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사직은 회사가 어떠한 이유로 근로자에게 퇴직을 권유하고, 근로자는 이를 받아들여 직접 사직서를 제출하여 퇴사하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기는 하나, "권고"에 의한 사직이기에, '사직을 했다'가 아니라 보통은 '당했다'라고들 표현하는 것 같다.
그나마 쉬웠던(?) 권고사직은 진행하던 프로젝트가 잘 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그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야 할 때였다.
몇 년 전 회사는 신규 사업을 해 보겠다고,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있는 엔지니어들을 대거 고용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2-3년이 지나도 특별한 성과가 없었고 이 기술에 관심 있는 고객도 없었다. 그러던 중 임원진이 바뀌자, 그들은 지난한 프로젝트를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임원진은 결국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논의가 시작되자마자, 인사팀은 이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엔지니어들의 기술과 역량을 하나하나 다시 검토했다. 그리고 이삭 줍기를 하듯, 기술력이 좋고 다른 프로젝트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엔지니어가 있다면 다른 부서로 재배치했다. 나머지 엔지니어들에게는 권고사직을 이야기해야만 했다.
"왜 저는 다른 프로젝트에 투입될 수 없습니까? 권고사직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회사는 그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그전부터 개개별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고 법률팀과 사전에 검토했다.
"다른 프로젝트는 xx기술이 필요한데, 당신은 이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배워서 하겠습니다"
"네, 물론 그럴 수 있으시겠지만, 이미 많이 진행이 된 프로젝트기에 가시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으실 겁니다. 회사에서는 위로금도 xx 정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당신께서 가지고 있는 그 기술이 필요한 회사들이 외부에 많이 있을 겁니다"
결국 어르고 달래 사직서를 받아낸다. (물론 끝까지 인정하지 못하는 직원도 있다. 그런 직원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챕터에 쓸 예정이다)
한 번은 본사의 영업 전략이 바뀌었던 적이 있었다.
우리 회사의 제품은 기술 집약적인 제품이라 제품을 중심으로 영업을 해왔었다. 제품에 들어간 기술을 고객사에 잘 설명하고 판매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사는 '제품 중심'이 아니라, '고객 중심'의 영업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새우깡' 부서의 이마트 담당A가 이마트에 입점시키고, 홈플러스 담당 B가 홈플러스에 입점을 시켰다. '양파링' 부서도 마찬가지로 이마트 담당 C와 홈플러스 담당 D가 각각 입점을 시켰다. 새우깡의 고유한 기술과 양파링의 고유한 기술은 달랐고, 이마트와 홈플러스의 입점 기준이 달라서 각각의 영업 전문가들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는 전략이 바뀌어 이마트 부서가 '새우깡'과 '양파링'을 이마트에 한꺼번에 입점시키고, 홈플러스 부서가 '새우깡', '양파링'을 같이 입점시키는 전략이 되었다.
기존에 4명의 인원이 필요했던 반면, 이제는 이마트 담당 1명과 홈플러스 담당 1명만 필요하게 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A, B, C, D 중 어떤 사람이 살아남고 어떤 사람이 권고사직의 대상이 될 것인가?
일단 이마트 부서가 생겼으니, 이마트를 담당하는 A와C가 비교를 당하게 된다. 먼저 이마트의 매출 중 새우깡이 큰지 양파링이 큰지를 비교한다. 또한 이마트의 조직 및 전략을 누가 더 잘 알고 있는지 비교한다. 그리고 앞으로A와 C 중 누가 더 이마트의 매출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지 판단한다. 이런 분석은 홈플러스 부서의 B와 D도 동일하게 진행한다.
다른 각도로 분석을 할 때도 있다. 이마트 담당의 A와 C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새우깡의 매출을 이마트와 홈플러스 두 곳에 올리는 것을 목표로 새우깡 부서의 이마트 담당 A가 전체 이마트 부서를 맡고, 새우깡 부서의 홈플러스 담당 B가 전체 홈플러스 부서를 맡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되면, 양파링 부서의 C와 D는 몹시 분개하며 무엇이 부족해 양파링 부서가 모두 나가야 하는지 설명을 요청한다.
"왜 나여야만 합니까!"
"그동안 당신이 보여왔던 이마트 실적이 ~~~, 우리 회사의 새우깡의 전략이 ~~~, 고객사에서 당신의 피드백이 ~~~ "
이런 질문을 예상하고 인사팀은 철저히 준비한 데이터를 보여주며 반박 불가한 근거를 들이민다. 이는 법무팀의 사전 검토가 완료된 자료들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부당해고의 위험을 줄여야만 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가끔 회사가 A, B, C, D 중 실적이 잘 안 나오거나, 태도에 문제가 있거나, 조직 내 융화가 잘 안 되는 사람을 미리 찍어 놓고 조직 변경을 하는 경우도 있다. 표면적으로는 회사 전략이 변경되어 조직 통합이 불가피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알고 보면 네 사람 중 마음에 안 드는, 예를 들어 B와 C를 정리하기 하기 위해 조직 통합을 하고 그에 따른 데이터를 모아 권고사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직원에게는 심증만 있고 물증이 없는 것이고, 회사에게는 심증도 있고 물증도 있다.
그래서 직원들이 발버둥을 쳐도 꼼짝없이 언젠가는 받아 들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들고 만다.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해고는 참 악랄한 과정이다.
하지만 나는 그 악랄한 의도를 숨기고 아주 건조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쏟아낼 수밖에없음이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