 늦은 밤까지 재미난 수다를 떨 수 있었다.

이번 주말에 올 사촌동생(남, 30대)은 혈기왕성한 젊은이답게, 러닝 할 수 있는 코스와 클라이밍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미리 찾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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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들로 풍성한 우리집. 시끌시끌 보끌보끌>


각자의 개성이 가득한 여행을 마치고 나면, 여행객들은 짐을 싸기 시작한다.

여행 트렁크 안에 풀어놓은 짐이 싹 들어가고 거실 한편에 트렁크가 줄을 서면 그제야 이별을 해야 할 때임을 느낀다. 물론 함께 있을 때 마냥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서로 배려하고 조심하는 덕에 불편함은 있다. 하지만 한집에 사람이 복닥복닥 있는 기쁨이, 약간의 불편함을 충분히 상쇄시킨다. 콘도 로비에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는 여행객들을 배웅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시원함과 허전함 그리고 슬픔이 공존한다. 썰렁한 방, 조용한 집, 비어있는 옷장.... 그리고 아들과 나.


안녕.jpg <배웅하는 우리는... 좀.. 괜히 남겨진 것만 같다>


다음 날이 되면, 나는 여행객들이 썼던 침대 시트를 빨고, 베갯잇을 빨고, 화장실 청소를 한다.

쨍한 햇볕에 빨래를 널어두고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자니, 이게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마음인가 싶다.


일기.jpg <여행객들은 아들에게 선물을 남긴다. 그래서 아들은 여행객들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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