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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사는 제주 아이

제주의 딸

by JJ teacher

지난주 직장에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처음 보는 낯선 번호가 휴대전화에 떴다. 잠시 받지 않을까 고민하다 064라는 지역번호에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064는 제주도 번호이다.) 놀랍게도 전화를 건 사람은 제주도에서 가장 큰 언론사 이사님이었다.

"이번에 제주에서 '농촌융합산업제주국제박람회'가 열리는데 따님을 개막식 무대에 올리고 싶어서요."

국제박람회에, 혼자 10분을 공연해야 한다는 사실이 살짝 부담이 되었지만 딸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겠다 싶어서 승낙을 했다.

"제주 아이가 가야금으로 서울에 있는 예술중학교 입학했다고 해서 놀랐어요."

이사님의 말에 나는 속으로 피식 웃음이 났다.

'어느새 내 딸이 제주 아이가 되었구나.'

하긴 생각해 보면 태어난 곳은 서울이어도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모두 제주에서 나왔으니 제주 아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한편으로는 제주도에 고맙기도 했다. 중학교를 서울로 진학했는데도 '제주의 딸'로 자랑스럽게 생각해 주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 딸 아이는 얼마 남지 않은 행사 준비로 여념이 없다.


내가 제주도에 7년을 살다 육지에 와보니 '제주도'라는 이름이 가진 임팩트가 크다. 딸아이는 학교에서 이름 대신 '제주도'로 불리고 아무리 서울이 고향이라고 해도 선생님과 아이들에게는 그저 제주에서 서울로 성공해서 온 아이일 뿐이다. 제주도 여행을 가는 서울 친구들은 딸에게 제주도 맛집을 알려달라고 하니 '맥도널드'를 좋아하는 딸 아이는 난감할 뿐이다. 작년 파리 올림픽에서 제주도 출신 오예진 선수가 금메달을 따자 제주도 섬 전체가 들썩였던 적이 있다. 제주도 전역에 플랜카드가 붙고 선수가 졸업한 표선고등학교는 사격 꿈나무들에게는 성지가 되어 전학을 문의하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이처럼 제주도는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에 제주도 출신의 유명인이 생겨나면 섬 전체의 경사가 되고는 한다. 딸 아이가 유명인도 아니고, 더욱이 우리 가족은 제주도에 아무런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도 별로 없어서 조용히 서울로 왔다고 생각했는데 섬이 참 좁기는 하다. 음악을 하기에 척박한 섬에서 가야금으로 서울의 학교에 진학했다는 것이 제주도에서 화제가 되어 신문사에서 연락이 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흔히 제주도 사람들을 말할 때 지역성이 강하고 텃세가 심하다고 한다. 7년을 제주도에서 살아보니 이 말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듯 싶다. 하지만 내가 제주도에 살아보니 '그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처럼 교통도 발달하지 않은 시절 섬에 갇혀 천 년이 넘는 시간을 대를 이어 살아왔으니 지역성이 강한 것도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텃세가 심하다고 탓하기 전에 제주사람들을 먼저 이해하려 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불친절하고 무뚝뚝해 보여도 제주 사람들은 한 번 마음을 열면 한없이 내어주려 한다는 것이다. 딸 아이가 7년 밖에 제주에서 살지 못했는데도 '제주 아이'로 받아들이고 자랑스러워하니 고마울 뿐이다.

"나 서울 가도 제주도에서 불러주는 공연은 무조건 할 거야."

유치원 1년, 초등학교 6년을 제주에서 다니며 딸도 제주도에 자부심이 생겼는지 이런 말을 먼저 하는 것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제주에서 딸을 '제주 아이'로 받아들였듯이 딸도 제주도를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공연이 한 주 밖에 남지 않았다.

제주도 국제 박람회 개막식 오프닝 무대라니!

서울 촌아이 출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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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돌하르방만 보다가 얼마전 시험 끝나고 롯데월드에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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