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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준 Mar 09. 2021

달을 좋아하는 사람

제 6호. 릴렉스 인 다운타운

♬ Moon, 12:04am - Offonoff


오랜만에 회사를 다녀왔다. 지난 두 달동안 출근한 횟수는 고작 5회 남짓.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인지, 직장에 다니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하기는 개뿔 그냥 아르바이트라고 생각 중한다. 퇴근 후 서영이와 아주 강렬한 맛의 마라탕을 먹었다. 맵찔이라 고작 보통맛을 주문했는데도 꽤나 매웠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속의 화를 삭혔다. 무슨 화를 삭혔는지는 비밀이다.


어느덧 저녁 8시. 일전에 방문했을 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던 [ 블루룸 ]은 하필 오늘 휴무였다. 젠장. 어쩔 수 없이 음식점과 멀지 않은 카페들을 찾기 시작한다. 최종적으로 두 개의 카페를 골라냈고, 그 중 가장 가까운 곳부터 찾아가보기로 한다. 혜화역 3번 출구 인근의 으슥한 골목 안에 위치한 [ 서화커피 ]에 도착한다. 직원 왈, "죄송하지만 저희가 오늘은 9시까지만 운영하는데, 괜찮으세요?" 가는 날이 장날이다. 결국 다음 선택지였던 [ 릴랙스 인 다운타운 ]을 찾아 간다.



누구나 가슴 속에 저마다의 소망을 안고 산다.

그리고 달을 보며 그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밖에서 얼핏 보았을 때, 내부가 캄캄해서 일찍 문을 닫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왠지 모를 빛이 스멀스멀 눈에 들어온다. 어쩌지? 일단 올라가볼까? 건물 2층으로 올라가 카페의 입구에 도착하니, 다행이도 사람들이 여럿 앉아있더라. 확인하지 않았다면 다른 카페를 찾았을 것이다. 가고 싶은 카페를 못 가는 것은 참 불행한 일이다.


그레이 톤의 인테리어가 꽤나 인상적이다. 사실 나는 무채색 인테리어에 환장한다. 2인 전용 간이 테이블부터 최대 6인 정도까지 앉을 수 있는 공간도 눈에 띈다. 의도적으로 잘 마감되지 않은 느낌을 주는 천장은 이른바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 느낌을 더했다. 대개 이런 카페는 예술적 감각을 더 뽐내기 위해 편히 앉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테이블이나 의자를 배치하는 경우가 많다.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어도 '카페는 편해야한다'는 나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면 항상 가기를 주저했다. 다행이도 이곳은 그러지 않았다.


"오늘 몇 시까지 운영하시나요?"

"10시까지 운영합니다."


좀전 상황때문에 괜시리 운영시간을 물었다. 남성 직원분은 어쩌면 당연한 소리에도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매장에서 느껴지는 차분한 분위기를 물씬 뽐내는 직원분의 말투에 나는 사장님의 냄새를 맡았다. 말이 나온 김에 '릴렉스 커피'라는 메뉴가 괜시리 눈에 밟혀 물어보았다. 라떼를 베이스로 한 시그니처 메뉴였다. 비엔나커피 외에는 우유가 들어간 음료를 잘 안마신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다. 그렇게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주문한다. 주문을 하고 어디에 앉을 지 고민하던 우리는 직원분의 안내에 따라 분리된 공간의 4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사장님이 확실하다.



커피 바다에 둘러싸인 거품섬



큰 잔을 가득 채운 커피는 꽤나 뜨거워서 맘에 들었다. 호로록하면서 조심스레 마시는 뜨거운 커피의 맛은 가히 중독적이다. 서영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적당한  맛이 선을 넘어가기 직전에 멈추는 수준이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산미는 거의 없고, 마냥 무겁지만은 않은 맛이 우리의 맘에 쏙 들었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컵의 입가 부분에 크레마가 굳으면서 생기는 잔상들이 외관상 다소 지저분해보일 수 있다는 것. 차라리 블랙이나 진한 그레이로 통일된 컵을 쓰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아저씨! 눈에 있는  꽃이에요, 약과에요?



"카페에 가면 가사가 있는 노래가 나오는게 좋아, 가사가 없는 노래가 좋아? 평생 하나만 들을 수 있어."

"음, 가사가 없는 노래가 좋지 않을까? 가끔 가사가 있는 노래가 시끄럽다고 느껴질 때가 있거든."


카페는 오감을 모두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개인이 카페를 어떤 공간으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오감의 중요도에서 순위를 매길 뿐이지, 어느 것 하나 해당되지 않은 것이 없다. 맛있는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면 미각을 만족시킬 수 있는 카페를 찾을 것이고,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공간에서 SNS에 올릴 사진을 찍고 싶다면 시각을 만족시킬 수 있는 카페를 찾기 마련일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정보들은 SNS나 포털사이트 검색을 조금 해보면 쉽게 알아낼 수 있다. 그러나 검색해도 쉽게 알기 힘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청각을 자극하는 매장의 음악이다. 얼마 전에 다녀온 턴다운서비스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도 바로 음악 덕분이다. 물론 대화에 방해되지 않는 수준의 음량도 중요한 건 마찬가지.



그래. 흘렸다.



9시 30분. 이곳에 있던 몇 안되던 사람들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곳저곳 사진을 찍어대던 사람들, ②바로 뒤에 있던 테이블에서 신나게 떠들어대던 사람들도 매장을 빠져나갔고, 어느새 우리 밖에 남지 않았다. 달그락, 쾅. 저 멀리 들려오는 마감 소리는 마치 우리에게 언제까지 있을거냐고 항의하는 것 같아 괜시리 눈치가 보인다. 그래, 이제 가야지! 혼자 마감하면 심심하니까, 우리가 곁에 있어준거야.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매사에 긍정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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