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하우스 도서관 앞에서 작은 너와

감기와 이제 엄마가 된 나와 어린 너

by 정아름

지독한 감기는 서툰 연애처럼 아팠다.

독일에서 병원 가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적어도 독일어를 하나도 모르는 나에게는 그랬다.

독일은 영어도 가능하잖아?

맞다. 독일 사람들은 영어도 잘한다. 그러나 내가 문제다. 한국에서 12년 간 공립학교에서 배웠던 영어는 이토록 아무 소용이 없단 말인가. 영어 단어 시험 100점을 맞으며 늘 칭찬받던 나는 아무것도 아닌 채로, 영어로 한 문장도 감히 말할 수 없다. 무력하고 초라했다.


감기로 일주일을 앓았다. 고열이 나면 약을 먹고, 혼자 흰 죽을 끓여 몇 숟갈을 떴다. 그리고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기 전에 감기가 다 나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일어나게 했다. 한국에서 아기를 낳고 이틀 후 감기몸살이 걸려 모유수유를 못하고, 하루 종일 울었던 기억이 났다. 몸이 부르르 떨리고 두들겨 맞은 양 욱신거리는데 아기를 만나야 한다는 본능이 정신을 깨웠다. 감기 때문에 수유를 못한다는 것은 어리고 이 약한 생명을 내버려 두는 죄를 짓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나는 몸이 조금이라도 아프면 나아보려고 몸부림을 쳤다. 20대에 아프면 에라이, 하고 누워 엄마가 끓여주는 죽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던 이는 온데간데없었다.


다행히도 독일에서 자전거 여행을 2주 정도 한 이후로는 몸이 굉장히 건강해졌는데, 기숙사가 건조한 데다 난방을 세게 틀었더니, 목이 칼칼해지면서 대번 감기가 왔다. 몸은 아프고, 마음은 속상했다. 살짝 아플 때 달리기를 하면 낫는다는 남편의 생뚱맞은 말에 이상하게 수긍이 가서, 남편과 공원으로 달리기를 하러 갔다. 땀을 조금 흘리고 나면 콧물처럼 끈적 지게 붙어 있는 이 감기가 떨어져 나가는 것도 같았다. 달리기를 하고 집에 돌아와 남편이 건네는 오렌지 계피차를 뜨겁게 마신다. 목을 타고 뜨끈한 액체가 흘러내려간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엄마, 이렇게 환해졌어요."하고 아이는 아침을 알린다. 소아과에서 만났던 독일 의사선생님의 말처럼 맑은 공기 속에서 달리고, 따뜻한 차를 마시고 푹 자고 나니 정말 약이 되나 보다. 아픈 연애가 잠잠해진 것처럼 몸이 정말 괜찮다.



아이를 유치원 보내고,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남편이 바우하우스 도서관 앞에서 찍어준 사진을 발견했다. 아마도 감자튀김을 기다리며 신나 있는 참인 것 같다. 그리고 저렇게도 사랑스러운 우리의 모습이라니.


바우하우스 도서관 앞에서 아빠가 사 올 감자튀김을 기다리는 너와 나.

너를 낳고 44개월 동안 키워오며 정말 고마웠다고,

너에게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나는 아플 수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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