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낯선 여행

삶을 여행자로서 살아간다는 것

by 식목제

# 1 _ 낯선 세계의 기억


춘천문화원 인스타그램에 <사진으로 만나는 춘천의 기억>이라는 피드가 게시되고 있다. 춘천 곳곳의 옛 사진과 현재 사진을 오버랩시켜 보여주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그곳에서 소년기를 보낸 탓이다. 흑백사진의 춘천 거리를 만나다 보니, 문득 그 거리에 서서 성조기를 흔들던 옛 기억이 생각난다. 그건 이제는 잊힌 ‘팀 스피리트’ 훈련 때문이었다.


팀 스피리트 훈련은 1993년까지 이어진 한미 연합 군사훈련인데, 당시 춘천 각 학교의 학생들은 팀 스피리트 훈련 기간이 되면 거리에 나가 미군을 향해 성조기를 흔들곤 했다. 외국인을 쉽게 접하기 어려운 시절이었음에도, 춘천에는 미군 부대가 있어서 사정이 달랐고, 내가 살던 집 이층에도 한국 여성과 결혼한 흑인이 살고 있었다.


한번은 친구와 그이가 집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말을 걸기도 했다. 중학교에 다니던 형의 영어 책을 뒤져 꽤 공들여 준비한 퍼포먼스였다. “헬로, 왓츠 유어 네임?” 다짜고짜 “안녕하쇼, 당신 이름이 뭐요?” 하고 물은 셈인데, 이 덩치 큰 사내는 우리가 귀여웠는지 활짝 웃으며 이름을 말해 주고는 위층으로 가던 길을 갔다. ‘아워볼’이었다.


어쩌면 ‘하워드’나 그와 비슷한 다른 이름이었겠지만 우리 귀에는 그렇게 들렸다. 아워볼은 그로부터 얼마 후 자기 부대 수영장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그이가 초대한 건지, 그이 아내가 초대한 건지는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아주 근사해 보이는 수영장에, 그것도 온통 외국인들만 있는 수영장에 갔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누구인가? 해마다 6월이 되면 감사의 마음을 이루 다 전할 수 없어, 길가에 서서 성조기라도 팔이 빠져라 흔들어 예를 표했던 미군 아니던가. 그날의 일을 일기장에 빼곡하게 적어 넣고 무척 뿌듯해했음은 물론이다.


연탄아궁이로 불을 때고, 온 식구가 한방에서 자던 집, 집주인 아들이 같은 반 친구이고, 위층에는 미군과 결혼한 여자가 살던 집, 거기서 일어났던 일. 서로 다른 낯선 세계가 만난 공간, 거기.


# 2 _ 어쩌다 아랍 남자는 독일에 오게 됐을까


내가 외국인을 만나는 걸 넘어, 아예 외국에 처음 나가보게 된 것은 200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가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해외 도서전에 갈 ‘군번’이 아니었다. 딱히 외국어를 너무 잘해서 특수성을 인정한 케이스도 아니었다. 내가 그때까지 외국 말을 ‘실전’에 사용해 본 거라곤 20여 년 전 춘천에서 ‘아워볼’에게 건넨 ‘왓츠 유어 네임’이 전부였다. 마음 좋은 편집장이 자기는 다음 기회가 있으니 한번 경험 삼아 다녀오라 배려해 준 덕분이었다.


덕분에 처음으로 여권이라는 것도 만들어 보고, 해발 고도 만 피트가 넘는 공간을 날아도 보고, 유럽의 한 나라를 방문해 보기까지 하게 되었다. 사실 해외여행(출장이라는 형식이지만, 내겐 머나먼 곳으로의 여행이라는 의미가 더 컸다)은 고사하고 여행 자체를 많이 다녀 보지 못한 내게 독일은 내 인생의 방문 리스트에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곳이었다. 내가 만약 바다 건너 어떤 곳을 가게 된다면, 그건 기껏해야 제주도 정도였다. 그런데 유럽, 독일이라니.


프랑크푸르트에서 나는 할 일이 없었다. 무슨 말이고 하니, 해외 출판사나 에이전시와의 미팅이 잡혀 있는 것도 아니었고, 회사에서 주문한 특별한 임무 같은 게 있지도 않았다.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아 도서전 전시장을 돌아다니고, 저녁에는 숙소에 머무는 게 내 일이었다. 뒤돌아보면, 그때 그곳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어느 날 저녁 숙소 근처 편의점에서 캔 맥주를 사다 먹은 일이다. 맥주가 너무 맛있어서? 아니, 그날 먹은 맥주가 뭐였는지도 기억이 안 난다. 편의점 계산대에서 만난 아랍 남자 때문이다.


나는 왜 독일 편의점 계산대에는 당연히 독일인(사실 독일인이 어떻게 생겨야 하는지도 잘 모르지만)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약간 당황했고, 말없이 맥주와 마르크화(유로화가 아니었다)를 건넸으며, 그도 말없이 거스름돈을 돌려주었다. 어느 가을날 저녁, 독일의 한 도시 편의점에서 한국인 손님과 아랍인 점원의 만남, 난 그게 참 기괴하게 느껴졌고, 숙소에 돌아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독일 방송을 틀어놓은 채 맥주를 마시며 문득 어린 시절 이층에 살던 아워볼을 떠올렸다. 어느 한순간 낯선 외인들끼리 공유했던 공기, 아랍 남자와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삶에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교차점을 가지게 된 그 공간을 기억한 것이다.


아워볼은 미국으로 돌아갔겠지? 아랍 남자는? 아니 다시 물어야겠다. 아랍 남자는 어쩌다 독일에 오게 됐을까? 아워볼은?


# 3 _ 타자와 다른 세계가 공존하는 삶이라는 여행


가끔 낯선 길을 걷거나, 낯선 건물에 들어갈 때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이 길을 걸었겠지.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이 건물을 만들기 위해 벽돌을 나르고 시멘트를 발랐겠지. 거기 그들의 삶은 지금 어디로 이어져 있을까. 또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저기 걸어오는 저 사람의 시선에서 이 거리는, 이 세계는 어떻게 보일까. 우리는 어쩌면 익숙하다 생각하는 이 세계를 낯설게, 서로 다르게 공유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편집자로 일할 때 디자인 회의를 할 때면, 내가 동료들에게 했던 말처럼 말이다. “이봐, 우리는 지금 각자 전혀 다른 색깔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거라고.”


여행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여행의 의미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나는 바로 그 낯섦을 꼽을 것이다. 삶 자체가 사실 낯선 세계와 조우하는 일인데, 여행은 이를 극대화하는 과정이고, 이를 통해 우리는 익숙하다 믿는 자기 삶을 다시 낯설게 하고 환기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낯설게 하기가 우리로 하여금 타자와 다른 세계를 포용하고 그들과 공존하고자 하는 마음을 새롭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도피가 아니라 현실로 돌아오는 과정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아워볼과 아랍 남자가 감행한 낯선 세계로의 삶의 여행도 바로 그런 것 아니었을까. 현실에 발 딛기 위한 과정 말이다.


언젠가부터 삶에 대해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삶은 여전히 낯설지만, 낯선 것에게 말을 걸기보다 익숙한 것에 몸을 기대는 게 더 편해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가끔은 여행자로서 삶을 대하는 태도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여전히 타자와 다른 세계에 곁을 내어 줄 공간을 만들고, 나 역시 그들의 공간에 발을 들여놓을 관심과 애정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만날 삶의 아워볼과 아랍 남자에게 말을 건넬 수 있는 나이기를, 비록 그들과 다른 색깔을 보고 있을지라도 여전히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가고 싶어 하는 나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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