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말하는 1등이 아니어도 괜찮고, 금메달이 아니어도 정말 괜찮을까? 한 가지 예시를 들어보려고 한다. 수영 랭킹으로 얘기하면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기 때문에, 축구를 예시로 들어보고자 한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우승은 아르헨티나가 가져갔다. 그렇다면 준우승과 3위는 어떤 나라가 했을까? 축구광이 아니라 월드컵 때만 축구를 보는 사람이라면 사실 우승도 가물가물 할 것이다. 준우승은 프랑스가, 3등은 크로아티아가 가져갔다. 이처럼 1등도 기억되기 힘든 스포츠 세계에서 1등을 하지 못한 운동선수라면 절대 괜찮지 않을 것이다.
기록경기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상대방이나 상대팀의 컨디션보다는 본인의 성적이 기록으로 나타나고, 그것을 토대로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전문 선수라면 1등과 2등 선수의 연봉은 꽤나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2등을 하고, 나의 PB를 단축했다면 그것은 괜찮을까? 물론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1등 선수와 애초부터 경쟁이 안되었거나, 2등 외에 등수를 생각했다가 기록이 잘 나오면서 2등을 했다면 그 등수만으로도 행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등을 두고 경쟁하는 선수라면 나의 PB가 나왔어도 2등을 했다면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어떤 대회인지는 기억이 잘나지 않는다. 자유형 100m를 출전한 후 나는 개인 최고기록을 경신했었다. 1초 이상을 줄일 정도로 좋은 성적을 냈었다. 기록경기에서 심지어 단거리에서 1초는 어마어마한 기록 단축이다. 그러나 나의 라이벌 선수는 내가 넘을 수 없는 기록으로 1등을 했었다. 당시 라이벌 선수의 기록은 고등학교에서도 1등을 할 수 있는 기록이었으므로 내가 느끼는 벽은 보이지 않는 벽이었다. 나의 기록도 당시에 나쁘지 않은 기록이었지만, 그 선수의 기록은 내가 넘볼 수 없는 영역의 기록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1등이 아니어도 내 개인 최고기록을 줄였으니 만족했을까? 그랬다면 이 글을 작성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벽을 느낀 후 사실,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내가 기록을 줄인 것과는 다르게, 나는 왜 저렇게 될 수 없을까라는 실망을 했었다. 라이벌 선수의 기록을 보고, 경기장을 빠져나와 숙소로 가면서도 부러움과 막연해했던 감정이 지금도 선하다. 수영을 그만둘까도 고민했었다. 1등을 하고 싶지만, 할 수 없으니 말이다. 누군가는 등수라도 들었으면 좋겠다, 배부른 소리 한다라고 생각한다면 사과의 말을 전한다. 조금 더 얘기하자면 그 선수를 그 무렵부터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 이길 수 없었다.
실업팀에 가기 전에도 괜찮지 않았다. 좋은 성적을 대학교 3학년까지 내다가 정작 실업팀에 가기 전에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계약 전 전국체전에서 등수 안에 겨우 들어갔지만, 내가 기대한 연봉은 받을 수 없었다. 시작할 때부터, 그리고 커왔던 소속으로 뛰었던 도시에서도 계약을 해주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계약을 했지만, 대학에 가기 전 제시 받았던 연봉에는 한참 못미쳤다. 1등이 아니었기 때문에 말이다. 이처럼 스포츠에서 1위가 아닌데 즐기기는 정말 쉽지 않다. 당장 외부에서 대우가 달라지니 말이다. 하물며 과거의 나를 넘어선 상태에서도 내 앞에 누군가가 있다면 한 없이 작아진다. 그 무렵 나는 높은 스트레스와 압박에 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내가 선수시절 나에게 말할 수 있다면, 등수보단 다른 것에 의미를 두고 등수는 차순위로 쫓아보라고 말할 것이다. 진부한 얘기지만 과정을 조금 더 즐겨보라고 말이다. 듣는 내가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을 테지만. 깊은 슬럼프에 빠진 선수들도 포기하지 않고 정진해서 좋은 성적을 내는 경우도 본다. 그런 선수들을 보면 존경심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나는 왜 경쟁에만 매몰됐었을까라는 후회도 남는다. 조금 더 버텼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