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커피를 사랑한다.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지만 커피는 우리에게 그렇게 되어버렸다. 예전 로마 여행 때 게스트하우스 주인에게 배운 레시피로 우리는 매일 모카포트로 커피를 내려 마신다. 맛있는 라떼는 항상 가능하고, 드립커피로 아메리카노도 마실 수 있고, 여름이면 에스프레소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덩이를 넣어 아포가토도 된다. 맛있는 커피는행복하게도 항상 곁에 있다.
그래도 카페만의 그 분위기, 가 좋아서 그곳에서 마시는 커피 맛은 확실히 다르니까 이 카페 저 카페들을 굳이 찾아 다니기도 했다. 카페는 커피 반, 인테리어의 분위기 반이니까.
그리고 이사 온 집은
야외 베란다가 있으니, 야외 카페 오픈.
남편이 정성스럽게 내린 커피는 항상 맛있다.(그러고 보면 음식은 손맛이고 커피는 정성이다) 나이가 들면서 진한 커피를 마시면 아예 잠을 못 자는데 남편의 커피는 부드럽고 적당히 달고 은근한 맛이 좋다. 그의 커피에 익숙해져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밖에서 커피를 사 먹어 보면 확실히 알게 된다. 커피를 모르고 커피를 파는 곳의 맛과, 정성을 다해 내린 커피의 대조적인 맛을 말이다.
커피가 있고, 가끔은 오븐을 돌려 스콘이나 쿠키나 치즈케이크를 구워서 함께 한다. 커피와 디저트가 준비되었고 야외 베란다의 풍경이 분위기를 채우니 모든 것이 완성.
바깥 햇살과 바람을 맞으면서 맛있게 그러고 기분 좋게 베란다 커피타임을 즐기면 된다. 베란다에서는 별 별게 다 가능하다.
4월.
그리고 20도의 9시 45분.
모처럼 쉬는 날, 아침 브런치는 베란다카페가 제격.
반팔만 입고 학교에 가겠다는 아이에게 바람막이 잠바를 억지로 입혀 보냈다. 그리고 창문을 열었더니, 그럴 만도 하게 훅 들어오는 봄. 날짜를 세어가며 생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우리 모두는 이 날을 기다렸을까. 나는 부랴부랴 커피와 토스트를 챙겨 밖으로 나갈 채비를 차린다.
커피 앞에 놓인 꽃들.
주말에 새로 들인 치자나무와 딸기 모종 세 개.
너희들, 잘 자고 일어났니?
아침인사를 한다. 아이들은 '엄마는 우리한테는 안 그러면서'라고 입을 삐죽인다. 내가 그랬던가? 그래서 '우리 꿀꿀이들도 잘 잤니?' 했더니 '이미 늦었어요'하며 손을 절레절레 흔든다. 간을 녹이는 애교는 없지만, 나는 이런 남자아이들의 유쾌한 말투가 참 좋다. (오히려 간지러운 여자아이들의 애교가 적응이 잘 안 됨)
밤새 딸기 꽃이 피었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딸기를 따 먹을 욕심 어린 눈으로 딸기 잎을 본다. 흰 치자꽃은 맑다. 손 대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때 묻지 않은 그대로의 화이트.
크림치즈와 딸기잼을 바른 토스트와 따뜻하고 맛있는 라떼와 모처럼만의 여유 있는 아침.
해마다 봄이 짧아져 '아쉽다. 아쉬워'를 되뇌었는데 베란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꽃을 보고 바람을 쐬니까 만족스럽게 봄을 누리고 있는 듯한 느낌.
이 정도면 충분해.
그러고 보면 그동안 '봄'이 짧았던 것이 아니라 내가 제대로 '봄'을 보내지 못했었나 보다. 복잡한 인파 속에서 꽃을 보는 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안 다음부터는 봄철이 되면 오히려 그런 곳은 피해 다녔으니까. 그러고 보니 하동 벚꽃길이 생각이 나네. 그곳 꽃길만은 일 년에 한 번은 꼭 걷고 싶어서 아빠를 졸라 새벽 다섯 시에 구례에서 하동으로 30분 차를 타고 굳이 갔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