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둘러싼 삶의 연대기
동맹과 연대는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생존에 매우 중요한 기제로 작용해왔다. 이는 아무런 연대 없이 홀로 생존해내는 것이 인간에게 무척 지난한 일이라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오월이는 처마 끝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와중에 말 그대로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맹렬히 울어댔다. 살려달라는 말이었다. 2011년 5월, 삼색이 오월이를 처음 만났을 때의 일이다. 어미 고양이는 대개 적게는 두 마리, 많게는 대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복수의 수컷과 중복 임신을 통해 다양한 무늬와 색깔의 새끼들을 낳기도 하고, 단일 수컷과 교미를 해 동일한 패턴(이를테면 온통 노랑이)의 새끼들을 낳기도 한다. 지금 사는 마을에서는 까망이가 대세다. 우리 집 마당에서 하숙하는 동네 대장 고양이도 까맣다. 얼굴이 크고 온통 근육질인 이 녀석은 며칠 동안 어딜 갔다 오고 나면 늘 얼굴이 상처투성이다. 가끔 마당에 산책을 나가는 우리 삼색이와 맞닥뜨리곤 하는데, 그때마다 오월이는 어마어마한 비명을 지르며 으르렁댄다. 웃기는 건, 우리가 ‘깜수’라 이름 붙인 수컷 이 녀석은 멀뚱멀뚱 오월이를 쳐다보며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하는 표정을 짓는다는 것. 우리가 ‘까망이’라 부르는 암컷과 깜수 사이에서 난 2세들은 모두 중성화를 시킨 뒤 밥을 먹이고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편의를 위해서였다. 밥 먹일 개체 수가 더 늘어나는 게 겁났던 거다. 내가 ‘중성화 3인방’(편의상 3묘방이 아닌 3인방이라고 해두자)이라고 일컫는 녀석들은 각각 깜돌이, 운이, 봉이라 불린다. 운봉이는 이 동네가 ‘운봉리’라서 부여된 이름이다. 이름을 그냥 대충 지은 셈이다. 중성화 3인방은 중성화 탓에, 그리고 우리가 아기 때부터 밥을 먹인 탓에 어디 가지 않고, 맨날 마당 인근에서 붙어다니며 논다. 셋의 ‘발긁개’로 전락한 감나무 밑동은 껍질이 벗겨져 온통 하얘졌다.
아, 중성화 3인방 외에 한 녀석이 더 있구나. 미처 이름 붙이지 못한 ‘태비’다. 다른 이름을 붙여줄까 잠깐 궁리하기도 했지만, ‘태비’가 입에 붙어버려 바꾸지 못했다. 까망이가 낳은 아이들 중 유일하게 흰색 계통의 태비인 이 녀석은 어릴 적부터 무척 아름다웠다. 워낙 체격이 좋아서 난 녀석이 수컷일 거라 장담했는데, 아니었다. 영리한 까닭에 여간해선 중성화를 위한 트랩에 잡히지 않던 녀석은 최근 첫 임신, 첫 출산을 했다. 태비는 3인방과 어울리지 않고 늘 독자 노선을 걸어왔다. 그러더니 어느 날 아기들을 낳은 것이다. 아기 5마리를 낳았지만, 어디로 이소를 시켰는지 지금은 어미 옆에 딱 붙어다니는 한 마리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디 잘 있을 수도 있고, 한두 마리씩 낙오돼 죽었을 수도 있다. 이곳은 도시와 달리 온 들판과 야산이 다 녀석들의 영역이자 서식지인지라, 굳이 수색과 탐색을 해 아기들을 찾아낼 순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녀석들 중 살아남는 이들이 있을 것이고, 그러지 못할 이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앞마당에 들르는 태비에게 식사와 물을 제공하는 것뿐. 어디 숨겨둔 아이들에게 젖이라도 잘 물리라고 말이다.
