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제초

마음의 잡풀도 흙을 잘 털어 햇빛에 말리면 좋겠다

by 식목제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일간 ○○' '주간 ○○' 하는 식으로 주제를 선정해 자기만의 글과 이야기를 발랄하게 잘도 풀어내던데 '오늘의 제초'라니, 좀 구질구질한가? 뭐, 아무튼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의 제초'다. 오늘의 제초 목표는 땅콩이 심긴 구역이었다. 몇 주 전 예초기로 한 번 풀을 베어냈지만, 몇 번의 비로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며칠 전, 방울토마토 구역, 고구마 구역의 호미 제초를 실행했는데, 그사이 땅콩 옆 잡풀들이 주변을 집어삼킬 기세로 자라고 말았다. 아침에 밭으로 향하면서, 다른 건 돌아볼 생각 말고 오늘은 무조건 땅콩 구역 김매기라고 생각했다. 다른 데를 돌아보면 안 된다. 자꾸 이곳저곳을 살피면, 할 일이 태산같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사실, 매일 아침 출근하기 전에 조금씩이라도 부지런히 김매기를 하면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자꾸 게으름을 피우는 거다. 게으름을 피우기에 가장 좋은 핑계는 집안일이다. 물론 아침마다 해야 할 일이 있긴 하다. 아내보다 출근이 늦기 때문에 시간 여유가 있는지라, 빨래 돌리기, 설거지, 건조기에 말린 빨래 개기, 다림질, 청소기 돌리기, 고양이 화장실 청소 등등 아침에 해야 할 과제가 있는 건 사실이다. 이 과제를 완수하는 데 드는 시간은 대략 1시간 30분 정도. 그러니 집안일이 좀 밀린 날은, 차로 8분 거리에 있는 밭에 가 일을 하고 다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또 집안일까지 하기가 좀 어렵긴 하다. 그래도 어쨌거나, 핑계다. 밭일이 정말 중차대한 과제라면 한 시간 정도 더 일찍 일어나(보통은 6시 정도에 일어난다) 밭일을 하고 오면 그만이다. 눈이 5시 정도에 떠지긴 하는데, 6시까지 뭉개다 일어나기 일쑤다.


아무튼, 월요일은 공식적으로 쉬는 날이니, 집안일은 오후에 하기로 하고 밭으로 향한다. 계획성 없이 이곳저곳 김매기를 해놓은 탓에, 꼭 예전 어렸을 적 머리에 종기가 나 듬성듬성 머리카락이 빠져 있던 아이들 두상을 보는 것 같다. 그래도 호미로 뿌리째 뽑는 김매기 방법을 적용한 구역은 비교적 깨끗한 편이니 다행이다 생각한다. 창고에서 호미와 방석, 장갑을 챙겨 땅콩 구역으로 가 철퍼덕 주저앉는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다. 가급적 오전 안에 일을 끝내야 한다. 해가 머리 꼭대기에 이르는 한낮에 김매기를 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지난주에는 오전부터 오후까지 8시간 가까이 일했다가 며칠을 고생했다. 괜히 더 일하기 싫어지는 후유증만 남긴다.

3시간 반 동안 한 김매기가 고작 이 정도


비가 온 직후에 김매기를 할 때의 단점은 뿌리에 흙이 다량 딸려 나온다는 것이고, 장점은 뿌리가 잘 뽑힌다는 것이다. 오래 가물 때 김매기를 하면 단단해진 땅에 박힌 뿌리가 좀처럼 빠져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비가 그치자마자 '오늘의 제초'를 실행한 거다. 더욱이, 비 온 뒤에 잡풀을 그냥 방치했다가는 며칠 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자랄 게다. 오늘의 제초에 든 시간은 총 3시간 30분. 3시간 넘는 시간 동안 김매기한 땅콩 구역은 고작 3고랑 반 정도. 그러니 한 고랑에 1시간 소요된 셈이다. 김매기란 이런 것이다. 아니, 김매기 말고도 밭일이란 게 그렇다. 쉽게, 빨리, 많은 양을 해치울 수 없다.

