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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노벨경제학상의 역사적 맥락

『총 균 쇠』로 유명한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지리적 특성이 경제를 결정한다고 보았다. 유럽이 아프리카보다 부유한 이유를 지리적 특성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2001년  다론 아제모을루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교수는 호주와 나이지리아를 사례로 연구했다. 호주는 유럽인이 이주하기에 좋은 환경이어서 백인에게 혜택을 주는 제도를 시행했다. 나이지리아는 질병으로 수많은 영국인이 사망하여 백인 정착민이 적었고  영국은 공정한 제도를 구축하지 않았다. 나이지리아는 매우 가난하고 호주는 부유하다. 제도가 중요하다는 연구결과였다. 2002년에는 1500년 유럽 식민지 중 성공적이었던 국가들이 오늘날 가난해진 것은 식민지배로 인한 제도적 변화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이 논문은 일명「운명의 역전」논문이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은 매사추세츠공대(MIT) 다론 아제모을루(Kamer D. Acemoglu)와 사이먼 존슨(Simon H. Johnson)교수, 시카고 대학 제임스 로빈슨(James A. Robinson) 교수가 받았다. 제도가 국가 경제번영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다론 아제모을루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교수는『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집필해 국내에서도 알려졌다. 다론 아제모을루 교수와 사이먼 존슨 교수는『권력과 진보』에서 기술발전은 곧 진보라는 통념에 반박하며 오히려 소수의 기업과 투자자만 이득을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의 연구주제는 ‘어떤 국가는 왜 잘 살고 어떤 나라는 왜 가난한가?’이다. 이들은 ‘제도’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재산권을 강화하고 민주주의를 옹호하며 부패를 막고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등 포용적(inclusive) 제도는 경제발전을 촉진한다. 반면 부패, 부와 권력집중이 심하고 정치적 자유가 제한되는 착취적(extractive) 제도는 소수 엘리트에 자원을 집중시켜 경제발전을 저해한다. 애덤 스미스가 자유무역을 국가 번영의 핵심으로 보았다면 이들은 제도가 나라의 부를 창출한다고 본 것이다. 


포용적 제도를 채택한 나라는 주로 서구국가이다. 서구국가도 과거에는 포용적이지 않았지만 성장했다. 국가가 포용적 제도를 먼저 수립했기 때문에 경제발전이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반박이 나온다. 포용적 제도 없이도 싱가포르와 한국, 대만과 중국은 성장했다. 따라서 포용적 제도로는 후진국이 성장할 수는 없는 경험도 많다.


다론 아제모을루(Kamer D. Acemoglu) 교수는 포용적 제도와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이를 성취한 국가로 한국을 꼽았다. 권위주의 시절에 경제가 급성장했다는 담론이 많은데 오히려 민주화 이후 한국경제는 빠르게 성장했다고 강조했다. 사실 한국은 우연하게 자본주의 경제에 편입되었고, 북한은 ‘재수’가 없어 공산주의 권에 편입되면서 경제실패를 겪은 것이다. 그런 역사적 배경을 무시하는 접근이다.


제도 중에는 부패를 막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부패한 국가가 선진국에 진입한 사례가 없다. 그러나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한 나라 중 성공한 경우는 드물다. 부패의 중심에 정당, 정부, 사법부, 의회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부패한 국가는 구석구석 다 그렇다. 일반 국민의 작은 부패(petty corruption)부터 고위공직자, 정치인, 경제인들의 큰 부패(grand corruption), 그리고 전체로 확산된 체계적 부패(systematic corruption, endemic corruption)까지 전 사회 구성원의 몸속에 배인 관행에서 발생하는 부패는 퇴치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부패청산의 사례로 스웨덴의 개혁을 들 수 있다. 스웨덴은 1900년대 초 들어서는 부패청정 국가가 되었다. 스웨덴의 성공을 읽어보면 우리나라가 갈 길을 볼 수 있다.


우선 정부주도로 개혁이 진행되어야 한다. 결국 행정부가 개혁의 최전선에 서야 한다. 이탈리아처럼 선거와 표를 위한 개혁이 아니라 실질적인 시도가 있어야 한다. 과연 그런 주체가 존재할 수 있을지는 회의적이긴 하다. 스웨덴은 1870년 왕실과 정부를 구분하여 정부를 만들었다. 입헌군주국(Constitutional monarchy)의 신호탄을 쏜 것이다. 