새끼 고양이들을 관찰하다 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날 때부터 각기 다른 성격과 특성을 지니고 있고, 이는 이후 생존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태비와 딱 붙어다니는 아기처럼, 어미가 어딜 가든 졸졸 따라다니는 녀석, 겁이 많아 둥지에서 멀리 나가지 못하는 녀석, 가까운 거리는 따라가지만 길을 건넌다거나 좀 먼 곳으로 이동할 때는 머뭇머뭇 주저하다가 결국 제자리에 얼어붙는 녀석, 어미가 안 보이면 목이 터져라 울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녀석, 그저 숨죽인 채 둥지에 숨어서 어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녀석 등등. 젖을 먹을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다. 같이 난 형제의 얼굴을 밟아가며 어떻게든 젖을 무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늘 옆으로 밀려 차례를 기다리는 녀석도 있다. 밥그릇에 앞발과 몸통을 밀어넣고 먹이를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밥그릇 주변을 맴돌며 어디에 머리를 들이밀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녀석도 있다. 이런 과정을 한두 달 지나다 보면 녀석들의 체격과 힘에 많은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첫 발정을 하는 성묘기에 이르기 전에 한두 마리는 죽기도 하고, 한두 마리는 영역을 지킬 만한 힘 있는 성묘가 되기도 하며, 한두 마리는 그저 어떻게든 생존은 해내는 보통 개체가 되기도 한다.
지난해 봄 까망이가 낳은 첫 세대인 깜돌이와 태비에게는 형제 하나가 더 있었다. 온몸이 쥐색이었던 녀석은 겁이 가장 많고 왜소했다. 먹이를 주어도 늘 마지막에 먹던 녀석은 결국 생후 3개월이 넘었을 무렵 죽고 말았다. 지난해 말, 겨울이 오기 직전 까망이가 낳은 두 번째 세대는 딱 두 녀석이었고, 이들이 바로 운이와 봉이다. 깜돌이가 자기 세대 형제인 태비와 어울리지 않고, 운봉이와 어울리게 된 건 아마도 중성화 탓이 클 것이다. 태비는 중성화를 하지 못해 생식 활동을 왕성히 하는 개체가 되었고, 중성화 3인방은 약간 ‘무념무상’인 채 놀고먹는 아이들로 커갔다. 이제 깜돌이와 힘을 겨룰 만큼 자란 운이는 늘 깜돌이에게 몸싸움 장난을 걸고, 둘은 천진난만하게 마당을 뒹군다. 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3인방 중 유일한 여자아이인 봉이의 표정도 볼 만하다. 반면, 태비는, 어릴 적부터 가장 크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던 태비는 아이 다섯을 낳느라 몸이 앙상해졌다. 아이를 낳기 전, 생식 활동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영리하긴 해도) 그리 까칠하지 않던 녀석은, 요즘 밥을 주러 가면 공연히 하악질을 해대곤 한다. 그럼 괜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잘못한 사람처럼 사과하곤 밥그릇을 채워준 뒤 뒤돌아서는 것이다. 철없는 3인방과 태비를 번갈아 지켜보다 보면, 새로운 세대를 뱃속에 품고, 낳고, 양육하는 일의 지난함을 실감하곤 한다.
운이와 봉이가 젖을 떼도 될 만큼 자랐을 때, 우리는 농업기술센터에 전화해 어미인 까망이의 중성화 포획을 의뢰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녀석 역시 더 이상 다음 세대를 낳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이후 얼마간 앞마당에서 두 세대 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던 까망이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어디서 저세상으로 갔나, 하는 걱정을 했지만, 두어 달 지나 한번 들러서는 우리가 준 밥을 먹고 다시 떠나갔다. 우리 생각으로는, 아마도 이 집 마당을 아이들의 영역으로 넘겨주고 어미가 떠난 것 같았다. 어미 고양이는 새끼들이 독립할 만큼 자라면 더 이상 돌보지 않고 떠난다. 새끼들도 스스로 자기 영역을 개척할 만큼 강해지면 대개 어미에게 미련을 두지 않는다. 그래도 완전히 떠나버린 건 좀 의외였다. 깜수의 경우, 영역을 탐색하느라 일주일 넘게 보이지 않다가도 꾸준히 앞마당으로 돌아와 이곳이 자신의 하숙집임을 확인하기 때문이다.
