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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준 Feb 20. 2021

어두울수록 더욱 빛나는 법이다

제 2호. 다스이스트프로밧

분명 이틀 전만 해도 이렇게 추워질거란 생각을 못했다. 아침부터 눈이 내리는 통에 온도가 뚝 떨어졌다. 오늘은 최근 며칠간의 착장과는 다르게 입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에이카화이트의 검정색 스웨트셔츠, 베이지 테이퍼드핏 팬츠를 골라 입는다. 주황색 긴팔 티셔츠와 빨간색 반스 볼트 어센틱으로 깔맞춤을 한다. 그리고 그 위에 검정색 경량패딩에 검정색 롱패딩으로 마무리. 이럴거면 츄리닝이나 입을 걸 그랬다.


저녁을 먹고나니 고작 19시 30분이다. 서영이와 추운 바람을 피해 갈 카페를 알아본다. 어제부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하향되면서, 음식점과 카페 운영시간이 22시까지 연장된 까닭이다. 원래 같았으면 이미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카페나 맛집을 찾을 때 'OO역 카페'를 검색한 뒤, 네이버 플레이스에 나오는 모든 목록을 끝까지 확인한다. 그렇게 합정, 상수 인근의 [ 다스이스트프로밧 ]을 찾아간다.




매장 앞에 도착했다. 다소 무거운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다. 기대 이상으로 매장은 넓었고, 생각 이상으로 사람은 없었다. 아마 사람들의 왕래가 비교적 적은 골목에 위치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입구 쪽에 있던 소파테이블에는 한 커플이 노트북을 들고와 자리잡고 있었고, 안쪽 구석의 바테이블에는 과제를 하는 듯한 두 명의 남성이 차지하고 있었다.


"음, 어디 앉을까?"

"여기 4인 테이블에 앉자!"


웬만하면 넓은 테이블을 선호하는 탓에 우리는 비어있던 4인석에 자리를 잡았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큰 글씨로 '착석금지'가 적힌 종이가 테이블 위에 붙여져 있었다. 4인테이블이었는데요, 2인테이블이였어요.



괄호 치고 3인 이상 !



낯선 분위기의 카페를 오면 괜시리 주문하기가 어렵게만 느껴진다. 우리는 마치 이 카페만의 특별한 음료를 마시려는 사람인마냥, 메뉴를 이것저것 구경한다. 블론드 색상의 머리를 한 바리스타분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하우스블랜딩 원두 말고 싱글오리진으로 주문할 수 있나요?"

"필터커피로 주문하시면 가능합니다."


시키지도 않을 비싼 커피 얘기를 하고 자빠졌다.


"그냥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

"하우스블랜딩 원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산미가 적고 바디감이 좋은…"

"네. 그걸로 두 잔주세요."



아이폰 사진은 언제나 옳다. 단, 어두운 곳에서는 통수를 맞기 쉬우니 주의할 것.



"뭔가 되게 넓은데, 차분하다."

"그니까."


단정하고 심플한 블랙 톤의 인테리어는 마치 조용히 있다 가야할 것만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주변 사람들고작 해봐야 4명 뿐이지만도 우리와 같은 생각인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의 말만 주고받곤 했다. 주문을 하고 자리로 돌아온 우리는 적막함을 깨지 않도록 주의하며 의자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본다. 등 뒤로 원두를 로스팅하는 공간이 있었는데, 네 면이 모두 통창으로 되어있어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예전에 한창 많이 가던 앤트러사이트 연희점도 로스팅하는 공간을 통창으로 볼 수 있게 해놓아서 좋았던 기억이 났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2잔중 오른쪽 잔은 이미 다 마셔서 물이다 10,000원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 나왔습니다."


검정색 테이블 위에 놓인 검정색 쟁반, 커피 잔에서 이 카페만의 톤앤매너가 느껴졌다. 심지어는 갈색의 커피 크레마가 검정색으로사실 나는 색약이 있다 보이기까지 했다. 바리스타의 말대로 커피는 산미가 적고 꽤나 훌륭한 맛을 냈다. 베이커리류의 디저트와 꽤나 궁합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왠지 이런 카페에서는 담백한 스콘이나 휘낭시에 같은 것들을 팔 것 같았다. 식사 전이었다면 하나 주문했을 지도 모르겠다.


아이폰을 꺼내들고 커피잔을 찍기 시작소음을 내지 않기 위해 라이브기능을 켜둔 상태로한다. 생각보다 사진이 잘 담기지 않는다. 테이블 바로 위에 있던 황등 때문이다. 강한 황등의 빛을 받아 커피잔 위로 그림자가 계속해서 지는 탓에, 조금 멀리 떨어져서 줌을 최대한 땡겨 사진을 두어장 찍는다. 그러자 그림자를 대신하여 잔 위로 강한 빛이 드리운다. 어두울수록 빛은 더욱 빛나는 법이니까.



ㅇㅅㅁ



어느새 20시 30분이 되었다. 슬슬 나갈 준비 해야겠다 생각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아까보다 더 많아졌다. 심지어는 이제 막 들어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 맞다, 오늘부터 이용시간이 22시까지로 변경됐지? 고작 1시간 차이지만, 참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최근까지만 해도 저녁 식사 후에 마땅히 할 것이 없었는데. 마침내 우리는 카페에 갈 여유를 되찾은 것이다.


"뒤에 있는 남자들, 반팔 입고 있어."

"이 날씨에?!"


뒤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스트레칭하는 척하며 뒤를 돌아본다. 서영이의 말대로 반팔만 입고 있다. 곧 이들의 팔에 새겨진 성난 동물들과 글씨들이 눈에 들어온다.


"음, 이건 나의 선입견이고 편견일 수 있지만, 왠지 타투한 걸 과시하고 싶은 게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다."





자리를 정리하고 매장을 나설 준비를 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마시지도 않은 커피잔을 둔 채 한동안 돌아오지 않는 한 여자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9와 3/4 승강장 알지? 저 의자에 앉으면 다른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거 아닐까?"

"ㅋㅋㅋㅋ그럴수도 있겠다."


다 마신 잔과 쟁반을 바리스타에게 가져다주고는 뒤를 돌아보니 그 여자가 자리에 앉아있었다. 흠칫 놀란 우리는 소리를 감춘 채 웃으며 카페를 빠져나간다. 카페의 이름을 참 신비롭게 잘 지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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