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1년 살이를 계획하며 가장 기대했던 순간 하나가 진행 중이다.
바로 한국의 여름방학을 맞이해 여동생이 조카와 싱가포르에 온 것이다.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4학년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여동생은 중학생 아들은 제부에게 맡겨 두고, 둘째를 데리고 싱가포르에 왔다.
둘째 조카인 초등학교 4학년과 우리 아들은 사이가 매우 좋다. 심성이 착하고, 밝은 아이인 둘째 조카는 어리디 어린 유치원 동생과도 잘 놀아 주었다. 그래서인지 아들의 최애 형아는 늘 둘째 형아이며, 싱가포르에서도 제일 영상통화 하고 싶은 사람은 둘째 형아였다.
그렇게 애정하는 형아가 싱가포르에 온다고 하니, 아들은 며칠 전부터 이미 신이 나 있었다.
조카와 동생이 싱가포르에 공항에 도착하는 날, 아들은 아침부터 설레며 공항에 갈 준비를 했다. 도착 게이트에 코를 박고 한참 동안 형아를 기다리던 아들은, 공항에서 하도 격하게 사촌 형아를 맞이해서 공항 대기실의 모든 사람들이 웃음을 짓기도 했다.
토요일 밤에 도착한 조카는 신나는 일요일을 함께 보낸 후, 월요일부터 아들이 다니는 국제 학교의 여름 캠프에 나란히 등교했다. 5살 아들에게도 그리고 초4 조카에게도 모두 낯선 경험이었다. 하지만 둘은 씩씩하고 대견하게 새로운 경험을 잘 해냈다. 기특한 아가들이었다. 수업이 끝나고서는 남자아이들 답게 수영장에 바로 풍덩 하거나, 땡볕에 스케이트 보드와 킥보드를 한참 동안 타고 얼굴이 벌게져서 와구와구 저녁밥을 먹었다. 스케이트 보드에 빠져있는 둘째 조카는 한국에서부터 스케이트 보드를 들고 와 집 앞의 싱가포르 최대 스케이트장에서 매일 연습 중이다.
실은 신이 난 건 아들뿐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 여동생과 함께 싱가포르에서 같이 장을 보고,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고, 운동을 하고, 밥을 해 먹는 순간순간이 너무도 소중했다. 그녀는 마음이 가장 잘 통하는 친한 친구이자 가족이다. 속 이야기를 해도 거리낌이 없고, 자식자랑이나 남편 흉을 봐도 가장 안전한 관계이다. 그 무엇보다 나보다 결혼을 10년이나 빨리한 살림고수 여동생이기에 왠지 모를 든든함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완벽한 계획 중 한 번의 시련이 있다.
동생이 한국에서 하고 있는 일을 길게 빼기가 어려워 초반 3일만 함께 한 후, 다시 4일간 한국에 들어갔다 싱가포르에 들어와야만 했다. 모든 게 낯선 둘째 조카는 4일 동안 싱가포르에 엄마 없이 있어야 하고, 나 역시 즐거웠던 동생과의 순간을 잠시 잊어야만 했다.
싱가포르도 처음, 엄마와 이렇게 길게 떨어지는 것도 처음인 조카는, 동생이 짐을 싸는 그날 저녁 결국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덩치가 크고, 잘 웃고, 장난도 잘 치는 4학년 조카가 훌쩍이며 울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해졌다. 눈치껏 상황 파악을 끝낸 어린 아들은 형아를 꼭 안아주었다.
동생이 공항으로 떠난 후에도 조카는 한참 동안 훌쩍였다. TV를 보다가도 울고, 숙제를 하다가도 울었다. 나는 울고 있는 조카를 한동안 꼭 안아주었다. 이모의 품이 엄마의 품이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꼭 안아주는 것 밖에 없었다.
조카는 싱가포르에 간다고 할 때부터, 엄마가 한국에 잠깐 들어갔다 올 것이라는 것은 이미 각오했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엄마가 한국에 가버리니 너무 슬프다고 했다. 그냥 마음이 힘들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4일 동안 갑자기 아들 둘의 엄마가 되었다.
식성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성장 속도가 다른 두 아들들을 보며 여동생이 없는 4일 동안 두 아들의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보리라 다짐을 했다.
당장 동생이 없는 첫날 아침부터, 큰 놈 작은놈의 밥을 해 대느라, 수영을 쫓아다니랴, 스케이트보드장을 쫓아다니랴, 두 놈의 수업 내용을 확인하느라, 숙제를 챙기랴, 매일 빨래를 해 대느라 혼이 쏙 나갔다. 그래도 큰 놈 작은놈 둘이 떡하니 있으니 또 든든한 마음이 가득하다.
주말에는 동생 없이 두 아들들을 데리고 말레이시아 레고랜드를 2박 3일 가보기로 했다.
아.. 두렵고 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