오월이를 처음 봤을 때, 녀석은 이제 막 어미 젖을 뗄 시기가 된 어린아이였다. 아직 어미가 곁을 떠날 때가 아니었기에, 어미가 사망했거나, 오월이가 어미를 놓쳤을 가능성이 컸는데, 문제는 동네 청소년들이 오월이를 데려가 며칠 놀다가 다시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었다.(주변 탐문을 통해 알았다.) 이렇게 홀로 떨어진 어린 고양이가, 게다가 사람 손을 탄 어린 고양이가 길에서 건강하게 생존할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목청은 또 얼마나 큰지 집에 들어와 있어도 목소리가 ‘쨍’하게 귀에 와 박혔다. 지금도 오월이는 노령묘임에도 불구하고 우렁차고 정확한 발음의 ‘야옹’을 한다. 그런 까닭에, 난 가끔 녀석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넌 국어 선생님이 되었어야 하는데…. 아니다, 가수가 되었어야 하나? 어쨌든 동네 고양이들 불러 모아서 너한테 좀 배우라고 해야겠다.”
안타깝게도, 오월이는 너무 이른 시기에 어미 및 형제들과 헤어졌고, 고양이들끼리의 사회화 경험을 한 적이 없다. 타고난 성격 자체도 약간 예민하고 까칠한지라, 다른 고양이도, 다른 사람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 집에 있다 보면, 늘 나를 쳐다보고, 나한테 말을 걸고, 나한테 관심을 달라 요구한다. 저녁 무렵 집에 들어갈 때 오월이가 큰소리로 나를 부르며 걸어 나올 적에 아내는 가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쟤는 내가 밥도 주고 간식도 주고 털도 빗겨주는데, 나랑 있을 때는 저 구석에서 꼼짝도 안 해. 당신만 기다려. 거, 참.”
고양이의 성격이나 관계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고양이‘들’을 데려왔다. 오월이를 데려올 때도 그랬고, 오월이가 네 살 되었을 무렵 샴고양이인 날두를 데려올 때도 그랬다. 예민하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여자아이인 오월이, 태생적으로 ‘관종’인 데다가 몸싸움을 좋아하는 남자아이인 날두. 샴고양이를 데려오면서, 그런 공부도, 고민도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월이는 오월이대로 피곤하고, 날두는 날두대로 심심하다. 게다가 날두는 질투심이 엄청 강해서, 내가 “오월아” 하고 부르기만 해도, 오월이에게 달려가 펀치를 날린다. 얘들아, 미안하다, 다 내 잘못이야. 그래도 우리 그럭저럭 잘 지내 온 것 같아. 그렇지 않니?(정신승리 중)
오월이는 이제 노령묘가 되었다. 관절염이 있고, 비만이며, 눈곱도 많이 낀다. 어린 시절 오월이는, 날두는 따라 하지도 못할 만큼 엄청난 점프력을 자랑하는 ‘코숏’이었으며(코숏은 다양한 고양이들 중에 가장 건강하고 날래기로 유명하다), 안아 올릴라치면 어디 감히 나를 안으려 하느냐는 몸짓으로 앞발을 휘둘러 내 가슴에 열십자 상처를 내곤 하던 용맹함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오월이는 잘 뛰지 못한다. 그저 빠른 속도로 뒤뚱뒤뚱 걸을 뿐이다. 오월이가 가장 좋아하는 건, 나를 불러 옆에 앉혀놓고 궁둥이를 두드려달라 하는 것이다. 가끔 집중력을 잃고 손짓을 멈추면, 금세 고개를 들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야옹” 하며 나를 나무란다. 오월아 미안해, 하지만 너무 오래 두드리다 보면 정신이 아득해진단다.
집고양이의 평균수명이 15년 정도라고 하니, 오월이에게 많은 시간이 남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엊그제는 마을 어귀에서 차에 치여 죽은 어린 고양이의 사체를 묻어 주었는데, 가끔 길에서 죽은 고양이를 보고 오는 날이면, 오월이의 마지막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할머니가, 형이, 어머니가 떠났을 때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던 나이지만, 오월이가 죽으면 아마도 많이 울 것 같다. 오월이는 내 삶의 어려운 시기에, 오랜 시간 동안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함께 지내 온 심리적 동지였다. 가끔은, 오월이와 내가 많이 닮았다고도 느꼈다. 말도 안 되는 괜한 동일시이지만, 그만큼 서로 의지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가끔 오월이에게 묻는다. “오월아, 왜 처마 끝에 혼자 매달려 있었어? 엄마를 잃어버렸어? 형제는 없었니?” 그러면 오월이는 그저 궁둥이나 계속 두드리라며 “야아옹” 하고 소리를 지른다.
알았어, 오월아. 그래도 우리가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야. 난 그렇게 생각해. 너도 그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