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동생이 싱가포르에 놀러 왔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컴퓨터로 몰래 게임을 즐기던 코찔찔이 사촌동생이 더 이상 아니었다. 떡 벌어진 어깨, 거뭇거뭇 콧수염, 건강한 서른다섯의 젊은 청년이 되어있었다.
사촌동생은 매일 동네 호수공원을 뛰고 나서, 간단히 물샤워를 하고 웃통을 벗고 그대로 콘도 수영장에 뛰어들어 더위를 식혔다. 주말에는 동네 클라이밍장을 찾아 대여섯 시간 로컬 사람들과 클라이밍을 한 후 시내에 있는 바에 가서 싱가포르 슬링을 즐기다 집으로 돌아왔다. 다섯 살짜리 조카와 놀아 줄 때는 정말 임팩트 있고 신나게, 청년 삼촌의 '간지'를 제대로 뿜으며 놀았다.
아들을 학교에 보낸 월요일 점심에는, 사촌동생과 부내 나는 칠리크랩을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촌동생은 싱가포르 환경이 너무 좋으니 힘들겠지만 더 머무르는 건 어떨지 조심스래 물어왔다. 나 역시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나, 여러 가지 걸리는 것들이 많았다. 서울에서의 나의 삶. 남편의 삶. 이래저래 많은 생각을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특히 그중 가장 예측이 안 되는 부분은 이것이었다.
과연 엄마 혼자 아들의 사춘기 시절을 잘 감당해 낼 수 있을까?
누나, 아들들은 사춘기가 되면 신체의 변화를 느껴. 신체의 변화라는 것이 몽정이나 자위의 문제를 뜻하는 것은 아니야. 어느 순간이 되면 자기 힘이 세 진 것을 느끼는 순간이 온다는 거지.
아들은 본능적으로 난간을 보면 올라가고 싶어. 예전에는 그 난간을 올라갈 수 없어서 엄마의 도움을 늘 받아야 했지. 그런데 어느 날 그 높은 난간을 내가 혼자 올라갈 수 있게 되는 거야. 야구공을 가지고 놀 때면 공이 슝 가다가 톡 떨어졌어. 그런데 어느 순간 야구공을 던지면 유리창이 깨지기 시작해. 장난으로 친구들을 밀치거나 툭툭 쳤는데, 어느 순간 친구가 저 멀리 나가떨어지고, 사고가 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거야.
그리고 계속 실험을 해봐 어디까지 되나. 내가 나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어디까지인가 계속해보는 거야. 친구가 다치고 유리창이 깨지면 그제야 '아,, 내가 여기까지 할 수 있구나, 하지만 더 이상은 위험하구나' 이러면서 본의 아니게 사고를 치고 다녀.
평범한 고등학생 피터파커가 갑자기 거미에 물려 힘을 얻어 벽을 탈 수 있는 스파이더맨이 된 것처럼, 사춘기의 아들들은 갑자기 자기에게 힘이 생긴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오는 거야. 그리고 그 힘이 엄마보다 세 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그리고 깨달아. 내가 엄마를 힘으로 이길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구나. 엄마란 어쩌면 보호해줘야 하는 존재일지 모른다는 사실 말이지.
예전에는 뭘 잘못해서 엄마한테 맞으면 아파서 잘못한 것을 뉘우치지만, 그때쯤 되면 하나도 안 아프지만 내가 무언가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오는 거야. 신기하지?
그럼 아빠는 아들에게 뭐야? 이 꼬맹이가 나한테는 반말을 하고, 아빠에게는 존댓말을 해.
누나. 그건 아빠를 자주 보지 못해서 혹은 아빠가 어려워 그런 건 아니야.
아빠란 존재는 이 남자 세계의 '왕'이라는 뜻이지. 조카의 세상에서 서열 1위! 나보다 크고 나보다 힘이 세고, 나보다 뭐든 잘하는 남자, 바로 아빠!!
남자 세계에서의 짱에게 리스펙의 표시로 존댓말을 하는 거야. 조카에게 지금 아빠는 서열 1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 아주 서열 정리가 확실하네.
그런데 아빠한테 뭐라고 말도 잘 안 해. 같이 있을 때 표현도 안 하고.
당연하지. 아빠는 남자 세계의 왕이라 범접할 수 없는 존재야. 그런 존재에게는 미주알고주알 이야기 하지 않아. 용건이 있으면 그때 이야기 하는 거지. 하지만 그 존재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함을 느껴. 그게 아빠야.
다만 그와 동시에 조카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영웅이 있을 거야. 예들 들면 초등학교 4학년 사촌형 말이야. 그 형아가 좋아하는 건 다 따라 하고 싶고, 그 형아가 잘하는 것은 자기도 잘하고 싶어 할 거야.
