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아이들과 다시 요가를 하고 싶어지다

by 사막의 요기

미국에서 요가 강사가 되기까지의 과정 중 가장 어려운 건 뭘까? 과제하는 거? 필기시험? 공개 수업?

물론 많은 과제를 하고 필기시험 보고 내 수업을 비디오로 찍어서 평가받고, 또 사람들 앞에서 수업을 공개하는 일련의 과정이 고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어진 커리큘럼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성실하게 따라가기만 하면 강사 자격증은 어렵지 않게 따라온다.


진짜 관건은… 이 자격증이
정말 돈을 받는 ‘일‘로 연결되느냐이다.


20년 전

교사 자격증이 진짜 교사로 연결되려면

임용고사를 거쳐야 했던 것처럼,


지금의 나는

요가 강사가 되려면

이력서, 인터뷰, 데모 수업 등등의 허들을 넘어야 한다.


서…설마… 진짜 해보려구?


나에게 물었다.

“그냥 룰루레몬 때문 아니었어? 일이 넘 커지는 거 아냐?”


맞다. 시작은 룰루레몬이었다.

그냥 할인만 받고 싶은 줄 알았다. 처음엔….


나도 안다.

마흔이 훌쩍 지났고,

여기서 난 외국인이고

한국말이 아닌 영어로 수업해야 하는 거…


다 아는데…

실낱같은 희망이

그 ‘혹시나‘ 하는 마음이 놓아지지가 않는다.


지금 내 몸이 20년 전처럼 가볍지만은 않다는 거?

인정!!!

부족한 영어 실력?

에이… 그것두 인정!!!


그래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는 해볼 수 있잖아…


결국 미국 구직 사이트 Indeed를 클릭했다. 전에 LinkedIn에서 남편이 구직활동 하는 걸 봤던지라 처음엔 나도 LinkedIn에 가입하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이 나 같은 무경력 파트 타이머는 Indeed가 나을 거라 한다. 그쪽이 구인공고가 더 많을 거라고.


뭐, 그래... Indeed로 갔다.

Indeed 양식에 맞게 이력서를 올리라고 한다. 이때까지 이력서는 한국어로도 정식으로 써본 적이 없다.


한국에서 교사는 임용고사를 통해 선발되면 교육청에서 근무지를 정해준다. 다음 근무지 역시 5년이 지나면 교육청에서 정해주기 때문에 사실 교사 생활에서 이력서를 쓸 기회는 별로 없다.


그래 그 이력서라는 것도 써보자. 천천히 쓰면 되지!


돋보기안경을 집어 들었다. 큰 아이 방에 굴러다니는 공책도 하나 가지고 나왔다. 남편은 컴퓨터에 곧바로 쓰는 게 빠를 거라 말한다.


하지만 내 나이 이미 불혹을 넘긴 지 오래.

이미 늦었는데 좀 더 천천히 쓴들 뭐 어때

그냥 나만의 속도로 연필을 잡는다.


무엇을 쓸 것인가… 일단 나에게 질문을 했다. 나는 왜, 누구에게 요가를 가르치고 싶냐고…


초등교사 시절 비가 와 운동장에서 체육 수업을 할 수 없는 날엔 아이들과 강당에서 요가를 하곤 했다. 빗소리와 아이들의 만트라(반복되는 소리를 내는 요가 수련) 소리가 공부에 지친 아이들을, 그리고 행정 업무에 치인 나를 노곤하게 위로해 주었다.


6학년 담임을 하던 해 스승의 날, 요가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우리 반 아이들이 칠판 앞에 빨간 요가 매트를 쭉 깔고는 “오늘은 선생님이 레드 카펫의 주인공이세요!”라고 말해주던 뭉클한 순간도 떠올랐다.


순간 나는 학교가 그리고 아이들이 그리워졌다. 아이들과 함께 요가 수련을 하고 명상을 하던 그 시간… 업무와 민원으로 지친 나에게도, 또 공부로 지친 아이들에게도 위로의 시간이 돼주었던 그리운 순간들이 떠올랐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미국이라는 낯선 곳. 살림에 문외한인 나에게 닥친 전업 주부라는 낯선 일. 나에게 다가온 그 모든 낯선 것들에 적응하느라 미처 돌보지 못했던 내 마음을 열어보니 그곳에는 ‘그리움’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이들과 다시 요가를 하고 싶다


누구와 함께 요가를 하고 싶은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자 이력서는 쉽게 써내려 가졌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는 악기, 운동, 독서 등 다양한 창의적 활동들을 장려하는 학교였다. 그 덕분에 난 내가 좋아하는 요가를 가르칠 수 있었다.


그때의 요가 지도 경력을 이력서에 자세하게 적었다. 그리고 작년에 미국 우리 아이 학교에서 내가 참여했던 봉사활동도 적었다. 여긴 교육 예산이 부족해서인지 담임 선생님 대신 부모들이 학교에서 아이들 미술을 가르친다.


사실 영어가 부담스러워서 처음엔 미술 수업 같은 건 안 하려 했다. 하지만 엄마가 미술 수업 안 하면 자기도 학교 안 가겠다는 늦둥이 딸의 협박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하고 말았다.


미술 수업을 할 때는 영어 때문에 힘들었지만 덕분에 내 휑했던 이력서에 이리 귀하디 귀한 한 줄을 채울 수 있었으니… 우리 딸은 역시 존재 그 자체로 효녀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필요하다는 fingerprint clearance card(범죄기록 없음을 증명하는 카드)도 발급받고 운동 관련 강사에게 많이들 요구하는 응급처치 자격증 CPR/AED도 땄다.


그리고 오랜 검색과 기다림 끝에 키즈 요가 강사를 필요로 한다는 흔치 않은 공고를 발견했다. 이력서를 수백 번 검토하고 심호흡을 한 뒤 ‘apply’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20년 전 임용고사 결과를 기다릴 때처럼 숨죽여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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