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농사 짓는 중?

어쨌든 김매기는 계속된다

by 식목제

감자를 캤다. 대략 20킬로그램 박스로 2.5박스 정도. 지난 초봄 종자용 감자 20킬로그램 한 박스를 심은 결과다. 전국적으로 극심한 봄 가뭄을 겪은 탓에 감자 수확이 좋지 않다고 하는데, 여기는 잎사귀를 태워 죽일 만큼 어마어마한 강풍에 더 큰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내가 작물을 심는 밭은 이 동네에서도 바람이 가장 강한 구역에 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분들도 동의하는 바다. 파종해서 싹이 올라온 감자의 50퍼센트가 바람에 타 죽었고, 남은 녀석들 중에도 이파리가 시들시들하니 겨우 목숨을 연명한 친구들이 대다수다. 그런 까닭에 아무리 농사를 못 짓는 나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 파종을 했다면 적어도 스무 박스 정도는 수확을 했어야 하는데, 세 박스를 채 채우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수확한 감자의 절반 이상이 조림용 감자로 쓸 정도의 귀여운 크기다. 저온 저장고가 없는 탓에 전부 보관해두고 먹을 순 없어서, 어찌어찌 판매할 만한 크기가 되는 것들만 갈무리해 지역 농협 로컬푸드 매장에 소포장으로 열몇 봉지 정도 진열했다. 다행히 모두 팔렸지만, 판매 금액을 다 합해 봐야 종자용 감자 구입비도 되지 않았다. 이젠 남은 감자를 즐기는 것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날마다 감자 파티 중이다. 감자조림, 감자부침, 감잣국 등등.


작물을 기르는 일이란 사람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올 초만 하더라도, 난 감자를 어떻게 팔아야 하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로컬 푸드 매장에서 모두 소화하지 못한 나머지 생산물들을 어떻게 팔 것인가를 생각한 것이다. 예년보다 더 자주, 더 늦은 시기까지 몰아친 양간지풍 위력에 피복비닐이 다 날아가고, 감자 싹이 타 죽기 전까지의 공연한 상상이었다. 게다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강수량이 예년의 6퍼센트밖에 되지 않았다는 봄 가뭄까지 밀어닥칠지는 몰랐던 거다. 아무리 농사 기술이, 농사 장비가 좋아졌다고 해도 옛 어른들이 말씀하시듯 '하늘이 돕지 않으면' 어쩔 도리가 없게 되는 것이다. 실은 기후위기를 '식량 문제' 차원에서도 심각하게 바라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올봄의 가뭄과 이상저온은 분명 기후위기와 무관한 현상이 아닐 것이다.) 산업화, 세계화의 자본주의 체제에서 우리는 '돈'이 있으면 '밥'을 먹을 수 있다 생각하지만, 하늘이 돕지 않는다면, 그리하여 애초에 밥해 먹을 농작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진다면, 그때 돈은 밥을 먹는 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게 된다. 아주 단순하고 명확한 일이지만, 우리는 지금 당장 먹을 밥만 있으면, 그렇게 긴 이야기, 나중의 일은 굳이 고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무튼, 여기서 기후위기라는 거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요지는 작물을 기르고 밭을 일구는 게 녹록지 않은 일이라는 거다. 오랜 가뭄 뒤에 최근 한두 주 동안 꽤 자주, 많은 비가 왔는데, 난 비를 핑계로(괜히 일하기 싫으니까) 밭일을 소홀히 했다. 사실 출근하기 전 매일 밭으로 가서 잡초를 잡아줘야 하는데 외면한 것이다. 그러다 지난 주말 가보니, 어머나, 넌 누구니? 가뭄을 해소해준 빗줄기는 작물보다 잡초를 더 왕성하게 키워냈다. 특히, 명아주, 넌 어디를 찾아봐도 '한해살이 풀'이라고 나오는데, 내가 보기에 넌 풀이 아니야. 나무라고, 나무. 명아주는 싹을 틔워 지상에 얼굴을 내민 직후부터 맹렬하게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곧고 깊게 뻗어내려 가는데, 아 잘 자라는구나, 하며 흐뭇하게 바라보고만 있으면, 나중에는 정말 나무처럼 굵은 뼈대와 깊은 뿌리를 자랑하는 녀석이 된다. 그래서 명아주로 '지팡이'를 만들 수 있는 거다. 애초에 천근성 작물들은 상대가 되지 않는 존재다.(천근성 작물은 뿌리가 아주 얕게 내리는 작물을 말한다. 식용작물 중 상당수가 천근성 작물이다.) 아내와 대화할 때 누누이 말하지만, 우리가 잡초라 부르는 녀석들을 '주식'으로 삼을 수 있게 만든다면 노벨상은 따놓은 당상이다.(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선 안 된다. 인간의 속성상 온 세계의 풀들을 황폐화시킬 거다.)


