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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상에 Jan 22. 2024

김기사~ 아니! 사장님~운전해~~

"사모님, 사모님은 왠지 서울분 같지 않으시네요. 하하"

"아 네, 제가 오늘 좀 남루하지요.. 하하"


기사님과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찰나의 순간에 나는 '서울분 같다'라는 말을 '세련되고 고상하다'라고 해석했다.


내가 기사님을 만나는 그날,

난 하필 생얼이었고,

하필 머리를 질끈 묶었고,

하필 반바지에 크록스를 신었고,

하필 백팩을 메고, 트렁크를 끌고, 아들을 들쳐 안고 김해공항에 내렸다.

하필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평소의 내 모습이었지만, 사장님의 운전기사와 사모님의 만남은 왠지 그러지 않았어야만 했던 것 같다.


옅은 화장과 눈에 띌 듯 안 띌 듯한 포인트 액세서리

단정한 슬랙스와 실크 스카프

로고가 보이지 않는 명품 핸드백과 단화

한 손은 아들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은 기내용 캐리어를 들고서

'여보~' 이렇게 불렀어야 사모님인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모님으로서 기대되는 그 어떠한 스테레오 타입과 매칭되지 않는 모습으로 사장님의 운전기사를 이미 만나고 말았는 것을.


남편이 아닌 남편의 기사님이 운전해 주는 차는 불편했다.


남편을 부를 때 평소처럼 '오빠'라고 불러도 될까? 아니면 어색하게 '당신'이라고 해 볼까?

우린 평소에 반말로 대화하는데, 회사 직원 앞이니까 존대해야 하나?

남편과 나누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혹시 직원들에게 회자되지는 않을까?

아니야.. 직업윤리라는 것이 있는데, 기사와 비서는 들어도 못 듣고, 못 들어도 못 듣는다고 했어.

기사님께 말을 먼저 걸어 친근감을 표현해야 하나? 아니면 그냥 택시 기사님처럼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해야 하나?

식사 시간이 애매한데,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해야 하나? 식사를 한다면 굳이 따로 앉아야 하나, 그런다고 또 불편하게 함께 앉아야 하나?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사장님의 평판에 누를 끼칠까 목적지로 가는 한 시간이 가시방석이었다.

짧지만 강렬했던 기사님과의 만남 이후, 나는 기사님 기피증이 생겼다.


여보,

나는 사장님이 운전해 주는 차가 제일 편해

과자도 마음대로 까먹고, 노래도 마음대로 듣다 춤도 추고, 회사 사람들 흉도 보고, 아들램이랑 마음껏 장난도 치고, 신발 벗고 다리도 좀 올리고, 잘 때 코 고는 소리 신경도 안 쓰고...

사장님이 운전할 때 말벗 잘해주는 사모님이 될게.


그러니까 김기사~, 아니!! 사장님~ 운전해~~


<MBC 코메디 '사모님' 의 한장면. '김기사~운전해~~' 난 틀렀다. 출처: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0042526>



(회사 업무와 연관된 동선에 우리 가족이 끼어 있을 때만 기사님이 출동하신다. 사적인 가족 동선에 기사님이 호출되는 것은 아니니 절대 오해하지 말아 주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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