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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집이 휑 했다

by 세상에

여동생네가 집에 온 후로 적막하던 우리 집은 복작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끊임없는 웃음소리, 장난감 뚝딱 거리는 소리, 보글보글 동생이 요리하는 소리, 모처럼 사람이 사는 집 같았다.

감사하게도 아이들은 잘 지내주었고, 나와 동생도 가사 분담이 아주 잘 이루어졌다.


동생이 요리를 하면 나는 청소를 했고, 내가 설거지를 하면 동생은 빨래를 널었다.

내가 아들을 챙길 때면 동생은 빨래를 개켰고, 동생이 조카를 챙길 때면 나는 아이들 간식을 준비했다.

주부 5단과 주부 1단은 나름 호흡이 잘 맞았다.

<요리를 잘했던 동생은 구세주와 같았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동생과 같이 장을 보고 집에 들어와 청소를 했다.

청소를 하고 나면, 커피를 한잔 끊여 놓고 내내 수다를 떨었다.

우리의 수다는 사흘 내내 이어졌다.


엄마 이야기, 아빠 이야기, 조카들 이야기, 교육이야기, 이웃집 누구누구 이야기, 싱가포르 생활 이야기, 동생의 미국 생활 이야기, 서로의 습관 이야기, 내 회사 이야기, 동생의 바람 이야기, 어렸을 적 이야기, 사춘기 시절 이야기, 남편들 이야기...

이야기하다가 울고, 이야기하다 웃고, 그렇게 내내 같이 수다를 떨었다.


내가 몰랐던 동생의 아픔이 있었고, 내가 몰랐던 동생의 기쁨이 있었다.

참 가까운 자매였지만, 사흘 내내 이야기를 하며 동생을 더 알아 갈 수 있어 행복하고, 가슴 아프고, 미안하고, 자랑스럽고 그랬다.


한국에 계신 엄마아빠와 영상통화를 하면서는 참 깜짝 놀랐다. 우리 4명의 얼굴이 그렇게 닮아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우리는 가족이었지만, 어느덧 내 아들과 내 남편만 생각했던 건 아닌가 싶어서 뜨끔하기도 했다.


그렇게 통화를 하다가 갑자기 친정 부모님도 이 시간을 싱가포르에서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너무도 우리 가족스럽게 친정 아부지를 급히 싱가포르로 호출했다. 다행히 이틀뒤 싱가포르행 비행기 표가 있었고, 아부지는 혼자서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서 그랩을 타고 싱가포르의 우리 집으로 날아오셨다.


집이 더 복작 복작 해졌다.

언제 우리 자매가 아빠와 셋이 온전히 보낸 적이 있었던가? 70이 넘은 아빠와 40대의 딸들은 또 내내 수다를 떨었다. 아부지 문방구 시절 이야기, 우리 어렸을 적 이야기, 친정 엄마 흉보기, 했던 이야기 또 하고 또 해도 늘 재미있었다.

<늘 한잔이던 밀크티가 3잔이 되었다>


아이들을 픽업하고 놀아주시는 아부지 덕분에, 동생과 나는 밀린 OTT 드라마를 마음 편히 볼 수도 있었다. 아부지가 건강하심이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러다 남편이 싱가포르에 왔고, 아들과 남편 그리고 나는 일주일 동안 인도네시아로 여름휴가를 떠났다. 친정 아부지까지 한국으로 돌아가신 후, 일주일 비어있는 집은 동생네 가족이 휴가처로 사용했다. 한국에서 제부와 첫째 조카가 싱가포르로 여름휴가를 온 것이다.


동생네 가족은 우리 집에서 원도 한도 없이 싱가포르를 즐긴 모양이다. 싱가포르의 랜드마크를 돌고, 집 앞 공원에서 운동을 하고, 아이들을 위한 체험도 즐기고, 콘도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집 주면 쇼핑몰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우리 가족이 길리와 발리에서 해변을 즐기는 동안 동생네는 싱가포르 소식을 전해왔다.

<신이 난 조카들. 큰 놈 작은놈 모두 행복해서 이모는 덩달아 기뻤다>

그렇게 일주일 우리 가족은 인도네시아에서, 동생네 가족은 싱가포르에서 각각의 휴가를 마치고 동생네는 한국으로, 나와 아들은 싱가포르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돌아온 싱가포르 집의 문을 여는데, 집이 휑 했다.

이렇게 우리 집이 휑 했었나? 늦은 밤이기도 했지만, 사람들로 가득했던 집이 적막강산이었다.


짐을 풀고 아들을 재우고, 식탁에 앉아 집을 둘러보는데 동생의 흔적이 가득했다.


언니

여행 갔다 와서 청소하기 힘들까 봐 이불 빨래 다 해 놨어. 혼자 몇 날 며칠을 빨아야 하잖아.

우리 아들들이 과일을 너무 많이 먹어서 가기 전에 내가 장도 봐 놨어. 날도 더운데 혼자 수박 사서 낑낑거리며 들고 오는 거 힘들지? 수박 소분해서 넣어 뒀으니 시원하게 먹어.

아참. 언니랑 조카랑 잘 먹던 진미채 반찬이랑 양배추 볶음, 시금치 된장국도 해 놨으니까, 밥 잘 챙겨 먹어. 혼자 있다고 밥 대충 먹으면 절대 안 돼!!

그리고 냉장고도 내가 정리 좀 해 놨어. 좀 더 편할 거야^^

앞으로 반년 열심히 건강하게 타지생활 하다가 다시 만나자~

언니.. 언니 덕분에 우리 가족도 너무 즐겁고 편안한 여행 마치고 들어가.

함께해서 너무 행복했어!


동생이 써 놓고 간 편지에 새벽 공기가 짰다.

<동생과 조카들이 편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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