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목재소로

나무한테 미안하지 않으려면

by 식목제

# 1 _ 나무한테 미안한 책?


하필 목재소다. 책도, 목재소에서 취급하는 대부분의 제품도 나무로 만든다. 물론 지금은 온라인 출판도 활성화되어 있지만, 내가 출판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무릇 책이란 ‘종이 책’을 말하는 거였고, 그렇게 일을 시작한 탓에 지금도 내게 책이란 종이로 만든 것, 그리하여 벌목을 야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편집자 초년 시절에는 선배와 술을 마시며 이 문제에 대해 쓸데없이 진지하게 굴기도 했다. “환경 문제를 거론하는 책을 만든다는 건 좀 어불성설 아닌가요? 책 자체가 반환경적으로 보이는데요. 인간들이 하는 일이 다 그렇죠, 뭐.”

실제로 종이를 많이 쓰긴 했다. 원고를 다루는 편집 단계부터 종이 소비가 많았다. 요즘(이라고 해봐야 내가 마지막 출판사에 있었던 3년 전)에는 원고의 초교를 pc 파일로 보고, 마지막 교정 검수는 pdf로 하곤 하지만, 예전에는 무조건 ‘종이 교정’이었다. 편집자마다 pc가 한 대씩 주어지지도 않았고, 설령 있다 해도 교정은 무조건 출력을 해서 종이에 ‘붉은 펜’으로 보는 것이었다. 초교의 경우 교정지가 온통 붉은 빛으로 넘실대는데, 이걸 결국은 편집자 본인이 한글 파일에 다시 수정해 넣어야만 했다.


책 한 권의 편집을 끝내기까지 그렇게 몇 번이고 교정지를 출력해 보는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종이가 소비됐고, 책을 인쇄할 때 더 어마어마한 양의 종이가 소비되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가끔 ‘나무한테 미안하지 않은 책을 만들겠다’는 결의를 보이는 출판인이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나무한테 미안한 책들이 많은 게 사실이고, 나 역시 그런 책들을 많이 만들었다. “대표님, 나무한테 미안한 책은 만들기 싫습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으니까.


# 2 _ 그것은 분명 마법이었지만


강제 이주 시대를 연 것이 목재소라는 것은 기이한 일이었다. 또 나무로 만든 재료다. 차이가 있다면 이전 재료(종이)를 다룰 때는 주로 머리가 아팠고, 이번 재료(인테리어 목재)를 다룰 때는 몸이 아프다는 거였다. 공통점이 있다면, 대량 벌목이라는 반환경성에 더해, 생산된 재료에 다른 화학물질까지 첨가하기도 하는 ‘반환경성 플러스’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내가 두 일에 대해 무척 불만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데, 사실 난 책을 만드는 일도 목재를 다루는 일도 꽤 좋아했다. 저역자, 기획자, 편집자(때론 기획편집자), 디자이너, 인쇄제책소, 기타 책을 만드는 데 관여하는 모든 이들이 합작해 ‘책’이라는 ‘물건’이 탄생하는 순간 느껴지는 황홀함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인간의 생각, 가치, 감정 같은 것들이 말과 글이 되고, 그것이 종이라는 물성을 통해 시각으로, 촉감으로, 심지어는 (종이) 냄새로 구현되는 과정은 어떤 의미에서 마법과도 같다.


목재를 다루는 일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 경우 나 자신이 전문가가 되어 목재를 다룬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시공 현장에 재료를 배송하고, 또 거기서 일하는 전문가들의 일 처리 과정과 솜씨를 보며, 난 또 이렇게 감탄하는 것이다. “매직이네, 매직.” 집을 짓거나 수리하고, 공간을 새로 만들거나 개조할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직접 목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전까지는 오직 그 결과물만을 봤던 것이다. 하지만 인테리어 전문 목수들을 비롯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업해, 그들의 생각, 기술, 디자인 철학을 실제 공간으로 구현하는 과정을 보면 말 그대로 마법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 3 _ 가치관과 철학, 혹은 책임감


물론 늘 좋은 과정과 결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을 만들 때에도, 인테리어 목재로 공간을 구현할 때에도 재료가 아까운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주로 가치관과 철학 부재, 좀 더 쉽게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책임감 부재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은 책을 만들겠다’는 것은 단지 허세나 호기로운 선언이 아니라, 기왕에 책을 만든다면 책이라는 물성으로 나오는 결과물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하겠다는 책임감을 드러내는 것일 게다. 물론 그런 책임감을 가지고 책을 만든다고 해서 이미 베인 나무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숱한 나무를 베어내면서까지 그 업을 해 나가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나름 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을 만드는 일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재료를 쓰면서도 ‘굳이 왜 이렇게?’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출판 바닥에서도, 이 바닥에서도 그저 그 일로 돈만 벌면 그만이라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이들은 결국 나무한테 미안한 일들을 한다.


# 4 _ 잡설 혹은 변명


혹 이렇게 걸고넘어지는 사람이 있으려나? 나무가 뭐. 나무가 뭐 대수라고. 당신 환경주의자야? 뭐가 나무한테 미안하다는 거야?


아니에요. 난 환경주의자가 아니에요. 인류가 절멸할까 봐, 지구가 멸망할까 봐 두려워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다 죽을 수도 있고, 다 망할 수도 있죠 뭐.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요 뭐. 다만, 우리가 나무보다 더 귀하고 대단한 존재는 아닌 것 같았어요. 우리가 돼지나 소보다 더 대단한 존재는 아닌 것 같았어요. 우리 살자고 나무도 죽이고, 돼지도 죽이고, 소도 죽이는데, 그러자면 좀 책임감도 가지자는 거였어요. 나무한테 미안할 정도의 책은 만들지 말자고, 돼지나 소한테 미안할 정도로 먹어대지는 말자는 거였어요. 그렇게 배고프지도 않고, 그렇게 읽을거리가 부족하지도 않잖아요....라고 나 자신한테 말해 본다. 아무도 걸고넘어지지 않았으니까. 다만 내 마음이 나한테 뭐라고 딴지를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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