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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과의 전쟁

by 세상에

사춘기 딸을 둔 엄마들은 SNS과의 전쟁이고, 사춘기 아들을 둔 엄마들은 게임과의 전쟁이란다.

중학생 딸을 둔 친구는, 딸이 방학 동안 집에 박혀 있더니, 유튜브와 인스타를 하느라 1기가 데이터를 밤새 써버려서 추가 데이터를 요청하는 딸을 보며 한숨이 나왔다 했다. 한 다리 건너 아는 분의 모범생 아들은 뒤늦게 모바일 게임에 빠져, 학교에 갈 생각도 안 한다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 했다. 친한 언니는 스크린타임은 싸움의 빌미만 제공한다며, 특단의 조치로 밤 10시가 되면 집의 와이파이를 아예 꺼버리고 핸드폰을 수거한다고 했다. 이는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적용되기에, 어른도 예외 없이 밤 10시가 되면 책을 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저마다의 상황에 각자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

먼 이야기인 줄 만 알았던 그 전쟁은, 다섯 살 아들과 나에게도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었다.


첫 도발은 수족구로 집에서 뒹굴거리고 있던 그 시절 우연히 발견한 레고 카탈로그의 QR코드였다. 호기심이 많고 심심했던 아들은 레고 가게에서 가지고 왔던 카탈로그에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열심히 사진고 찍었다. 그러다 우연히 카탈로그 안의 QR 코드를 찍었고, 그 QR코드는 레고가 만든 온라인 게임으로 아들을 인도했다. 아들은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척척 게임을 해 냈다.

요란한 소리에 깜짝 놀란 나는, 아들에게 딱 15분의 시간을 주었다. 15분간 레고 온라인 게임에 폭 빠진 아들은 알람 소리와 함께 아쉬운 마음을 표했다. 너무 재미있어하는 아들을 보니 마음이 흔들렸지만, 내가 흔들리면 안 되는 일이었다. 괜히 믿었던 레고에 배신감이 들었다.

레고.jpg <레고가 이러면 안 되지 T.T>


두 번째 탐색전은 역시 수족구로 학교에 못 가던 시절, 미니 볼링장을 찾아 간 오락실이었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미니 볼링장은 집 근처 쇼핑몰에 있었고, 신나게 볼링을 했다. 그렇게 게임을 끝내고 집에 가려는 순간 아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포켓몬 메자스타' 아케이드 배틀 게임이었다. 게임하는 사람이 자신의 포켓몬 칩을 사용해, 아케이드 게임기에 나오는 포켓몬들과 배틀을 하고 포켓몬 칩을 수집하는 게임이다.

나 역시 처음 보는 게임이라, 다른 친구들이 하는 것을 한참 살펴보다가 아들과 함께 도전해 보았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 버벅거리자 옆에 있는 친구가 알려주기도 했다. 배틀에 이기진 못했지만, 처음 게임을 시작할 때 받은 포켓몬 칩으로 한참을 행복해했다.

아우 신나.jpg <신난 아들>

본격적인 전쟁은 그 이후에 시작되었다. 포켓몬 칩 모으기에 재미를 느낀 아들은 매주 주말 오락실에 가서 배틀 게임을 했다. 게임 실력이 없어 힘이 약한 캐릭터의 포켓몬 칩을 받았지만 즐거웠다. 뿌듯한 마음으로 본인이 모은 칩을 학교에 가서 자랑을 했는데, 친구들을 이미 힘이 센 캐릭터의 블랙 포켓몬 칩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싱가포르에 있는 남자아이들은 이 게임을 모두 다 좋아하는 모양이다. 칩이 없는 아이들이 없다.) 그렇게 아들은 전투의 의지를 불살랐다.

