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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딸만 보면 눈물이 난다

그냥 딸바보로 살기로 했다.

by JJ teacher

이놈의 F! 나이가 드니 눈물만 는다. 그래서 나는 내가 힘들다.


딸이 예중에 들어와 처음 예술제를 했다. 예중의 예술제는 단순한 학예회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관람을 갔다가는 입이 벌어져서 나올 것이 분명하다. 내가 그랬으니까. 작년에 예중에 입학하겠다는 딸의 말을 별로 귀담아 듣지 않고 있다가 그 학교의 예술제를 관람하고는 딸 아이가 입학하기를 바랐다. 작년 예술제 관람을 위해 직장에 연가를 쓰고 제주도에서 올라와 1박을 했다. 하필 비가 많이 내려 딸 아이와 우산 하나를 같이 쓰고 홀딱 비에 젖었다. 딸아이가 잠들고 혼자 맥주를 마시며 내년을 어찌해야 하나 걱정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내년에는 예술제를 하는 저 아이들 속에 딸이 있었으면 좋겠다.'


중학교에 입학해 처음 맞이한 딸 아이의 예술제!

표가 매진되어 복도에 설치된 TV로 딸아이의 모습을 봐야 했다. 많은 아이들 틈속에서 딸 아이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장구를 치는 딸 아이를 발견하고는 나도 모르게 울컥해 눈물이 나오려 했다. 그동안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마음 졸였는지, 스트레스 받았는지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기에 마음이 복잡했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이런 내 말을 들은 아내는 오히려 딸보다 나를 더 애잔하게 보았다

"그동안 여보도 많이 힘들었나 보네."

딸 아이가 기말고사를 보는 2주, 예술제를 준비하는 기간 동안 딸의 눈치를 보고 짜증을 온몸으로 받아낸 것은 사실이지만 딸에게 화가 나지 않았던 것은 이러한 시간도 행복한 시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직 딸이 아빠를 찾고 내가 필요하니 이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중에 내 곁을 떠나갈 아이, 분명 그때는 지금을 그리워하고 있을테니까.


딸이 출연한 공연을 보며 자신의 꿈을 위해 한 걸음씩 걷고 있는 아이가 대견했다. 예민하고 힘들기만 한 사춘기, 그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주고 있어 고마웠다. 혹자는 자식만을 위해 사는 부모를 어리석다 말하고 자식 키워놔 봐야 소용없다고 말하지만, 그러한 부모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살까? 알면서도 그저 자식을 위해 사는 것이 부모의 운명이고 행복이라고 생각하기에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나는 딸바보로 살기로 했다. 딸이 그것을 언제까지 허락할 지는 알 수 없지만 딸이 나를 필요로 하는 그 순간까지는 그냥 그렇게 지내기로 했다.


나는 딸만 보면 눈물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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