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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준 Mar 23. 2021

받아들이기 나름!

제 9호. 퍼셉션

♬ 그녀가 말했다 - 권진아


저녁으로 김치찜을 먹었다. 선택지는 여러 개가 있었지만, 육체적으로 피로할 때는 역시 한식이 최고다. 같이 곁들여진 반찬들의 구성이 꽤나 괜찮아서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가 되었다.


식사 후에는 항상 커피가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저녁 시간에 방문할 때는 역시나 커피의 맛 보다는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가 더 중요하다. 조금은 유니크한 면이 있으면 좋겠다. 너무 핫한 공간이라 사람이 미어 터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위치에서 멀지 않았으면 좋겠다. 까다로운 다음의 조건들을 만족하는 곳을 결국 찾아냈다. 그렇게 [ 퍼셉션 ]으로 향한다.



알 수 없는 흐름의 모형들은 마치 뇌 속에서 벌어지는 지각;perception의 한 과정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1차선 도로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주택가, 오른쪽에는 불이 꺼진 상가들이 보인다. 생각보다 으스스해서 혼자서는 감히 오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왠지 누군가가 내 뒤를 자꾸만 쫓아오는 기분이다. 발걸음을 조금 서두른다. "가위바위보해서 진 사람, 혼자 끝까지 다녀오기!" 으스스할 때는 역시 장난이 최고다. 곧 다음 블럭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라는 네이버 지도 앱의 설명을 따른다. 지도 어플이 이렇게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다. 저 앞에 카페가 보인다. 휴. 범인은 없는데 있다고 믿는 정신질환환자인 마냥 한숨을 내쉰다. 안심한 순간, 갑자기 푹.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카페는 사진으로 봤던 것 이상으로 작았다. 사진을 정말 잘 찍었다고 생각한다. 그 사진작가, 누구지? 고용하고 싶다. 조금은 이른 시간이라 사람은 별로 없었다. 바 테이블에서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는 한 남자의 뒤를 지나 가장 안쪽에 있는 2인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창가쪽에 앉을까 잠깐 고민했지만, 편하게 쉬다 가기 위해서라면 아무래도 지금 자리가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미리 말하자면, 이 판단은 아주 적중했다.


오늘도 역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야겠다. 서영이는 커피가 아닌 다른 음료를 주문하려는 듯, 메뉴판을 골똘히 쳐다본다. 그러자 나는 장난기가 발동한다.


"사과 계피차 어때?ㅋㅋ"

"오, 그럴까? 괜찮을 것 같은데?"


그렇게 서영이는 정말로 사과 계피차를 시켰다.



사과 계피차 6,500원 / 아메리카노 4,000원



하우스블렌딩 아메리카노는 사실 예상했던 맛이었다. 솔직함을 더하자면, 스타벅스 아메리카노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느껴졌다. 물론 개인의 입맛에는 차이가 있으니 궁금하면 방문해볼 것! 사과 계피차는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다. 계피가 통으로 들어가 계피 향이 그윽할 줄 알았는데, 그 점은 생각보다 아쉬웠다. 이 정도면 만들만 하겠는데? 그렇게 우리는 사과 계피청을 만드는 방법을 검색하기 시작한다. 사람마다 만드는 재료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여하튼 만드는 과정은 그리 어렵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까지 전혀 생각한 적이 없었다는 것. 사람에게 귀찮음을 빼면 시체임이 분명하다.


커피를 두어모금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다가 바로 오른쪽에 있는 매장의 가장 구석에 위치한 한 원목 가구가 눈에 들어온다. 매장 전체를 울리는 빵빵한 스피커 소리는 바로 이 원목 가구 위에 배치되어 있었다. 최근에 내 방 구조를 바꾸면서 블루투스 스피커를 하나 사야겠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막상 찾아보니 정말 좋은 제품들은 내 기준에서 하나같이 전부 다 값비쌌다. 군침만 흘리던 와중 또 눈에 들어오니 참으로 미칠 지경이다. 그래서인지 'marshall' 로고가 박힌 그 스피커를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찾아보니 무려 50만원에 육박하는 제품이었다. 그래. 일단 군침만 조금 흘리자.



다음 중 어색한 문장을 하나 고르시오(10점)



밤하늘에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고, 시계는 저녁 9시를 가리킨다. 우리를 포함해서 고작 3테이블 정도였던 매장은 어느새 사람으로 가득 찼고, 대화 소리는 그 큰 음악 소리가 묻힐 정도였다. 이 카페가 그렇게 핫한 카페였나?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조용한 주택가에서 이런 카페를 찾기는 쉽지만은 않았을텐데. 아니다. 오히려 조용한 주택가에 이런 카페를 만드는 사람이 별로 없긴 하지? 역시 양쪽 의견을 다 들어봐야 한다. 물론 나 포함.



오.. 오천원?



9시 30분이 넘어서야 슬슬 갈 준비를 한다. 합정에서 우리 집까지 약 1시간 30분 이상이 걸리는 탓에 서영이는 나를 서둘러 보내려고 하지만, 오늘도 나는 괜찮다며 이를 만류한다. 얼마 전까지 21시까지 운영했을 때는 정말 죽을 맛이었는데. 저녁먹고 카페도 못갔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은 감지덕지다. 여하튼 우리는 옷을 챙겨입고 자리를 나선다. 나가는 길에 입구 쪽에 있는 조그만 쇼케이스가 눈에 들어온다. 모형인지 진짜인지 모를 디저트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 정도면 한 입에 먹을 수 있겠는데..?" 우리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소리로 조그만 투정을 부린 뒤 서둘러 문을 박차고 나선다.


아, 참.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이 카페는 치즈케이크 맛집이라고 하더라. 귀하신 몸,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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