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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나 Oct 07. 2023

애니메이션을 쓰는 마음<8>
(스포주의)

8화. 케이온!-3


해당 글에는 애니메이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보신 분들에게 감상을 권하며 애니메이션을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스포일러가 상관없으신 분들만 읽어주세요.



가능하다면 유튜브에서 ' 天使にふれたよ!(천사를 만났어!/천사에게 닿았어!)'를 들으시며 읽어주세요.





 

나카노 아즈사

 케이온 그 세 번째 이야기, ‘방과 후 티타임(HTT)’의 마지막 멤버 ‘나카노 아즈사(별명 아즈냥)’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이전에 아즈사가 들어오고 난 뒤가 진정한 케이온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 역시 그게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방과 후 티타임(HTT)’은 다섯 명이 모여서 하나니까!(사와코 선생님은 쏘리… 선생님은 선생님의 밴드가 있으시니까요….) 게다가 실제로 ‘방과 후 티타임(HTT)’이라는 이름도 애니메이션이 진행된 뒤 한참 뒤, 아즈사가 들어온 뒤에 정해지기도 했다. 사와코 선생님이 지어준 것이긴 하지만.

 아즈사가 입부했을 때부터가 진정한 케이온의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만큼 1쿨이 지나기도 전에 아즈사가 입부하게 된다. 고등학교가 3년밖에 되지 않는 것을 생각하면 아즈사가 입부하기 전의 1년 동안이 결코 적은 기간이 아닌데 아즈사가 없는 기간은 상당히 빠르게 애니메이션 내에서 지나간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이후 애니메이션 분량이 상당하다.


 그러나 아즈사가 일찍 등장하고 다섯 명의 진정한 ‘방과 후 티타임(HTT)’의 이야기를 마음껏 볼 수 있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여기에는 근본적인 슬픔이 존재한다. 아무리 아즈사가 빨리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한다고 한들, 아무리 아즈사가 등장하고 난 뒤의 이야기가 길다고 한들, 결국 아즈사가 한 학년 아래라는 사실이다. 케이온은 고등학교 부활동으로 밴드를 하는 애니메이션. 누군가가 한 학년 아래라는 사실은 그 누군가만 빼놓고 나머지 부원들은 1년 먼저 졸업(!)을 해버린다는 사실이다.


 졸업.


 사실상 케이온의 후반부 이야기는 이 ‘졸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앞서 이야기한 바가 있듯이 케이온은 밴드 애니메이션이지만 음악 이야기가 많은 애니메이션이거나 음악 이야기가 전문적으로 나온 애니메이션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다. 물론 애니메이션 내내 밴드를 하고 애니메이션 속 노래들이 다 너무나도 좋지만 그것들과는 고등학생들의 우정, 부활동, 고등학교 생활이 주가 된다고 할 수 있고 그 부활동이 밴드활동인 것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케이온의 후반부에 가면 천재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는 밴드 멤버들과 좋은 노래들과 별개로 졸업 이후 진로를 고민하는 에피소드도 존재하고 후반부에서는 부실에 모여 밴드 연습이 아닌 진학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기도 한다.(원래도 밴드 연습보다는 티타임을 더 많이 가지긴 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다는 것은 중학교를 졸업한다는 것과는 또 다른, 10대 시절의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성년자에서 성인이 된다는 사실은 많은 제약받던 일들에서 자유로워지는 설레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그렇겠지만 고등학교까지는 학생들이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거쳐가게 된다. 중간중간 그 안에서도 많은 선택이 있고 일찍이 학교 밖에서의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에스컬레이터처럼 자연스럽게 고등학교 졸업에 도달한다. 한국의 경우 최근에는 대학교까지도 그런 수순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지만 어쨌거나 성인이 된다는 것은 우선 그 에스컬레이터에서 모두가 내리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태어나서 인식하지 않은 상태로 올라탄 에스컬레이터에서 미성년자 때는 꼭 특별히 내리고 싶은 사유가 있어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면 쭉 타고 올라갔는데 성인이 되니 길이 뚝 끊기게 된다. 모두가 우선은 내려 각자의 계단으로 걸어 나가야 하게 되는 것이다.