잡초 제거는 대개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작물과 아주 가까운 부위는 그저 호미와 손이 최고의 도구다. 이 또한 밭일을 할 때마다 누누이 강조하는 바지만, 호미만 한 도구가 없다. 최고의 농기구를 꼽으라고 한다면, 난 주저 없이 호미를 언급할 것이다.(아, 영주호미 사서 써 보고 싶다. 꼭 살 거다.) 호미질을 할 때는 대개 흙바닥에 주저앉아, 풀과 흙과 호미와 내가 혼연일체가 된다. 호미와 함께 지나간 구역이 말끔해진 모습을 볼 때의 희열이란….(다른 생명체를 뿌리째 뽑아 죽여놓고 그리 좋은 거야? 정말이야?) 이때 방심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제거된 잡초는 뿌리의 흙을 털어서 햇살에 노출되게 잘 널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다량의 흙과 함께 덩어리지게 방치하면 금세 살아나 다시 몸을 일으키기도 한다. 정말이다.


작물과 약간 떨어져 있고, 명아주를 비롯한 다양한 잡초 군락이 이루어져 있을 때는 '예초기'를 이용했다. 밭이 작지 않기 때문에(대략 500평 정도, 전업 농부에게는 어떨지 모르지만 내게는 꽤 큰 규모) 작물이 심기지 않은 구역이 제법 있다. 통로 구역, 두둑과 두둑 사이의 헛골, 경사면, 밭 가장자리 등등. 여길 일일이 호미로 승부하다간, 몇 날 며칠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내 손목과 손가락도 금방 해져버릴 것이다. 예초기의 장점은 비교적 단시간에 넓은 구역의 풀을 손볼 수 있다는 거지만, 단점은 호미 작업처럼 뿌리째 제거하는 것이 아니므로 조만간 잡초가 다시 무성하게 자라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호미 구역도 또 풀이 자라게 되지만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아무튼 예초기 제초 구역은 비가 한번 내리고 나면 금세 무성해지므로 다시 예초 작업을 해주어야 한다. 요 며칠 부지런히 예초 작업을 한 덕분에, 잡초에 뒤덮이기 일보 직전이었던 땅콩과 고구마, 그리고 이미 뒤덮인 호박넝쿨을 구해낼 수 있었다.


지난해에도 그랬지만, 이 시기가 되면, 여름이 되면, 내가 작물 농사를 짓는 건지, 잡초 농사를 짓는 건지 알 수 없게 된다. 밭일의 대부분을 잡초 제거에 투입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새로운 종까지 추가되었다. 내가 논농사 일을 돕기 때문에 그 고마움을 소똥으로 갚은 이웃 덕분이다. 소똥이 밭의 유기물 함량을 높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이 녀석이 함께 데리고 온 씨앗도 있었다는 게 문제다. 지난해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풀들이 여기저기서 자라고 있다. 게다가 명아주 못지않게 억세다. 아직 이름은 파악하지 못했다. 아내와 김을 매다가 앞으로는 소똥을 받지 말자 했다. 그냥 영양분 없는 흙에서도 잘 자라는 식물만 기르자고 했다. 김매는 게 힘드니까 괜히 농을 한 것이다.


날이 점점 더워져서 그런가? 밭일하러 가기 싫을 때가 있다. 마음속으로, 가기 싫은 갖가지 이유를 대기도 한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아버렸나? 오늘 아내가 문자로 법륜 스님의 설법을 링크해 보내준다. 요지는 이렇다. '하기로 했으면 그냥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것도, 뭔가 비장하고 엄청난 결심을 할 것도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그냥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냥 하다 보면, 매일 밥 먹듯이, 특별한 이유를 댈 것도 없이 그냥 하는 일이 될 거라는 얘기겠다. 쉬운가? 모르겠다. 어쨌든 내일 아침에도 김을 매긴 매야 한다.


아, 참, 망한 작물이 더 있었구나. 기나긴 겨울을 난 양파와 마늘. 마늘은 구입한 종자보다도 적게, 양파는 뭐 그것보다 아주 약간 더 많게.(하지만 알 크기는 작게.) 마늘도 양파도, 갓 캐어서 맛나다며, 향이 좋다며, 서로 괜히 덕담하며, 그렇게 자위하는 중이다. 뒷집 할아버지가, 마늘농사 망했다 하니, 마늘이 원래 어렵다며 웃으신다. 난 금세 "올해는 마늘 안 심으려고요." 한다. 하지만 또 모르지. 막상 겨울이 다가오면 마음이 바뀔지도. 그렇다고 명아주 농사를 지을 수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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