그래도 김매기를 하고 나면, 작물들이 바람을 쐬며 숨도 쉬고, 햇빛도 더 받을 수 있어 좋다. 게다가 잡풀들이 나눠 먹는 양분까지 아낄 수 있으니 향후 결실을 맺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뽑혀 나간 잡풀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뽑히기 전까지 소리 없이 밭을 갈고 있었던 녀석들에게 그저 고맙다고 인사를 건넬 뿐이다. 잘 가렴. 이제는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렴.

오늘의 잡초. 안녕... 얘들아.


김매기를 하다 보니, 이렇듯 잡초를 뽑는 일이 비단 밭일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사 온갖 것들이 잡초 뽑기 아닐까 싶은 것이다. 마음의 문제만 해도, 결국은 틈만 나면 비집고 올라오는 이런저런 잡생각들을 끊임없이 지켜보고 단속해주지 않을 경우, 어느샌가 나를 집어삼킬 기세로 고개를 쳐들기 일쑤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각의 편린들이, 마음의 균열들이 꼭 박멸해야 할 악인 것만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잡초가 고개를 내밀 수조차 없는 흙이란, 그런 흙으로 덮여 있는 밭이란, 결국 작물도 건강하게 생장할 수 없는 곳 아닐까 싶다. 작물이 자라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땅이라면, 이런저런 다른 풀들도 마땅히 자랄 수 있는 땅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잡초를 부정하고 농사를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좀 더 부지런히 잡초 관리를 해주는 것뿐이고, 마음의 문제도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 싶다.


다만, 좀 더 부지런해지면 좋을 것이다. '오늘의 제초'에서처럼 잡풀이 너무 커다랗게 자란 다음에 뽑는 것보다는, 막 고개를 내밀 때 관리해주면 일이 더 수월할 것이다. 아마 옆에 있는 작물 녀석들도 지금보다 잡풀에 덜 치여 스트레스도 덜 받고, 자라기도 훨씬 더 잘 자랐을 것이다. 내 허리와 손목도 덜 아팠을 것이고, 뜨거운 직사광선에 등이 타오르는 일도 줄어들었겠지. 마음의 문제도 마찬가지일 게다. 슬픔과 고통이 계속 고개를 내미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를 마냥 외면하고 있으면, 어느새 주인 행세를 하며 나를 집어삼킬 태세로 으름장을 놓을지도 모를 일이다. 슬픔과 고통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다만 녀석들에게 양분을 주지는 말자. 살짝 들어, 흙을 털어, 햇빛에 놓아두자. 물론 또 다른 녀석이 금세 고개를 내밀고 지상에 올라올 게다. 그러면 또 살짝 들어, 흙을 털어, 햇빛에 놓아두자. 그러자면, 잘 들여다보고 있어야 한다. 수시로 마음의 밭에 들러, 고개를 숙여, 찬찬히 살펴봐야 한다. 물론, 손에 호미를 쥐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겠지.

호미와 장갑과 장화면 충분, 아, 방석도 있어야 돼


어쩌면, 내게 글쓰기란, 이토록 사적인 글쓰기란, 바로 그런 호미질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찬찬히 들어, 흙을 털어, 햇빛에 놓아두는 행위. 마음을 쓰고, 그것을 다시 한번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 마음 뒤의 내가 비교적 더 선명히 보이기도 한다. 그건 꽤 쓸쓸하고 슬프고 아픈 모습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물 속에 어둡게 내팽개쳐져 있을 때보다는, 나은 것도 같다. 그것으로, 조금씩 젖은 마음을 말릴 수 있으니까. 말리다 보면, 내가 조금 더 분명하게 보이니까


그러니, '오늘의 제초'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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