제대로 된 교육과 의식의 변화가 없으면 개혁은 실패한다. 스웨덴은 귀족 등 가진 자만이 아니라 공정한 입시를 통해 누구나 대학에 입학하도록 바꾸었다. 가진 사람이 변칙으로 허위문서로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제도로는 성공할 수가 없다. 불신과 부패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선진국 입시 제도를 도입해도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입시비리로는 개혁이란 불가능하다.


에드워드 글레이저(Edward L. Glaeser)는 제도의 효과인지, 인적자본의 효과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호주와 캐나다 같은 식민지에는 포용적인 제도뿐만 아니라, 부유하고 교육수준이 높은 정착민들이 많았다. 인적자본이 제도보다 경제성장을 더 잘 설명한다는 주장이다. 개혁이 성공하려면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만 국가경제도 성장할 수 있다.


「운명의 역전」논문에 대해서 반론이 제기됐다. 아메리카 대륙은 1500년부터 엄청난 인구 이동이 있었다. 잉카제국과 현재의 페루를 비교하려면 두 나라가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인구이동을 고려하면 부의 역전현상은커녕 부의 대물림이 지속됐다. 1500년에 번성했던 국가의 후손들은 21세기에도 잘살고 있다. 제도보다 인적자본이 중요한 요소라는 반증이다.


스웨덴의 예에서 보듯이 정치와 관료와 사법개혁이 없이는 부패청산은 불가능하다. 스웨덴은 일찌감치 귀족에게만 열려있던 관료직책은 실력위주로 개방되었다. 관료들이 가진 인허가권, 조달과 입찰 등의 권한을 박탈하고 집단결정과 완전 개방제로 전환했다. 권력을 이용하여 착복하던 것을 봉급생활자로 바꾸었다. 지방자치의 강화와 지방 관료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부패에 연루된 공무원에 대한 철저 규명과 해임, 법적 책임을 물었다. 우리나라는 정치와 관료 그리고 사법개혁을 할 주체가 없다. 그들뿐만 아니라 사회전반에 다르지 않다. 썩은 정치인도 ‘자기편’이면 찍어주는 사회이다. 부패에 분개하지도 않는다. ‘내로남불’과 ‘편 가르기’로는 개혁을 할 수 없다.


스웨덴에서는 정치특권 개혁이 이루어졌다. 성직자의 정치개입 배제, 상원의 간접선거, 하원의 직접선거가 시행되었다. 이를 통해 세습권력을 철퇴하였다. 1900년대 초이니 놀라운 일이다. 10년에 이르는 준비, 설득과 협상을 거쳐 특권층의 찬성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개혁은 단 3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다. 30년은 쉽지 않은 기간이다. 그 원동력은 국왕 스스로가 권력을 놓았기 때문이다. 이것도 놀라운 일이다. 행정, 입법과 사법권을 이양하고 중앙권력을 지방으로 이양하여 스스로 특권을 내려놓았다. 귀족, 성직자, 관료의 모든 특권이 한 세대 안에 제거되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실력위주로 국민으로 대체되었다.


스웨덴이 부패청산에 성공한 것은 위로부터의 개혁이었기 때문이다. 기득권자들이 스스로 권력과 특권을 내려놓았다. 지속적으로, 신속하게, 전 방위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개혁을 주도한 사람은 바로 최고 권력자였던 국왕이었다. 반부패 정책이 실패하는 이유는 특권층이 반발하기 때문이다. 위로부터 신속하게 총체적으로 개혁 프로그램이 진행되어야 가능한 이유다. 우리나라는 한 세대를 끌고 나갈 수 있는 한 정당과 권력 또는 정당 간 빅딜과 국민적 합의를 통해 진행해야 가능하다.


그러나 부패청산에 의한 제도로만 국가경제를 설명할 수 없다. 우리나라나 중국이나 부패 속에서도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존스홉킨스 대학 위안위안 앙(Yuen Yuen Ang) 교수는 저서『부패한 중국은 왜 성장하는가(China’s Gilded Age)』에서 중국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부정부패가 얼마나 만연했는지 분석했다. 그는 수상자들의 이론은 중국의 경제성장뿐 아니라 서구의 경제성장도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미국의 발전과정에서도 제도적 기관들이 부패로 얼룩졌다.


