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서 개구멍이 필수인 이유

사막에선 개들의 하루가 일찍 시작되거든요

by 사막의 요기

Ten, Nine, Eight.............

Three, Two, One!!!


빰빠라빰!! 드디어 2025년 새해가 되었다. 잘 자다가 갑자기 밤 11시에 깨서는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겠다고 우기는 늦둥이 딸 때문에 결국 우린 모두 12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다. 아니다. 아마 새벽 1시나 돼서야 잘 수 있었을 거다. 카운트 다운이 끝나고도 이웃들의 폭죽 파티가 한동안 계속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늦게 잠들었다고 나를 봐주는
사막의 태양이 아니다.


사막의 태양은 빨리도 찾아온다. 블라인드가 없는 우리 집은 더욱이 그렇다. 한국에서 쓰는 플라스틱 블라인드 같은 건 여기선 햇빛에 녹아버린다. 그래서 이곳 사막 사람들이 제일 선호하는 창문 장식(Window treatment)은 강한 나무로 제작된 우드 셔터이다.


하지만 우리 집에는 우드 셔터도 플라스틱 블라인드도 없다.


햇빛을 좋아하는 우리 강아지 보리와, 우리 보리보다 햇빛을 더 좋아하는 나 때문에 얇디얇은 리넨 커튼만이 우리 집 유일한 창문 장식(Window treatment)이다.


그 리넨 커튼마저도 우리는 활짝 열고 잔다. 우리 집과 우리 이웃들 모두 마당에 식물이 많아 서로 보일 가능성은 적다(물론 구.우.지. 보려고 애를 쓰려면 볼 수도 있겠지만은...).


그래서 우리 집은 오전 5시 30분만 되면 대낮처럼 밝아진다. 아마 한국의 대낮보다 몇 배 더 쨍할 거다.


밝기만 하랴... 시계도 못 보는 우리 강아지는 오전 5시 반만 되면 마당에 나가 첫 쉬야를 하겠다고 문을 긁어댄다.


베개로 귀를 막으며 보리에게 부탁해 본다.

"아... 보리야... 나 어젯밤 12시 넘어서 잤다구.. 그냥 너 패드에 쉬야해. “

부탁을 해보지만 보리는 못 알아들은 척한다(밥, 산책, 간식 같은 말들은 찰싹 같이 알아들으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깨워본다.


"여보! 여보!“

남편도 못 알아들은 척한다.


"우리 딸! 보리 마당 문 좀 열어줘!"

우리 딸도 역시다.


아니, 사실은 우리 딸은 진짜 못 알아들었을 거다(부끄럽지만 우리 딸은 한국어를 잘 못한다). 다시 영어로 딸에게 말해보려다가... 새해 첫날을 외국어로 시작하긴 싫어 그만둔다.


에이... 누구 때문에 늦게 잤는데...

결국 일어나는 사람은 나다.


하지만 나를 보면서 고맙다는 듯이 반갑게 꼬리를 흔드는 보리를 보니 언제 그랬느냐 싶게 짜증이 달아난다.


마당 문을 열자마자 보리는 쏜살같이 뛰쳐나가 자기 볼 일을 본다.


나도 내 일을 한다.


내 일...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은...

단언컨대, 맨발로 이 사막에 서서

세상에 갓 나온 새해의 공기를

원 없이 들이마시는 일이다.


어제 즐겼던 화려한 파티들의 후유증 덕분인지 이웃집들은 다들 조용하다. 하긴 새해 첫날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잠시 주위를 다시 한번 둘러본다.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편하다.


작년 한 해, 수없이 되내어 연습하던 나의 요가 멘트(cueing)들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향해 있었다. 내가 누군가 앞에서 요가 수업을 하는 그 상상의 미래 말이다.


새해 첫날, 나의 요가 멘트(cueing)는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나. 오직 지금 이 순간의 나만을 향한다.


Breathe in, Breathe out....

We are what we are.

You don't have to prove anything here.


그리고 나의 모국어로 요가 멘트(cueing)를 하나 추가한다.



올해는 ‘개ː-구멍'을 달자.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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