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하자! 나의 성향
"당신은 부잣집에서 태어났으면 편하게 예술가로 살 수 있는 사람인데 안됐어."
아내가 어느날 나를 보며 무심하게 말했다.
"내가 정말 그렇게 보여?"
이렇게 되물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아내의 말이 정확하다는 것을.
아이들을 좋아하고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지만 내가 교사라는 직업을 힘들어 하는 것은 커다란 조직체에서 일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본 학교는 회사와 다르지 않다. 직장에 상사가 있고 선후배가 있으며 고객이 있는... 교사도 회사원처럼 인간관계나 업무, 승진, 회식자리에 스트레스 받는다. 오히려 공무원 사회는 일반 회사보다 보수적이고 경직되어 있으며 거대한 관료주의 사회이다. 인정하자! 나의 성향. 나는 직장과 맞지 않는다.
40대, 퇴사할 수 있을까? 요즘 나의 인생을 돌아보며 아쉬운 것이 있는데 '이러한 성향을 왜 빨리 알아채지 못했을까?'이다. 나는 젊었을 때 내가 누구보다 교직에 잘 어울리는 직장인이라고 생각했다. 회식과 술자리에 잘 어울렸고 때가 되면 승진하고,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라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자신감이 넘쳤고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자신감이 있을 때 왜 다른 일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을까? 40대는 다른 길을 찾기에는 벌려 놓은 것이 너무 많아 수습이 어려운 나이이다. 그래서 쉽지 않다.
제주도에 발령이 나기 전 잠시 기간제 교사로 지내던 때가 있었다. 그당시 나보다 먼저 브런치 작가 활동을 하는 제주도 교사를 알게 되었다. 초등교사인데 제주도 산과 바다를 다니며 집 없이 캠핑카에서 살고, 가끔은 학교 주차장에 자고 다음날 출근을 하는...... 닉네임도 '히피 지망생'으로 그는 이미 교사 커뮤니티에서도 유명한 인물이었다. 한 번 만나고 싶은 생각에 용기를 내서 메시지를 보냈는데 바로 답이 와서 그의 캠핑카로 초대를 받아 갔다. 이호테우 바다 앞에 주차를 하고 바다를 보며 회 한 접시에 소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때의 바다냄새와 노을이 아직도 선명하다. 잠시 그를 잊고 지냈는데...... 얼마전 내 브런치 댓글을 살펴보다가 나도 모르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다.
"잘 지내고 계시죠?^^ 저 이번에 명퇴합니다ㅋㅋ"
참고로 그는 나보다 세 살이나 젊다. 나는 그 댓글을 보자마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용기 내보았지요. 회사 하나 차리려고요."
대화의 내용을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교사로는 드물게 마술을 하고 글을 잘쓰고, 예술적인 감각이 다분한 그를 알기에 본인에게 어울리는 길을 택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잘되기를 바랐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모습이 싫어도 결국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 끌리는 것 같다. 그의 퇴사가 나의 내면에 엄청난 물결을 일으킨 것도, 그가 잘 되기를 응원하는 것도 나와 비슷하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 유튜버 '유랑쓰'의 임현주님이 쓴 '유랑하는 자본주의자'라는 책을 보고 있다. '유랑쓰'는 구독자가 천 명도 채 되지 않던 시기부터 구독해서 즐겨보았는데 지금은 구독자가 25만이 넘는 유명 채널이 되었다. 유랑쓰의 임현주님은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초등교사를 9년만에 사직하고 주식투자와 여행을 하는 유튜버로 남편도 대기업을 퇴사하고 함께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다. 나는 그들의 영상과 책을 보며 토머스 풀러가 한 말이 떠올랐다.
'모든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항해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바다로 나갈 수 없다.'
유랑쓰 부부가 만족할 지는 모르지만 유튜브가 널리 알려지고 그들의 계획대로 살 수 있게 된 것도 결국은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유랑쓰 부부와 히피 지망생님이 부러운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닌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려는 인생에 대한 진지함과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뜨거움을 가슴에 간직하며 인생을 살고 싶다. 나는 어떠한 사람일까?
2025년이 벌써 한 달이 지나갔다. 올해는 더 뜨겁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