 사실 졸업을 하면서 하는 선택이 인생 전체를 두고 봤을 때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10대 당시에는 인생의 큰 분기점에 서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시기를 넘어서면 앞으로도 많은 선택을 할 수 있고 이 선택은 정말 하나의 선택일 뿐 언제든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니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때 하게 되는 선택과 상관없는 삶을 산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나 그때 그 순간에는 마치 지금의 선택이 나의 인생을 통째로 결정하는 것 같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러니 졸업 이후 진로를 고민하는 것부터, 졸업 이후의 삶을 결정하고 그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그 당시에는 절박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절박함이 가장 절절하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은 정말은 이제 결정을 하고 그 결정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고3일 것이다. 진로에 대해 별 다른 생각 없이 살던 아이들도 갑자기 선택을 강요받는 시기. 그런 중요한 시기가 아즈사와 다른 멤버들이 다르다는 사실은 그들 사이에 도저히 넘어갈 수 곳이 보이지 않는 높디높은 벽이 세워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나카노 아즈사 1

 실제로 애니메이션에서 다른 멤버들이 고3이 되자 지금까지의 즐거웠던 ‘방과 후 티타임(HTT)’의 부활동 시간에 아즈사와 다른 멤버들 사이의 어긋남이 생긴다. 서로 싸우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서로를 존중하려고 하지만 그들 간에는 분명한 입장 차이가 있다. 음악실에서 얼마든지 진학 시험공부를 하라고 배려하는 아즈사와 공부하는 동안 얼마든지 연습을 하라고 배려하는 다른 멤버들. 고3 내내 다른 멤버들은 오히려 더 아즈사를 신경 쓰고, 배려하려고 하지만 나는 아즈사를 생각하면 자주 외로움을 느낀다. 다섯 명이서 하나였던 우리의 밴드 ‘방과 후 티타임(HTT)’이었는데 모두가 공부를 하는 동안 기타 연습을 하면서 아즈사는 얼마나 자신이 방해꾼이 된 것처럼 느껴졌을까. 얼마나 자신만이 이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졌을까.

 외롭지 않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부활동이니 당연히 신입생이 들어와야 하고 내년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며 2학년이 되자마자 신입생을 찾아 나서며 새로운 밴드를 준비하던 아즈사는 얼마나 외로웠을까. 결국 신입생 유치에 실패하고 지금 이 멤버가 좋다며, 이 멤버로 조금 더 밴드를 하고 싶다고 서로 이야기하면서 좋지만 얼마나 외로웠을까. 누구보다 아즈사 자신이 지금 이 멤버로 계속해서 밴드를 하는 것이 간절했을 텐데, 내년이면 혼자 남아야 될 자신이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을지 생각하게 된다. 즐거울 때마다 이 시간이 계속되길 바라며, 소외감을 느낄 때마다 다가오는 두려움을 느끼며 얼마나 선배들과 같은 학년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반복했을까. 얼마나 같이 졸업을 하고 싶었을까.


 귀엽고, 성실하고, 기타 실력도 출중한 아즈사이지만 나는 아즈사를 생각할 때마다 씁쓸한 마음을 숨기기 어려워진다. 부활동이란 원래 선배들은 하나둘 졸업하고 또 후배들이 들어오고, 후배였던 내가 이제는 선배가 되고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방과 후 티타임(HTT)’은 그저 사쿠라가오카 고등학교의 경음악부가 아니다. 다섯 명의 ‘방과 후 티타임(HTT)’이라는 밴드인 것이다. 밴드도 물론 멤버가 나가거나 새로 들어오는 일이 있기야 하다만 부활동과는 다르지 않는가.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이 멤버 한 명, 한 명, 모두가 모여야 ‘방과 후 티타임(HTT)’이 되는 것이다.

