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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하는 아이의 부모로 산다는 것

그래, 이 또한 행복이다.

by JJ teacher

"있잖아. 신선생! 나중에 결혼하고 만약에 자식이 음악에 소질을 보이면 얼른 싹을 잘라야 해. 공무원 월급으로 절대 감당 못한다. 내 말 명심해!"

내가 20대 처음 교직에 발령이 나고 형님으로 모시며 친하게 지내던 40대 선배교사가 이런 말을 했을 때는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귀담아 듣지 않았다. 그때 선배의 딸은 바이올린을 전공하고 있었는데 선배는 농담삼아 이런 말도 했다.

"남들은 20평에서 30평, 40평으로 아파트 평수를 늘려가는데 나는 딸 뒷바라지 때문에 반대로 집을 줄여가잖아."

그때는 내가 결혼을 언제 할 지도, 자식을 언제 낳을 지도 몰랐고 설령 자식을 낳는다고 해도 그 자식이 음악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그냥 농담으로만 받아들였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나는 결혼을 했고 자식을 낳았고 40대가 되었으며 내가 낳은 딸이 음악을 하고 있다. 요즘은 그때 그 선배가 했던 말이 자꾸 생각이 난다.


사람들은 흔히 국악을 하면 양악보다 돈이 덜 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이 세계를 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딸아이는 가야금을 전공하는데 전공자들은 기본적으로 가야금을 세 대씩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산조 가야금, 정악 가야금, 25현 가야금. 예중이나 예고 학생들은 취미반이 아니기에 전문가용 악기를 써야 하는데 가야금 한 대당 평균 천 만원, 세 대면 삼천 만원이 든다. 거기에 연습용 악기까지 구비하고 있어야 해서 악기에 드는 돈이 고급 승용차 한 대 가격은 쉽게 넘는다. 거기에 개인연습실비, 레슨비.... 유명한 입시 전문가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으려면 부르는 것이 가격이라 한 번 레슨을 받으려면 큰 마음을 먹고 가야 한다.


제주도에 산 이유로 거의 매주 레슨을 받으러 서울을 오간 탓에 우리 가족은 악기와 레슨비 외에도 하늘에 뿌린 돈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다행히 결과가 좋아 원하는 학교에 합격한 것으로 위안이 되기는 했지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딸아이가 초등학생 때부터 가야금을 가르쳐 주시고 전통예중에 합격시켜 주셨던 레슨 선생님께서 외국으로 떠나신 까닭에 딸아이 레슨 선생님이 바뀌었다. 훌륭하고 좋은 선생님을 소개 받은 것은 다행스러운 일인데 문제는 선생님이 강남에 계신다는 사실이었다. 학교는 금천구에, 레슨장소는 강남에....

"가장 좋은 것은 레슨실 가까이 이사를 오시는 것이에요."

선생님의 말씀에 아내와 나의 고민이 다시 시작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계산이 서지 않는 강남의 높은 집값에 공무원 부부의 어깨가 쪼그라 들었다.

"아빠, 강남에서 스쿨버스 타는 친구들 엄청 많아. 우리 이사 가자."

세상 물정 모르는 딸아이 말에

"그그그....그래. 강남 좋지."

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집안의 자녀가 음악을 한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은 그저 딸아이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다. 레슨비 걱정없이 레슨 횟수를 따지지 않고 마음껏 레슨을 받게 하고 악기도 두 대, 세 대 척척 사줄 수 있는 부모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부유한 부모를 두었다면 아이가 가진 재능을 더 활짝 피게 해줄 수 있지는 않을까. 교사라는 직업을 천직이라 여기며 자랑스러워 했었는데 요즘은 내가 교사라는 것이 전만큼 만족스럽지 않다.


하지만

20년 전 선배가 자식이 음악에 소질을 보이면 싹을 자르라고 말했던 것과는 달리

나는 그저 딸이 고마울 뿐이다.

내가 좋아 내려갔던 제주도, 그곳에서 오직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서울로 올라온 딸이기에 더 대견하다.

그런 힘을 가진 아이이기에 어떤 일이 있어도 딸이 가진 꿈을 이루어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한 아이의 미래는

어른의 모든 것을 바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흔들리지 않는 버팀목이 되고자 한다.

그래, 이 또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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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쪽에 국회의원, 도지사.... 딸, 출세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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