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쉴 구멍이 필요한 순간
해외에 살다 보면, 특히 한인들이 많지 않은 이런 사막에 살다 보면 한국 소식을 뒤늦게 아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곳에서도 한인교회나 한인성당을 중심으로 한인 커뮤니티가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종교가 없는 우리 집은 어떤 한인 커뮤니티에도 속해 있지 않고, 두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도 한국 사람이 없어서 나는 평소에 한국 사람을 만날 일이 별로 없다.
이렇다 보니, 나는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한참 후에나 듣는다. 지난겨울 계엄령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지역 라디오에서 해외속보로 듣고 알았을 정도이다.
점점 더워지는 지구
지난주 한국에서 폭우로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피해를 입으셨다는 소식도 부끄럽지만 늦게서야 알았다.
한국에서 폭우가 한참 쏟아지던 그때, 나는 사막의 여름이 건조하니 어쩌니 하는 글을 브런치에 쓰고 있었으니... 얼마나 철딱서니가 없었는지… 더군다나 지구가 더워져서 이렇게 폭우가 쏟아졌던 거라고 하는데, 지구의 온도를 올리는 데 나 역시 일조하며 살아왔던지라 마음이 더 무겁다.
Vegan
Ecoist
Minimalist
사람들은 요가 강사라고 하면 여러 가지 단어를 떠올린다. 비건, 에코이스트, 미니멀리스트... 근데 이 중 나는 하나도 포함되는 게 없었다. 우리 집엔 성장기 두 아이가 있어서 고기반찬이 식탁에 자주 올랐고, 부엌엔 플라스틱 반찬통들과 일회용 종이컵들이 잔뜩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미니멀리스트.... 그건 더더욱이 나와 가장 거리가 먼 단어였다.
미국에 오기 전까지 한국에서 살던 집은 실평수 17평의 오래된 아파트였다. 그 작고 낡은 아파트엔 아주 아주 많은 물건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내 물건이었다. 피아노, 플루트, 젬베, 우쿨렐레 2개(테너 1, 콘서트 1), 단소, 리코더 2개(알토 1, 소프라노 1), 거기다 세운상가를 뒤져서 산 풍금까지… 음악 수업을 위한 것이라는 그럴듯한 핑계로 우리 집은 해마다 악기 수가 늘어만 갔고 집은 터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이 모든 악기들을 이고 지고 여기저기 많이도 이사를 다녔다. 이사 때마다 피아노와 풍금 때문에 이삿짐센터에서는 매번 추가 요금을 요구했다. 그리고 다들 물으셨다. 피아노가 있는데 왜 풍금까지 가지고 있냐고…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나는 그렇게 온갖 짐을 짊어지고는 꾸준히도 탄소를 배출해 왔다.
늘어만 가던 물건들
아이들이 커가면서는 트럼펫, 멜로디언 같은 아이들 악기까지 더해져 집 안 물건의 개수는 더욱 늘어만 갔다. 거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배달되는 아마존 박스… 우리 집 물건의 개수는 계속 플러스, 플러스, 또 플러스였다. 당연히 내가 배출하는 쓰레기와 탄소의 양도 그에 비례해 늘어났다.
그러다가 물건의 개수가 마이너스로 방향을 대전환하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나의 첫 요가 회원님들이 생기면서였다. 나에게 요가를 배우고 싶다고 처음으로 말해주신 주치의 선생님에서부터, 주변에 알고 지내던 지인 분들 몇몇 분이 요가를 배우고 싶다고 하셔서(아마 이리저리 구직 활동을 하는 나를 도와주시려던 따뜻한 마음이셨으리라) 나는 드디어 요가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요가 수업을 하려니 장소를 마련해야 했다. 스튜디오를 빌리는 방법도 생각해 봤지만, 내가 앞으로 얼마나 요가 수업을 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비용이 너무 비쌌다. 결국 제일 비용도 안 들면서 마음 편히 수업을 할 수 있는 우리 집으로 장소를 정했다.
넓은 집을 꽉 채우고 있던 물건들
다행히 이곳 사막은 땅값이 싸서 한국 아파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집들이 넓다. 하지만 집이 넓어진 것 이상으로 물건은 더 늘었기에 그다지 넓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거실은 여전히 요가 수업을 하기에는 턱없이
좁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가는 여전히 너무나 좋았고, 요가 수업도 너무나 하고 싶었다.
거실을 비우기로 했다
그렇게 요가를 위해 나는 거실을 비우기로 했다. 비우기 전의 거실은 이러했다.
거실을 비우기 위해 가족들과 상의(통보?)를 했다. 이곳에선 거실을 보통 패밀리룸(family room)이라고 부른다. 엄마가 패밀리룸에서 요가 수업을 해야 하니, 너희들은 게스트룸으로 가달라고.
예상했던 대로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아이들은 나에게 왜 게스트룸을 놔두고 패밀리룸에서 요가를 하냐고 따졌다. 난 아이들에게 엄마는 게스트가 아니라서 게스트룸으로 갈 수 없다고 답변했다.
그랬더니 두 번째 항변… 왜 그럼 가족인 본인들은 패밀리룸에서 쫓겨나 게스트룸으로 가야 하고, 엄마의 게스트들은 왜 패밀리룸을 쓰는지 그 부당함을 토로했다. 두 번째 변론에선 살짝 말문이 막혔다. 평소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두 오누이가 오늘은 똘똘 뭉쳐 나를 공격했다. 하지만 내편인 듯 내편 아닌 내편 같은 남편이 나의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이 집 대출이자 너네가 내냐?
엄마 아빠가 내지!!!
역시 내편! 아니 남편!!!
우리 부부는 이렇게 치사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패밀리룸에서 게스트룸으로 몰아냈다. 강아지 보리 역시 영문도 모른 채 게스트룸으로 옮겨졌다.
너무 많이 소유하고 살아왔다
애들과 강아지는 이렇게 어찌저찌 몰아냈지만, 진짜 문제는 거실에 있는 이 많은 물건들을 어디로 옮기느냐였다. 눈 씻고 찾아봐도 거실에 있던 소파와 테이블, 그리고 의자들을 옮길 곳은 없어 보였다. 이미 방마다 온갖 잡동사니와 악기들이 그득했다.
자연이 진공을 허락하지 않듯, 내 소유물들은 서로 스크럼을 짜고 한치의 공백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그 오랜 시간 요가 매트 위에서 ‘Exhale, empty it all out’을 읊조려왔건만 정작 내 집엔 바람 통할 숨구멍 하나가 없었다.
Exhale, Empty it all out
이젠 진짜로 소유를 줄여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