 물론 졸업 이후에도 모여서 밴드 활동은 할 수 있을 것이고 네 명이 먼저 졸업한다고 해서 아즈사보고 밴드에서 빠지라거나 한 것도 아니지만 부활동을 전제로 시작한 밴드이고 프로를 목표로 하지도 않는 만큼 같은 학교에서, 같은 부활동을 할 때만큼 밴드 활동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 같이 졸업을 해도 성인이 되어 각자 상황이 달라지고 바빠지고 하며 이전과는 달라질 상황들이 아쉬울 텐데 심지어 아즈사를 제외한 남은 네 명은 같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실제로 진학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네 명이 같은 학교에 진학하니 밴드 활동을 이어나가기 수월할 거고 그래서 밴드가 해체될 위험이 멀어져서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후 아즈사가 학교에 진학을 하는지, 진학을 한다면 네 명이 간 학교로 진학을 목표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1년만 있으면 또 이전과 비슷하게 밴드 활동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같이 졸업을 하는 것과 남겨진 1년을 보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지금 한 공간에서도 선배들과 자신의 시간이 다른데 물리적으로도 완전히 달라진 자신과 선배들 사이의 간격이 얼마나 휑하고 외로웠겠는가. 그리고 남은 1년은 어떡하는가. ‘방과 후 티타임(HTT)’을 하는 것은 별개라고 치고 자신만 남게 되면 자신이 책임지지 않으면 경음악부 자체가 폐부 되어버리고 경음악부의 존속을 책임지자면 자신은 다른 이들을 모아 다른 밴드 활동을 해야 한다. 밴드를 한 군데만 활동해야 한다는 법이야 없지만 선배들과 함께 하던 음악실이 전혀 다른 풍경이 되는 것은 마냥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나카노 아즈사 2

 나는 많은 일에서 새로운 것을 잘 받아들이는 편이지만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기존의 좋아하던 캐릭터들이 사라지고 새로운 캐릭터들이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잘 못 보는 편이다. 러브라이브도 1기를 재밌게 봐서 2기를 아직도 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사실 아즈사보다도 내게 아즈사는 ‘방과 후 티타임(HTT)’의 멤버인데 새로운 밴드의 멤버가 되는 것은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실제로 ‘케이온!’의 원작 만화로는 결국 선배들이 졸업하고 아즈사는 친구들과 후배를 모아 ‘새싹 걸스’라는 밴드를 만들어 경음악부 존속을 성공해 내고 이 밴드에 대한 이야기가 후속작으로 나왔다. 나는 이 만화를 볼 자신도 아직 생기지 않았는 데다가 내가 아즈사였으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의, 선배들의, 그리고 나의 경음악부의 존속이 내게 맡겨져 있다는 현실이 힘들어 울었을 것이고, 내가 선배들과 같은 나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같이 졸업할 수 없다는 사실이 힘들어 울었을 것이고, 그럼에도 경음악부의 존속을 포기할 수 없어 울었겠지. 그러나 결국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진 못했을 것 같다. 또다시 학교 무대에 서고 싶었겠지만 새로운 밴드로 무대에 서고 싶지 않았을 것 같다. 결국 새로운 밴드를 모집하고 운영을 도와주는 정도이지 않았을까.

 또한 현재 연재 중인 케이온의 스핀오프 만화는 원작 시기에 ‘방과 후 티타임(HTT)’의 공연을 보고 밴드를 결성한 다른 고등학교 밴드의 이야기라고 알고 있다. 나는 케이온을 애초에 만화로는 보지 않기도 했지만 앞으로도 후속작을 언제 받아들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후속작 중 ‘방과 후 티타임(HTT)’ 멤버들이 대학에 진학한 뒤 밴드 활동을 하는 ‘케이온! College’ 또한 있지만 이 또한 궁금하면서도 여전히 보지 못하고 있다. 아즈사가 빠진 ‘방과 후 티타임(HTT)’을 받아들일 자신이 아직 없다. 차라리 학교 밖에서 다섯 명이서 밴드 활동을 하거나 아즈사도 졸업한 뒤에 다섯 명이 다시 모여 밴드 활동을 하는 후속작을 내줬으면 어땠을까. 지금도 여전히 케이온이 연재되고 있는 만큼 슬쩍 언젠가 성인이 된 다섯 명이서 ‘방과 후 티타임(HTT)’을 이어나가는 후속작도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나카노 아즈사 3

