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영을 했을 무렵에 부산의 수영팀은 서로 다른 팀이 대회는 함께 출전하는 문화가 있었다. 사실 문화라고 거창하게 말하기는 그렇지만 말이다. 나중에 다른 도시에서 훈련한 동료들과 얘기 도중 본인들은 각자 팀에서 숙소를 예약했고, 같은 지역이라도 팀별로 행동했다는 말을 듣게 된 적이 있다. 더 나아가 같은 팀도 아니라 개인이 숙소를 예약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아 맞네, 당연히 같은 팀이 아니니 각자 행동하는 게 일반적인 행동이구나’라고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이런 문화 덕분에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다양한 개성의 선배들과 함께 대회를 출전하게 됐었다.
보통 대회를 참가할 땐 모텔을 이용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전국대회를 참가하기 시작한 초등학교 2학년부터 모텔들을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은 찾아볼 수 없지만, 과거 모텔들은 입구에 VHS라고 불리는 비디오테이프들을 서비스 차원에서 빌려서 방에서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모텔들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인포 옆에 비디오 진열장이 크게 있었다. 비디오 종류는 매우 다양했다. 액션부터 멜로, 성인 비디오까지 말이다. 당연히 어린 나이에 관심은 액션이나 멜로보다는 성에 관련된 성인 비디오였다. 당연히 지금 많은 숙박 업소들이 넷플리스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처럼 서비스 차원에 있는 것들이었다. 그냥 가져가서 보고 반납만 잘하면 되었다. 나는 호기심은 갔지만, 성인 비디오를 가져가다가 모텔 주인에게 걸릴까 봐 무서워서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몇몇 선배들은 주인의 눈을 피해 시청을 즐기기도 했었다. 어릴 때 시합을 위해 가게 된 모텔은 대회 출전이라는 명목이나, 휴식이라는 목적을 가지기보다는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 또래와 잠을 자며 노는 것을 더 큰 의미로 생각했었다. 코치들이 아무리 감시해도 대회를 위해 집중하기보다는 밤을 새워서 떠들고 장난치던 시기였던 것이다. 당시에 시설적인 면에는 그렇게 쾌적하진 않았다. 어릴 때 기억을 더듬어봐도 지금처럼 깔끔함을 추구하는 모텔은 별로 없었던 거 같다. 오히려 난해한 에로틱 동상과 같은 인테리어가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그렇지 않다면 어둡고 햇빛이 잘 안 들어오는 분위기의 모텔이 대부분이었다. 대부분 방들은 담배 냄새가 배어있었다. 또한, 대부분의 모텔들은 술집들이 몰려 있는 곳에 있어서 치안도 그렇게 좋지 않았다. 비디오부터 인테리어, 냄새, 위치까지 어린아이들이 대회를 위해 출전했어도, 휴식을 취하거나 정서에는 그렇게 좋지 않았을 거란 말이다.
미국의 마이너리그에 있는 선수들은 대회 출전을 위해 대게 버스 장거리 이동을 한다고 한다. 메이저리거가 되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게 되지만, 그전까지는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땅이 커서 5시간 이상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당연히 이렇게 오랜 시간 버스를 타게 되면 선수들의 컨디션은 저하되기가 쉽다. 조금만 찾아봐도 성공한 메이저리거들이 마이너리그 때 버스 이동을 회상하면서 큰 어려움 중 하나였다고 말한다. 우리도 대회를 갈 때는 대부분 버스를 대절해서 이동했다. 물론 한국이라 이동시간이 짧았지만 말이다. 대회를 뛰기 전에는 출발 시간이 보통 평일이나 새벽인 경우가 많아서 차가 막히지 않아 대회 장소인 타 지역까지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긴장감과 설렘으로 인해서 대회장까지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다 휴게소에서 다른 지역의 선수들과 만나게 되는 경우가 생기면 시합에 대한 여러 감정은 더 고조되기도 했다. 보통 40인승 버스 2대에 조금 여유롭게 타서 대회장으로 이동했다. 잘 모르는 다른 팀 아이들과 함께 앉는 경우가 많았는데 곧 잘 떠들고 친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런 친화력이 나온 지 모르겠다. 당장 고등학생 정도만 돼도 옆에 앉은 사람이 같은 반 친구라도 잘 얘기하지 않게 되는데 말이다. 버스의 좌석에는 서열이 없었다. 맨 뒷자리는 잘 나가는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앉고, 맨 앞줄은 모범생들이 앉는 것과 같은 것이 없었다는 말이다. 다만, 서열이 높은 선배들은 혼자 앉는 특혜를 누릴 수 있었다. 당시에는 우등버스가 없어서 어깨가 넓은 수영 선수들끼리 앉게 되면 어린이들이라도 조금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니 당연히 혼자 앉는 것을 대부분 선호했다. 대회가 끝난 후 집에 돌아오는 날에는 대부분 토요일이나 일요일이었고, 오후 시간대라 차가 많이 막혔다. 어느 날에는 폐막식까지 참가하고 출발해야 해서 자정이 다돼서야 도착한 경우도 있었다. 나는 지금 돌이켜보면 갈 때 힘들었던 기억보다는 끝난 후 올 때 힘들었던 기억들이 훨씬 많다.
수영을 하면서 어릴 때부터 수학여행이나 수련회는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일반 아이들보다는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과 어울리게 되었고, 그것이 지금 삶에서 어느 정도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 수영 대회를 떠올리면 대회에 대한 기억은 잘나지 않는다. 그러나 무엇인가 그 외의 쾌쾌한 무엇인가들은 생생히 기억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