이건 이기고 싶다의 마음은 아니야. 그 형아처럼 멋지게 보이기 위해 형아가 잘하는 것을 따라 하는 거야. 예를 들어 그 사촌형이 포켓몬 게임을 잘하니까, 조카도 잘하고 싶고, 그 형아가 줄넘기를 잘하니까, 조카가 기를 쓰고 줄넘기를 하는 이유야. 물론 그 형이 그 특정한 것에 관심을 안 갖는 순간, 꼬맹이 조카도 안 할 거야. 자신의 영웅이 그걸 안 하니 더 이상 멋질 일이 없는 거거든.. 하하
그러면 아들에게 엄마는 뭐야? 서열이 낮다는 건가?
아니. 누나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그만큼 친하고, 애교를 부려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거야.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고, 뭐가 갖고 싶은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 편하게 이야기해도 되는 그런 존재 말이야. 엄마와 생활 속 작은 이야기들을 계속 나누면서 정서적 유대감을 켜켜이 쌓아가고 있는 중일 거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을 것이라 믿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엄마는 알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 지금 누나가 조카랑 싱가포르에서 24시간 붙어있으며 누나가 생각지도 못했던 엄청난 유대가 쌓이고 있을 거야. 함께 등원하는 그 순간, 하원 후 놀이터에서 노는 그 순간, 같이 맛있는 메뉴를 골라 밥을 먹는 그 매 순간마다 누나와 조카의 유대관계는 점점 견고해지고 있을 거야.
엄마와 그런 세세한 유대관계를 쌓을 때 아빠와는 어떻게 유대관계를 쌓아야 하는 거야?
아빠랑은 엄마와의 관계처럼 세세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 남자들의 세계 왕에게 세세한 이야기를 하겠어? 다만 아빠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기억들이 생길 거야. 예를 들어 등산할 때 앞서가는 아빠의 뒷모습, 줄넘기 2단 뛰기를 쌩쌩 돌리는 아빠, 한강에서 같이 축구하는 모습 뭐 그런 거 말이야. 그런 모습들이 쌓이고 쌓여 아빠라는 존재는 점점 내 마음속 서열 1위로서의 자리매김을 굳건히 하게 되는 거야.
물론 어느 순간 아빠가 나보다 힘이 약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너무 슬퍼지긴 하지만 말이야..
그나저나 왜 아들들은 대답을 안 하는 거니? 몇 번을 불러도 대답을 안 해.
하하. 단순해. 아들은 뭐든 귀찮아. 그냥 귀찮아. 심리적으로 꽁해서, 실제로 못 들어서, 뭐 그런 게 아니고 그냥 입을 열어서 '네'라고 말하는 것이 귀찮은 거야. '양치질해라' 그래도 안 해. 왜냐 귀찮아서.. 누나가 '오늘 학교에서 재미있는 게 뭐였어?'라고 물어보면, 생각하기가 귀찮은 거야. 그리고 그것을 대답하기가 귀찮은 거지. 하지만 나중에 점점 알게 돼. 해야 하는 것은 귀찮아도 해야 하는 거구나. 대답을 안 하고 싶어도 엄마가 대답을 듣고 싶어 하니까 노력해서 이야기하는 거야.
마음 상해하지 마. 그냥 아들들은 만사 귀찮은 놈들이야, 지가 진짜 좋아는 것 빼고는..
조카가 자꾸 양치질할 때마다 포켓몬 양치질 앱을 켜지? 양치질은 귀찮아 죽겠는데, 해야는 되겠고 그래서 그 앱을 켜는 거야. 적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 귀찮음을 상쇄할 수 있거든.
그리고 뭔가 잘못한 게 있으면 미안하다고 하고, 부탁할 게 있으면 정중하게 하라고 하는데 잘 못해.
당연하지. 아들은 자존심이 있어. 남에게 부탁하는 말, 미안하다는 말 이런 건 정말 자존심을 낮추고 많은 용기를 가지고 해야 하는 말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연습을 해야 해. 깨지고 부딪히고 자신을 낮추는 연습은 정말 많이 필요하지. 특히 외동들에게는 더 필요하니 누나가 더 신경 써.
언제부터 이렇게 철이 들었니? 이 꼬꼬마가 너처럼 바른 생각을 하며 클 수 있을지 늘 노심초사다.
음.. 부모에 대한 마음, 자신에 대한 믿음은 그냥 자연스럽게 생겼던 것 같아. 가정이 평안하고 부모가 올바른 생각을 하고 아이를 바라본다면, 자연스럽게 사춘기를 통해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지 않을까? 누나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보니까 우리 조카는 사랑으로 잘 크고 있는 것 같다.
철부지로만 보였던 나의 사촌동생은 오늘 나의 심리/육아 상담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