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이렇게 좋았었나?
'봄'이 가고 있다.
마음은 분주하다.
늦기전에, 밖으로 나가야 한다.
남편은 호스를 더 사다가 이었다. 기존의 호스가 짧아 물을 받아서 써야 했는데 직접 물을 주니까 너무 편하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보던 로망, 흩날리게 물 뿌리기가 가능하다.
몇 년 전에 남원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강아지에 고양이에 토끼와 닭까지 키우고 있는 데다 마당에는 대형 수영장이 있고, 작은 연못이 있고 꽃과 나무들이 가득 있었다. 우리 아이들도 너무 좋아했지만, 아침에 일어나 친구가 호스로 마당에 물을 뿌리는데 아, 나도 저거 미래의 우리 집에서 꼭 하고 싶다! 생각했었다.
생각만 하고 잊어버렸던 일들이 기적처럼 일어날 때가 있다. 간절히 바란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바득바득 이 갈아가며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었다. 씨실과 날실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오는 인생에 두세 번 있을 그때에, 우리가 낚은 지금의 시간.
베란다의 봄을 따라 커피를 내린다.
남편 없이 자신 없는 핸드드립.
고소하고 쌉스름한 남편이 내려주는 그 맛은 나지 않지만 그래도 혼자 봄날을 즐기기에 나쁘지는 않은 정도.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꽃들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박스를 잘라서 칼을 만든다며 몹시 분주한 아이들은 1시간째 말도 없다. 아이들이 있는 조용한 평일 오후라니, 적응이 되지 않고 나는 갓 도착한 따뜻한 책을 넘긴다.
지는 꽃들을 보내고 다시 피어날 꽃들을 심는다. 충분했던 봄을 보냈더니 슬켰던 마음이 좀 괜찮다. 원래 조금 긁힌 상처가 더 아린 법이라, 요 며칠간 엄살을 살짝 더한 아픈 소리를 냈었다.
이제 베란다에서 곧 여름을 만나겠지. 기다리는 일이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었나. 요즘은 매일이 새로워서, 위로가 되는 베란다가 있어서 참 좋다. 무엇보다 처음 만난 베란다의 봄이 생각보다 눈이 부시네. 아픈 소리를 내지 못할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