기득권층은 특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시스템이므로 기득권자들은 이를 사수하고자 내부적으로 조직화 하며 반대세력을 서슴없이 제거한다. 특히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국가에서 검사, 경찰서장, 시장들이 암살된다. 공권력이 특권을 건드리면 저항은 거세지며 절대 무너지지 않는 아성을 구축하려고 한다. 멕시코와 콜롬비아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탈리아는 정권이 들어 설 때마다 부패청산을 정책 최우선과제로 했지만 실패했다. 선거용 표를 위한 구호로만 이용했을 것 이다. 특히 이탈리아는 마피아가 국가권력, 정치계와 경제계 뿐 아니라 개인의 삶까지 개입되어 부패 청산은 어렵다. 브라질은 총체적으로 부패의 사슬에 얽혀 있어 체제를 완전 바꾸지 않는 한 부패청산은 불가능이다. 청렴하려고 해도 주변이 부패하고, 부패사슬에 어쩔 수 없이 연루된다. 우리나라도 그렇다. 


부패는 국가의 제도와 연관되어 있다. 법과 제도의 부재 혹은 편법이 용인되는 사회에서는 부패청산은 실패한다. 법과 제도의 허점이 더욱 부패를 키우고 부패제거를 어렵게 만드는 악순환이 발생한다. 법대로 절차가 이루어져도 ‘내부’ 거래자가 있으면 소용없다. 엽관제도(spoils system, 당선자가 승리를 위해 도운 사람들을 주요 공직에 임명하는 제도)가 인정되는 국가에서는 낙하산 인사가 빈번해 권력자에게 충성을 담보로 줄을 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걸 못 하는 사람이 능력 없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이들은 서구제도의 우월성을 정당화하고 나아가 제국주의·식민주의의 폭력을 무시했다. 이름만 ‘포용적인’ 제도를 도입한 정착민 식민지에서 원주민 수천만 명 집단학살 했고 원주민에 대하여 폭력적인 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대해 아제모을루 교수는 수상발표 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식민주의에 대한 규범적 질문은 나와는 상관없다. 식민주의가 좋은지 나쁜지를 탐구하는 대신 우리는 다양한 식민지 전략이 시간이 지나도 지속되는 다양한 제도적 패턴으로 이어졌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너무도 반역사적인 태도이다. 포용은 백인에게만 적용되고 원주민에게는 노예적으로 착취하고 반인간적으로 대해 만들어낸 부를 백인만 누리는 경제를 ‘발전’이라고 말한다. 주류경제학은 가치판단 없이 세상을 분석하는 데 익숙하다. 역대 수상자는 주로 미국 내 소수의 엘리트대학 경제학부에 소속된 경제학자들이 받는다. 식민주의 제국주의 자본주의에 도전하고 서구제도의 패권에 과감히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X가 Y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이들에게 상이 돌아간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지만 논문이 오도되었다는 비판도 있다. 연구의 오도(Misrepresentation)란 자신의 자격과 연구실적을 과장하거나 조작하는 것이다. 오도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유형은 자료를 변조하거나 위조하는 것이다. 변조나 위조가 아니더라도 잘못된 자료를 사용하는 오도도 있다.


다론 아제모을루 등은 1500년 유럽 식민지 중 성공적이었던 국가들이 오늘날 가난해진 것은 식민지배로 인한 제도적 변화 때문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나 일리노이 대학 데이비드 알부이(David Y. Albouy)의 검증결과 사용된 데이터에 문제가 있었다. 논문에 사용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64개국의 표본 중 28개국만 실제 데이터가 있었고 나머지 36개국은 질병환경이 비슷한 나라의 사례를 이용해서 썼다. 그중 6개 국가가 말리의 과거 식민지 명칭이었다. 실제 데이터가 있는 28개국도 정착민 사망률과 경제성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었다. 실제 데이터도 민간인이 아닌, 군인에 관한 것이었다. 군인은 전투 중 질병으로 사망할 확률이 더 높다. 정착민 사망률이 높은 나라가 나쁜 제도를 발전시켰다는 주장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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