친구들.jpg <우리 아들, 남의 아들 다 똑같다>


이런 아들이 제대로 게임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그 오락실이 위치한 쇼핑몰 건물 옆에 있는 로컬 유치원에 다니면서부터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겠는가! 유치원에서 하원하고 집에 가는 길에 게임을 꼭 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16세 이하의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는 평일 6시 반 이후에만 포켓몬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오락실 방침에( 아마도 싱가포르 정부의 방침인지도 모르겠다) 아들은 퇴짜를 맞았다. 그러자 아들은 작전을 바꿔, 하원 후 쇼핑몰에서 숙제를 끝내고, 저녁밥을 먹은 후 게임을 하겠다고 했다. 전략적인 아들 같으니라고... 그렇게 일주일에 세 번 하원 후 숙제를 하고 게임을 하러 갔다.


오후 6시 반이 넘으니 포켓몬 게임기 앞에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로 인산인해였다. 어떤 아이들은 우리가 저녁밥을 먹고 다시 와도 그 게임을 하고 있었다. 어른도 예외 없었다. 여자고 남자고 젊고 나이 들고 상관없이 포켓몬 칩을 상자 한가득 들고 와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 게임을 하던 아들은 드디어 제일 강한 블랙칩을 얻을 수 있었다.

블랙칩 이후 아들은 흥분의 도가니였다. 매일 게임을 하며 블랙칩을 얻을 생각밖에 없었다. 밖에 나가서 농구를 하자고 해도, 수영을 하자고 해도, 줄넘기를 하자고 해도 덥고 재미없다고만 했다.

더 이상 전쟁이 핵전쟁으로 커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블랙칩.jpg <잘 때도 옆에 두고 자는 블랙칩. 그게 뭐라고...>


그날 저녁 아들과 이야기했다.


아들아, 시소 탈 때 엄마랑 너랑 타면 어디로 기울어?

엄마!

그렇지.. 엄마가 무거우니까 엄마한테 기울지? 그럼 우리 아들이 많이 커서 엄마만큼 무거워지면 어떻게 될까?

엄마랑 나랑 똑같똑같 똑같겠지? 아님 내 쪽으로 기우나? 히히

그런데 만약에, 우리 아들이 많이 안 크고 맨날 엄마 쪽으로만 시소가 기울어져 있으면 재미있을까 없을까?

음... 난 재미없을 것 같아. 왔다 갔다 해야 재미있지.


그렇지. 엄마도 그럴 것 같아. 시소처럼 우리 아들의 생활도 마찬가지야. 지금 포켓몬 게임을 하면 머리랑, 손이랑, 눈이랑 막 발달할 거야. 그런데 팔이랑 다리랑 몸은 운동을 안 해서 힘이 없어질 것 같아. 양쪽이 다 같이 발달해야 우리 아들 시소가 왔다 갔다 하는데, 지금은 시소가 어느 쪽으로 있을 것 같아?

게임하는 쪽...

그 친구들 기억나? 우리 밥 먹고 올 때까지도 계속 게임하던 친구들?

그 친구들은 팔, 다리, 몸이 건강할까 어떻까?

안 건강 하겠지.. 그렇게 오래 게임하고 있는데.

그럼 우리 아들은 그 친구들처럼 게임 쪽에만 기울어진 시소가 좋아, 아님 팔, 다리, 몸이 모두 건강해서 왔다 갔다 하는 시소가 좋을 것 같아?

당연히 왔다 갔다 시소가 좋지~~~

그럼 팔, 다리, 몸도 열심히 움직여서 시소를 좀 움직여 보는 건 어때?

좋아! 그럼 평일에는 호수 공원에서 씽씽이도 좀 타고, 줄넘기랑 수영도 좀 하고, 일요일에만 성당 다녀와서 포켓몬 게임하러 가자! ( 성당 다녀오면 늘 좋아하는 간식을 사줬다. 아들은 간식대신 게임을 하고 싶다는 뜻이다)

와~~~ 우리 아들이 진짜 멋진 아이디어를 냈네? 엄마도 네 아이디어가 정말 좋다. 그럼 그렇게 하자!


그렇게 극적으로 협상을 끝낸 아들과 나는 이번 주 일요일만을 기다리고 있다.

일요일 성당을 다녀온 후, 아들과 나는 신나게 포켓몬 배틀을 할 것이다. 휴~~~~


포켓몬.jpg <자나 깨나 포켓몬 게임 생각뿐인 우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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