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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준 Feb 27. 2021

남은 테이블에 앉기는 싫어

제 4호. 카페7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시계 초침은 8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겠다' 전날의 다짐을 뇌가 기억이라도 한 듯 싶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은 들었지만 뇌는 멈춰있는 느낌이다. 내 뇌는 고작 2코어로 이루어져있어 빠른 속도로 부팅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CPU는 16코어 32쓰레드 제품도 나온다더라. 기계에 지능이 있다면 언제라도 인간을 굴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전 9시를 알리는 알람 소리가 울린다.


아침은 먹다 남은 빵 3조각과 커피로 대신한다. 사실 이 정도가 내게는 딱 적당하다. 아침 식사를 하며 오늘 할 일에 대한 간략한 계획을 세운다. 영어 공부, 글 쓰기, 폴인 스토리 읽기, 자기소개서 쓰기 ... 일단 카페를 가야겠다. 오늘처럼 바쁜 하루에는 날은 낯선 공간이 주는 적당한 긴장감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너무 멀리 가기에는 귀찮다. 결국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 카페7 ]으로 향한다.



생각을 글로 적자. "방금 무슨 말 하려고 했지?"라는 말이 안나오게끔.

카페갈 때 필수템. 아이패드 & 로지텍 k380 & 스터디플래너 노트



오픈시간에 맞춰 매장에 도착했다. ㄷ자 구조에 전체적으로 통창을 배치하여 꽤나 넓고 시원한 느낌을 준다. 날이 따뜻해지면 바깥의 야외 테이블도 인기가 좋을 듯 싶다. 내부는 다양한 컨셉의 테이블들이 배치되어 있다. 단정한 느낌을 주는 흰 벽에는 적당한 간격으로 액자가 걸려 있다. 가끔 보이는 컨셉 조명들은 내부의 분위기를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다만 아쉬운 점은, 통창이 북향으로 되어 있어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제 막 문을 열었는데도 벌써 몇 명의 사람들은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어디에 앉을까 고민하기 시작한다. 음, 동그란 원형 테이블에 앉을까? 그래. 통창이 보이는 테이블에 앉자. 흠, 6인 테이블에 혼자 앉기에는 너무 눈치가 보이는데? 결국 통창 바로 옆 2인 소파 테이블에 앉기로 결정한다. 챠콜 색상의 소파에 노란색 쿠션으로 포인트가 마음에 들었다. 누가 보면 진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테이블 선정은 카페를 방문할 때 정말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신중할 수 밖에 없다. 좋은 카페에서 원하는 테이블에 앉았을 때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다. 전에 가족들과 함께 오후에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사람으로 가득 차서 남은 테이블에 앉을 수 밖에 없었는데. 남은 테이블에 앉는건 정말 싫다.



제가 손이 큰 겁니다. 잔 나름 커요!

따뜻한 아메리카노 5,000원



오늘도 역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지난 번에 방문했을 때 주문했던 당근케이크는 생각보다 별로였다. 그래서인지 디저트가 들어있는 쇼케이스에는 눈이 가질 않는다. 진동벨을 받아들고 자리에 돌아가 통창으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이 적은 참 푸른 하늘이다. 요즘 하늘 본 적이 별로 없었는데. 다들 스마트폰을 보느라 고개를 들 시간이 없어진 것일까? 가끔은 이동 중에 스마트폰을 잠시 주머니에 넣어두고, 하늘을 보자. 참 마음이 편안해지더라. 주문한지 얼마 되지 않아 진동벨이 울린다. 아메리카노는 참 빨리 나와서 좋다.


할일을 하기 전에 커피를 두어모금 들이킨다. 마일드하고 무겁지 않은 산뜻함이 느껴지는 맛이다. 양도 너무 많지도 않고 적지도 않은 적당한 양이다. 물론 이곳에서 오래 머무른다면 한 잔으로는 부족할 수도 있겠다. 자, 이제 할일을 해볼까? 카페의 음악 소리와 소음을 단절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듣는 편이다. 오늘은 왠지 평화로운 분위기의 음악이 좋겠다. 유튜브에 'peaceful music no copyright'를 검색, 3시간 짜리 영상을 재생한다. 나는 이 영상이 끝나기 전에 집에 가는 편이다. 아이패드를 켜고, 애플펜슬을 연결하고, 블루투스 키보드를 켠다. 그러면 1차 세팅이 끝난다. 그리고 유튜브 영상을 한두개 본다. 누구에게든 워밍업 시간이 필요하다. 스터디노트에 머리 속에 있던 할일들을 적는다. 생각나면 적고, 적어야 생각난다.



언젠가는 네게도 푸른 잎을 피울 날이 오겠지.



에어팟에서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를 뚫고 중년 남성의 큰 소리가 슬며시 파고든다. "야. 내가 그 건물을 ○○억에 샀는데 말이야. …." 아저씨들의 흔한 대화 래퍼토리이다. 실제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 얘기를 하는 중년 남성 손님들이 참 많았다. 그리고 하나같이 목소리가 크다. 주로 재산을 과시하면서 자신감을 얻는 편인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일 안하는 건물주가 되고 싶다. 젊을 때 좀 더 고생하자.


12시가 다가오면서 조용했던 분위기는 어느새 떠들썩해졌다. 이런 외곽 지역에 회사 건물이 있나? 지도를 검색해보니 바로 근처에 경기보건환경연구원 건물이 있더라. 이런 젠장. 생각이 짧았다. 텅텅 비었던 테이블이 어느새 꽉 차기 시작한다. QR 코드를 스캔하는 소리도 끊임없이 들린다. 한 여성이 QR코드 인식이 안되는지 계속 그 주변에서 떠나질 않는다. 답답한지 가슴을 치고 한숨을 푹푹 쉬더라. 마스크로 입모양을 볼 순 없었지만 욕을 한바탕 했을 지도 모른다. 미안하지만 꽤 웃긴 모양새였다.



둘은 좀 친하니?



끊임없이 사람들이 들어오는 걸 보니, 이제 갈 때가 되었나보다. LG gram 노트북을 들고 과제를 하는 한 남자, 신나게 남자친구 뒷담화를 하는 두 여성, 대화의 꽃이 한참 핀 4명의 중년 여성 무리들까지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오더라. 어떻게 이렇게 다들 찾아서 오는거지? 1가구 2차량 시대를 맞이하면서 이제는 장소의 한계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공간은 어떻게라도 찾아가더라. 물론 나도 그렇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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