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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목제 Dec 05. 2022

내 존재 심연의 물,

점점 더 얼어붙어 가는, 재생될 기약 없이,

물은 독특한 물질이다. 물 분자는, 부분적으로 음전하를 띤 산소 원자 1개와 부분적으로 양전하를 띤 수소 원자 2개로 이루어져 있다. 물 분자를 구성하는 산소와 수소는 전자를 공유하는 ‘공유 결합’으로 강하게 묶여 있는 동시에, 이웃 물 분자의 수소를 약하게 공유하는 ‘수소 결합’으로 이어져 있다. 이는 물 분자가 음전하와 양전하를 모두 띠는 극성 분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물 분자는 수소 결합을 통해 덩어리를 이루며, 비로소 물이 된다. 물 분자 하나는 공기보다 가벼워, 수소 결합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을 경우 기체가 되어 모두 날아가버린다.


물 분자가 극성을 지니고 있으며, 수소 결합으로 서로 연결된 분자 구조로 물을 이룬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음전하와 양전하를 모두 품은 극성을 지닌 까닭에 여러 가지 물질을 녹일 수 있으며(전기적으로 양의 성질을 지닌 물질도 음의 성질을 지닌 물질도 녹일 수 있다), 수소 결합으로 여러 물 분자가 연결된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온도가 쉽게 올라가지도 쉽게 내려가지도 않는다. 이는 체액의 70퍼센트가 물로 이루어진 인간에게 중대한 사실이다. 물은 체내에서 여러 가지 물질을 녹이고 운반하는 용매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낼 뿐 아니라, 쉽게 온도가 오르내리지 않는 특성 덕분에 체온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물이 무척 다채로운 물질과 섞일 수 있고, 막대한 에너지(열)를 품을 수 있으며(이는 쉽게 온도를 올릴 수 없다는 특징과 맞닿아 있다), 다양한 형태를 띨 수 있다는 것은, 물에 대한 엄청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게다가 그 상상력은 때로 불가해하기까지 하다. 그리하여 바슐라르는 《물과 꿈》에서 자신이 불에 대해서만큼은 《불의 정신분석》을 통해 합리주의자가 될 수 있었지만, 물에 대해서는 그럴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는 우리가 물의 이미지들에 때로 ‘불합리한 집착’을 보인다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잠자는 물 앞에서 나는 언제나 동일한 우울, 축축한 숲 속 늪의 빛깔을 띤 아주 특별한 우울, 압박감이 없는, 생각에 잠긴, 느린, 고요한 우울을 발견한다. 물의 삶의 사소한 디테일이 종종 내게는 본질적인 심리적 상징이 된다. 예컨대 수생 박하의 냄새는 나의 내면에서 일종의 존재론적 상응을 불러일으켜 삶이란 하나의 향기 같은 것이요, 어떤 냄새가 물질에서 풍기듯 삶도 존재에서 풍기며, 시냇물의 수초는 물의 영혼을 발산할 거라는 믿음을 준다. (…) 사실 존재란 다른 무엇보다도 각성이며, 어떤 비범한 인상을 의식하면서 깨어나는 것이다. 개인이란 그가 가진 일반적인 인상들의 총합이 아니라 그의 독특한 인상들의 총합이다.


실제로, 시냇물의 수초는 물의 영혼을 발산한다. 범신론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표현은 사실 과학적이기도 하다. 수소 결합으로 이루어진 용매로서 물은 다양한 물질을 품고, 이동시키고, 발산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능력으로 다른 존재들과 어우러진다. 또한 그 과정에서 물 분자 자체의 매력과 특징에 다른 존재들의 독특함을 녹여 넣어, 완전히 새로운 인상을 창출해내기까지 한다. 이때 물은 존재를 각성시키며, 일반적인 인상이 아닌, 그 존재만의 독특한 인상들을 발현시킨다. 수생 박하는 물을 통해 자기 자신만의 존재의 향기를 만들어낸다. 거기에는 물의 영혼이 담겨 있다.


물이 존재를 사로잡는 까닭은, 상술했듯, 타자와 어우러지며 존재를 각성시키고 발현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잠자고 있을 때는, 그 자체로 존재할 때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막대하고 깊은, 그 넓이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느리고 고요하면서도, 그 안에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는, 특별한 우울, 시간과 공간과 존재를 감싸안는, 우울을 품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바다, 강, 호수, 연못, 그 어디에서도, 잠자는 물의 우울을, 내 존재의 심연과 상응하는 우울을, 그리하여, 느린 속도로, 서서히 가라앉는, 늪처럼 내 존재와 천천히 뒤섞이는 우울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난, 대체로 그 우울을 사랑했다. 그건, 사랑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생각에 잠긴, 느린, 그 고요한 우울을 결코 놓아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상상력으로서 물, 존재와 상응하는 에너지를 응축한 존재로서 물은, 저 밖에, 물질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존재의 심연에, 헤아릴 수 없는 용적을 차지한 채 자리 잡고 있기도 하다. 그런 까닭에, 내가 물질로서 잠자는 물을 느낄 때, 내 존재 심연의 물도 그를 느낀다. 그건, 조금, 아니, 꽤, 두려운 느낌이다.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을까 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내가 곧 죽음일까 봐, 내가 곧 물일까 봐, 내가 곧 우울일까 봐, 느끼는 두려움이다. 가끔은, 그 막대한 물을 빨아올릴, 그리하여 물의 영혼을 발산시킬, 내 존재를 각성시켜 내 존재만의 독특한 인상을 내뿜을, 커다란, 우주적 나무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내겐, 그럴 만한 힘이 없었다. 아니, 힘이 없었다기보다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겨울의 심장부로 가면, 모든 것이 얼어붙으면, 물의 상상력은 제한되고, 숨죽인 채 그저 해빙이 되기만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미 겨울이 된 지 오래되었고, 심연의 물은 이미 얼어붙기 시작했으며, 혹여 우주적 나무가 있어 뿌리를 내린다 해도, 더 이상 빨아올릴 물은, 많은 것을 품어 안은 용매가 되어, 존재를 각성시키고 발현시킬, 그런 물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라. 존재의 내면 깊은 곳에서 빙하가 된 물, 영구히 얼어붙은 물. 그건 잠자는 물이 아니라 재생될 기약 없이 죽어버린 물. 물질계의, 거대한, 잠자는 물로도 결코 깨울 수 없는, 물이라 할 수 없는 물.


https://youtu.be/W_McF02Q3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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