 이 아즈사를 볼 때마다 아파오는 마음은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부분에서 터져버린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던, 늘 어른스럽던 아즈사가 결국 졸업식날 울면서 졸업하지 말라고 선배들에게 떼를 쓰는 부분은 몇 번을 봐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난다. 물론 졸업이 끝은 아니다. 이후 극장판에서는 선배들의 졸업 여행도 아즈사까지 다 같이 가고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졸업은 분명 졸업이다. 더는 매일매일 같은 고등학교 학생, 같은 부원으로 하루를 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졸업이 가져다주는 슬픔이 기쁨이 될 수는 없다. 헤어짐은 끝이 아니지만 어떻게 헤어짐을 슬퍼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아즈사를 위해 졸업식날 음악실에서 아즈사 몰래 준비한 노래인 ‘천사를 만났어!(천사에게 닿았어!)’를 선배들이 연주해 주는데 이 곡이 또 정말이지 명곡이다. 개인적으로 케이온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 그래도 이미 울고 있는 나를 펑펑 울리는 노래로 음도 좋지만 가사가 예술인데 ’ 졸업은 끝이 아니야, 계속 영원히 함께야’ 등의 가사를 들을 때면 어느새 아즈사에 빙의해서 마치 내가 그 상황에서 그 말을 듣고 있는 것같이 느껴진다. 다른 케이온 노래는 듣지 않더라도, 케이온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으시더라도 이 노래만큼은 꼭 가사를 곱씹으며 들어보셨으면 좋겠다.




 케이온은 사실 덕후도 많은 만큼 비난하는 사람도 많다고 하는데 ‘모에’라는 요소의 지평을 애니메이션계에 연만큼 ‘미소녀동물원’이라고 까이기도 한다고 한다. 나는 케이온의 캐릭터 요소들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사실 케이온에 마냥 긍정하지 않는 부분도 분명 있다. 비단 케이온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라기보단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전체적으로 해당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19금 만화가 아닌 케이온에 캐릭터가 팬티가 보여 인기가 많아진다거나,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수위 높은, 성적 판타지가 가미된 옷을 입히려고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케이온은 기본적으로는 성적인 개그를 많이 친다거나 요소가 많은 만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비교적 다른 애니메이션에 비해 현실적인 여고생의 몸무게 스펙을 설정하고 작화 또한 비교적 현실적인 외형으로 그리기도 한 만큼 여성에 대한, 혹은 남성에 대한 잘못된 성별에 따른 편견을 심어주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많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19금 만화가 아닌데도 성적인 판타지를 개그 요소로 삼고 심지어 잘못된 성에 대한 사고를 심어줄 수 있는 요소들도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싶을 정도로 많이 활용된다. 잘못된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이 가득 담긴 요소들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는 애니메이션도 상당히 많다. 최근에는 그래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 생각하지만 과거의 애니메이션들은 더욱 그러했다.


 점점 달라지고 있다 생각하니 내가 말을 덧붙일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에 대한 문제에 대해 짧게나마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성적인 요소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면 성적인 요소가 무조건 잘못된 것은 아니며 분명 건강하게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아직 미성숙한 어린아이들에게 잘못된 성적 요소들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 미숙한 아이들에게 잘못된 성적 요소들이 주는 강한 자극을 주게 되면 그것이 설사 잘못된 요소인 것을 인지할 정도의 나이이고 실제로 인지했다고 본인은 생각하더라도 잘못된 성적 사고방식들이 무의식적으로 각인된다. 게다가 덕질까지 하면 어떻겠는가. 비교적 더욱 자유로운 덕질 세계에서 실제로 성에 대한 경험은 미미한 상태로 자극적인 잘못된 성적 사고방식을 즐기게 되면 그것이 덕질일 뿐이라고 생각하더라도 자신의 무의식적인 성적 인식이 그런 방향으로 쌓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잘못된 성적 인식은 쌓여가지만 어릴 적에는 마음껏 접할 수도 없는 만큼 더 그것을 갈망하게 되고, 자극은 점점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되며, 결국 성인이 되어도 이미 건강하지 못한 성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힘든 상태가 되어있는 것이다.

