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세상에 May 27. 2024

해고에 대응하는 직원의 자세

내 안엔 내가 너무도 많아

권고사직 통보를 받는 직원들의 대응은 각양각색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당신은 권고사직 대상에 들어갔으며, 이런저런 절차를 통해 x월 x일까지 정리를 하십시오'라고 이야기를 하면 거의 대부분의 반응은 "당황"이다.

갑자기? 내가 왜?라는 질문과 함께 당황스러움이 역력하다. 하지만 인사팀과 매니저는 미리 준비했던 답변을 조용히 이야기한다. 

"회사의 전략이... 팀의 구성이.... 당신의 업무가..... 이런저런 이유로 포지션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당황"에서 시작한 반응은 이내 "분노"의 단계로 넘어간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으나 납득이 니다.'로 시작된 분노는 점점 증폭된다.

회사 전략이 변경되었어도, 팀의 구성이 달라졌어야 했어도, 업무가 조정되어야만 해도,, 왜 나여야만 하지요?

나는 그동안 많은 공헌을 해왔고, 회사가 하라고 하는 일들을 충실히 해 왔는데 이런 나만 영향을 받아야 하요?

회사의 결정이 이해가 되지 않네요.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인사팀은 한 게 뭐가 있습니까?

이런 식으로 나에게 이야기하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당신들 이야기 다 녹음하고 있어요..

책상을 탕탕치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입술부르르 떨린다. 위협적인 말도 서슴지 않는다.


분노 단계의 직원과 이야기할 때에는 최대한 말을 짧게 해야 한다. 나의 모든 말이 녹음되고 있고, 말을 길게 하는 순간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해석되어 사용될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직원이 흥분을 하면 나도 무섭지만 최대한 감정을 숨기고 객관적으로 대한다. 그리고 직원이 스스로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으며 감정을 충분히 폭발시킬 수 있도록 시간을 준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실제로 중국 사무소에서는 직원 한 명이 인사팀 직원을 복도에서 기다렸다가 '너랑 나랑 같이 죽자'며 협박을 한다거나, 퇴근할 때 인사팀 직원의 차 앞에 서서 '당신의 차에 뛰어들겠다'라고 들어 누운 경우도 있었다. 결국 경찰의 도움을 받아 정리를 했지만, 인사팀 직원은 한참 동안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했다.


그렇게  "분노"의 시기를 거치고 나면, "슬픔"의 시기가 찾아온다.  이쯤 되면 어느 정도 상황을 받아들이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헌신했던 조직에 배신당한 기분이 들어서 슬프고, 왜 내가 회사에 그토록 열심히 싶어 억울해서 슬다. 나를 막아주지 못한 매니저가 원망스럽고, 회사밖에 모르고 다른 살길을 준비하지 못했던 내가 못나서 슬퍼지기도 한다. 슬픔의 시기에는 약간의 공감이 필요하다. 분노의 시기에는 공감이 화가 되지만, 슬픔의 시기에 공감, 직원이 좀 더 빨리 마음의 결정을 할 수 있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슬픔"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질문"의 시기가 온다.

직원도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르고 나면 현실적인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퇴직금은 어떻게 되는지, 컴퓨터는 언제 반납해야 하는지, 위로금 조정이 가능한지, 실업급여는 받을 수 있는지 등등이다. 분명 첫 미팅 때 이야기를 다 했던 부분이지만 이제야 제대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최대한 성실히 자세히 설명드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질문에 대한 답을 완벽히 알기 전까지는 보통 마음의 결정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질문"의 시기가 거치고, 마음의 결정을 하고 나면 그제야 "인정"의 시기가 찾아온다.

상황을 인정하고 주변을 정리한다,  인사팀에 와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거나, "분노"의 시기에 흥분했던 자신의 태도에 용서를 구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도 인사팀이 아닌 동료로 돌아가서 직원의 새로운 커리어를 응원하기도 한다.


나 역시 이런 상황이 펼쳐진다면, 내 마음속에 있는 수많은 내가 튀어나올 것이다.  충성을 다해 몸 담은 회사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왔을 때 마냥 이성적일 수만은 없을 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의 마음 상태를 잘 파악해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말로 사직서를 받아내야 하는 내가 가끔은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해야 하는 일은 해야 하는 일이고, 그런 직원을 잘 다독이는 것도 내 일인 것을.


<영화 인사이드 아웃, 내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