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후배가 출판사를 차렸단다

그이를 응원하며 나를 어루만진다

by 식목제

# 1 _ 후배가 출판사를 차렸다고 했다


15년 전쯤 함께 일했던 후배 편집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몇 년 서로 연락이 뜸하긴 했지만, 이전까지는 그래도 매해 안부 인사를 전해 주던 고마운 후배다. 나처럼 인간관계가 서툰 사람에게 이처럼 오랜 시간 연락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이가 참 고운 사람인 거다.


나와 함께 일하던 시절, 그이는 출판 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한 지 1년을 조금 넘긴 새내기였다. 그랬던 그이가 이제 자신의 출판사를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 간다고 했다. 웹 서점에 들어가 보니 혼자 꾸려 가는 출판사에서 부지런하게도 벌써 네 종의 책을 냈다. 그 목록들을 보니, 오래전 함께했던 그 진지한 청년이 떠올랐다. 그이는 책을 편집하는 일에 진심을 다하는 청년이었고, 내가 빨갛게 교차 교정을 봐준 교정지를 받아들고는 너무 부끄러워하며, 밤을 새워 다시 원고를 만지는 겸손함과 성실함을 가진 청년이었다.


그래서 출간된 책 목록들이 그이를 닮았다 생각했고, 그이가 이제 자기 출판사를 시작한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최근작을 얼른 한 권 구매하는 것으로 창업 축하 인사를 대신했다. 난 이제 너무 먼 곳에 있어서 해줄 수 있는 인사가 그 정도였다.


# 2 _ 동료였던 마케팅 부장도 출판사를 차렸단다


지난해에는 출판 편집자로서 막바지 경력을 보내던 시절,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이는 당시 마케팅 책임자였는데, 이전까지는 월간지 편집장을 지낸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였다. 평소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나름 신중한 성격을 보이는 그이는 괜히 주식이나 비트코인으로 한탕을 노리다가 손해를 보는 전혀 신중치 못한 면도 가지고 있었는데, 그이 역시 이제 마지막 출판사를 그만두고 자기 출판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이에게 부디 한탕을 노리지 말고 자기만의 목록을 잘 만들어 가라는 ‘덕담’을 아끼지 않았다. 그이에게도 책 한 권을 바로 구매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생각해 보니 서울을 떠날 때 나도 그런 나이였다. 내가 책 만드는 동네 언저리에 더 있었다면, 이제는 내 출판을 해야 하는 나이였다. 비교적 더 젊은 나이에 이른바 출사표를 던지는 편집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난 그러지 못했고, ‘월급쟁이 생활’을 더 이상 하기 어려운 막바지에 이르러서도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난 그저 글을 만지는 사람이었지, 한 출판사의 목록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럴 자신이 없었다.


# 3 _ 나는 내 출판을 하지 못해 조금 속상했을까?


처음 출판 편집자 일을 시작했을 때 내 첫 사수였던 선배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야, 넌 공부를 하는 게 나을 뻔했다. 이거 하지 말고.” 공부하는 걸 전혀 좋아하지 않던 나로서는 당시 그게 뭘 뜻하는지 잘 몰랐다. 대학 선배이기도 했던 그이가 학창 시절 내가 얼마나 공부를 안 했는지는 잘 알 터였으므로, 그 말은 참으로 괴이하게 들렸다. 하지만 오래 편집자 생활을 한 이후, 난 그이가 무슨 말을 한 건지 알게 되었다.


난 글을 다루고 원고를 만지는 데 지나치리만치 열심이었다. 번역서를 다룰 때는 사소한 오역을 잡아내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전수 조사를 하듯 원고를 만졌고, 깊이 알지 못하는 분야의 책을 만질 때는 관련 정보를 찾아 읽느라 단 한 줄도 나아가지 못한 채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야근이 일상인 것도 당연했다. 그만큼 원고 보는 속도가 느렸고, 마감 기일을 맞추려면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여해야 했다.


문제는 이게 경력이 쌓인다고 해서 더 빨라지거나 나아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내가 빨리 할 수 있는 것은 원고 만지는 일을 다 끝낸 다음의 일들이었다. 이를테면 책 표지 문구를 정리한다거나 보도자료를 쓰는 일 따위는 것들, 그런 것들은 빨리 처리할 수 있었는데, 그건 사실 원고를 지나치리만치 몰두해서 본 데서 비롯된 결과이기도 했다. 나는 원고 다루는 일에 거의 모든 것을 갈아 넣는 이른바 ‘전통적인 편집자’였다.


‘전통적인 편집자’라는 표현을 처음 들은 건 편집부장을 지내던 한 출판사에서 외부 인사를 초청해 출판 관련 강연을 열었을 때였다. 자신도 편집자 출신이었던 그이는 현재 출판 환경에서 ‘전통적인 편집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비용은 연봉 3000만 원을 넘기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마음이 조금 어수선해졌다. 관리자 역할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한 편집자로서 말한다면 나는 그이가 말하는 전통적인 편집자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본래부터 좋은 책은 수많은 훌륭한 출판인들이 잘 선보이고 있으니 난 굳이 출판사를 차려 세상을 어지럽게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긴 했지만, 그이의 그런 말을 들으니 난 내 출판을 하기가 정말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 4 _ 속상하긴 했지만, 이제는 여기서 잘 살아야겠다


당시 난 그이가 말하는 ‘전통적이지 않은 편집자’가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했다. 다만 분명했던 것은, 내가 더 젊은 시절 선배 편집자들과 함께했던 책 만들기의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는 거였다. 난 내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어느 정도였느냐를 떠나, 그 시대를 좋아했다.


그 시대는 끝나가고 있었고, 끝났다. 하지만 그 시대에 책을 만들기 시작했던 사람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지금도 그 시대를 기억하며, 그 시대에 고민했던 책을 기억하며, 현 시대에 고민해야 할 책을 생각하며, 묵묵히 자기 출판을 해 나가고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이곳에서 만난 온다프레스가, 고흐의 아름다운 ‘아를’을 출판사 이름으로 삼은 내 후배가, 또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많은 출판인들이 그렇게 해 나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편집자로서 끝맺음을 아름답게 하지 못했던 지난날과 그 끝맺음 뒤에 오래 우울했던 내 마음을 조금은 어루만져 줄 수 있게 되었다. 난 여기서도 훌륭한 농업 경영자는 될 수 없을 것 같고, 또 훌륭한 그 무엇도 이루지는 못할 것 같다. 다만 난 또 열심히 밭을 갈 것이고, 또 열심히 밥벌이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여기서 조금은 더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