 어릴 때 처음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인 사고방식은 성인이 되어 그것을 바꾸려고 노력하더라도 쉽지 않다. 앞서 성적인 요소에 대해 주로 이야기를 했지만 성별에 따른 고정관념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잘못된 것을 어릴 때도 알아도 어릴 때는 그것을 스펀지처럼 자연스럽고 빠르게 흡수하게 되어버리고 그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사고방식에 대해 남아 그 방식을 즐기든, 이용하든, 행동하든 그 방식을 계속해서 떨쳐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덕질이라고 해서 무조건 모든 것을 자유롭게 즐길 수 있고 용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특히 그런 잘못된 요소들을 무분별하게 즐기도록 하지 않으려면 어린 덕후들이 접하는 콘텐츠에서부터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사 성인이라면 문제없이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이더라도 성인이 되어 건강한 사고방식으로 어떠한 콘텐츠를 접해서 즐기는 것과 어릴 적에 미성숙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어떠한 콘텐츠를 접해서 즐기는 것은 천지차이이다.


 나 또한 부끄럽지만 건강하지 못한 사고방식으로 자란 덕후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앞으로의 이 건강하지 못한 사고방식을 건강하게 바로 잡는 것은 나의 과제이며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건강하지 못한 사고방식에 기여한 것은 어릴 적 덕질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스스로 덕후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운 덕후로서 애니메이션을 쓰고 있기까지 하지만 어릴 적 조금 더 건강하게 덕질을 할 필요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사실이다.


 케이온 또한 꽤나 옛날 작품으로 그런 요소들이 심한 작품이라 생각하지 않음에도 분명 문제가 되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케이온은, 케이온을 보고 자란 우리 덕후들은, 애니메이션계는, 아직 어린 새로운 덕후들은 점점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에든 장점만 있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오늘의 단점에서 배움을 얻어 내일의 장점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는, 케이온은 그렇게 해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니 마지막에 단점을 줄줄이 이야기해서 케이온에게는 미안하지만 케이온을 보며 즐겁고 행복한 덕질뿐만 아니라 이러한 요소들도 한 번 더 생각해 보며 앞으로의 케이온 덕질을, 애니메이션 덕질을 이어나가면 어떨까 슬쩍 권유해 본다.

 마지막에 조금 케이온을 깐(?) 것처럼 됐지만 이렇게 3화나 이야기보따리를 풀고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남았을 만큼 케이온은 사랑스럽고 멋진 애니메이션이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더 나은 방향으로 함께 나아가고 싶을 만큼 좋은 작품이라는 이야기였으니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은 다들 꼭 한 번 보시길 권유드리고 싶고 한때 케이온 덕후였다면 오랜만에 다시 한번 케이온 덕질을 즐겨보시는 건 어떨까 권유드리고 싶다. 오랜만에 보는 애니메이션은 추억이 되살아남과 동시에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또 다른 것들이 보이는 매력이 있기도 하지 않은가. 특히 애니메이션을 쓰는 마음을 읽고 보신다면 더욱 새롭고 즐거운 덕질이 되실 것이다.




 다들 추석 연휴 잘 보내셨나요? 저는 코로나 투병에 정신없는 나날이기는 했지만 푹 쉬고 왔습니다. 긴 휴재 끝에 찾아온 날에 말도 없이 늦게 찾아뵙게 되어 죄송합니다. 자주 이런저런 사정으로 늦는 모자란 작가임에도 항상 기다려주셔서 감사하고 앞으로 정해진 날짜에 늦지 않게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추석 연휴 이후 정신없는 3일이 지나고 또다시 3일 연휴가 시작되었네요. 추석 연휴 동안 푹 쉬신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오히려 더욱 바쁜 하루하루를 보낸 분들도 있으실 것 같아요. 모두 추석 연휴보다는 짧지만 3일 연휴 동안 푹 쉬시고 즐겁고 행복한 연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 새로운 애니메이션을 쓰는 마음으로 만나요.


해당 글은 경기청년갭이어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표지 그림 출처 : https://namu.wiki/w/%E5%A4%A9%E4%BD%BF%E3%81%AB%E3%81%B5%E3%82%8C%E3%81%9F%E3%82%88!

본문 그림 출처 : https://namu.wiki/w/%EB%82%98%EC%B9%B4%EB%85%B8%20%EC%95%84%EC%A6%88%EC%82%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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