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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를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서울특별시 금천구에 산다.

by JJ teacher

제주도에 내려가기 전 서울에 살 때 나는 한 번도 금천구에 가본 적이 없다. 강북구에 집과 직장이 있었기에 강북을 벗어날 일이 많지 않았고 강남에 갈 일이 있다고 해도 서초동이나 청담동처럼 잘 알려진 곳 외에는 가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강남이라고 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가 몰려있고 땅값이 비싼 부유한 곳으로만 생각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강남은 한강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부유한 곳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운로드.jpg 서울 25개 자치구와 인구수

한강 밑에 있는 여러 행정구역 중에서 금천구는 인구도 적고 면적도 좁은 곳이다. 또 경제적인 수준도 서울 25개 구 중에서 하위권에 속하는 약간은 소외된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금천구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는 하지만 서울의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무엇이 유명한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딸아이 덕분에 올해 3월 금천구민이 되었지만 내가 금천구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딸아이가 다니는 '국립전통예술중학교'가 있다는 것과 독산동이라는 곳이 옛날에 우시장으로 유명했다는 것 외에는 없다.


금천구민이 되어 이곳에 산 지도 벌써 넉 달이 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직장도 금천구에 있기에 나는 평소에 금천구를 떠날 일이 없다. 워낙 나의 행동반경과 인간관계가 좁은 탓에 금천구의 집에서 자고 일어나 금천구의 직장으로 출근하고 금천구의 헬스장에서 운동하고 금천구 학교에 다니는 딸아이를 데리고 집에 들어오는 것이 내 일과의 전부이다. 그렇게 넉 달을 금천구에 사는 동안 신기한 것은...... 내가 어느새 금천구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많겠지만 금천구는 살기에 참 좋은 곳이다. 누가 뭐래도 서울특별시 자치구 중 하나이기에 있을 것 다 있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기에도 편리하다. ktx 광명역에 버스 한 번이면 20분만에 도착하고 김포공항도 그리 멀지 않다. 누가 뭐래도 한강이남에 위치해 있어 고속도로를 타고 지방을 내려가는 것도 어렵지 않다. 나처럼 고향이 대전이고 아내는 제주도에 있고 처갓집이 광명에 있는 사람에게 금천구는 최상의 입지 조건이다. 실제 내가 금천구로 이사를 와서 한 달에 한 번 대전에 계신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것이 전혀 부담되지 않고 처갓집 반찬을 얻으러 다니기도 쉬우니 만족도가 매우 높다. 그것 뿐인가? 서울 치고는 금천구 아파트 가격이 말도 안되게 사악하지 않아 서울 내집 마련에 대한 희망을 가져볼 수도 있다. 내년이 되면 제주도에 있는 아내도 서울에 올라올 예정인데 같이 살 집을 알아보며 절망만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 내가 딸아이와 사는 곳은 금천구에서도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시장골목인데 나는 이곳을 지나갈 때면 서울에 어울리지 않는 정겨움을 느낀다. 전혀 서울스럽지 않은 소박함... 주민끼리 대부분 얼굴을 알아 오고가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시장에서 물건값을 흥정하고 시장 골목골목 맛집이 숨어있는 시골 같은 서울! 그곳이 금천구이다. 내가 원래 서울 사람 아니고 충청도 사람이라서 그런지 이러한 정겨운 곳이 좋다. 너무 깔끔하고 정갈하며 반듯한 이미지의 강남이 아니라 반바지에 슬리퍼 끌고 동네 마실 다닐 수 있는 곳이 좋다. 그런 면에서 금천구는 나와 성향이 잘 맞는 곳이다.

"금천은 원래 서울 아니에요. 저기 경기도 외곽에 있는 시골이지."

함께 근무하는 직장 동료의 말에

"그래서 더 좋던데요? 얼마나 좋아요. 아직 인간적인 정이 살아 있으니."

라고 대답하며 내가 어느새 금천구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저녁 퇴근 후 저녁을 먹고 가방을 챙겨 헬스장으로 향하는데 딸아이와 몇 번 가보았던 '소 한 마리' 음식점 사장님이 나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말을 거셨다.

"딸은 어디 갔어요?"

"시험 기간이라 연습실에 있어요."

"아이구! 걔도 참 힘들겠어요~~"
여기 온지 고작 넉 달 되었는데 '소 한 마리'사장님과 인사를 나누는 동네 지인 사이가 되었으니 내년쯤이면 형동생하는 동네주민도 생길 것 같다.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고

서울특별시민이지만 시골주민 같은 사람들이 사는

그래서 정이 넘치는 금천구를 사랑하게 되었다.

가야금을 하겠다고 그 먼 제주도에서 서울로 시험을 봐서 당당하게 합격한

딸아이의 학교가 있는 금천구를 사랑하게 되었다.

모두 딸아이 덕분이다.


나는 지금 서울특별시 금천구에 산다.


금천9경.png 금천 9경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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