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나, 그리고 너희

2. 나에게 친구란

by 하현태



6년이 지나 같은 등굣길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있는 중학교. 처음으로 반에 들어가 앉아 있으니, 아는 얼굴이라고는 잠깐 다녔던 학원에서 만난 애 하나가 전부였다. 친하게 지냈던 애들과 흩어진 교실은 생각보다 불안했다. 그러나 그 불안은 채 한 달이 가지 않았다.


여차저차 시간은 흘러 B, K, S라는 무리가 생겼다. B는 웃긴 애였고 K는 조용한 애였으며, S는 잘생긴 애였다. 당시 사회과부도 교과서에 그랜드 캐니언에 관한 내용이 있었는데, B가 그 페이지를 통으로 외웠다. 그러고는 쉬는 시간만 되면 사람이 몇 명 그려져 있는지, 그랜드 캐니언이란 무엇인지에 관해 조잘거렸다. 중1, 딱 그런 내용이 재밌을 나이 아닌가. 그렇게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K는 B의 단짝이었다. S는, 어떻게 친해졌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데, B의 붙임성 덕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유치원 때부터 단짝인 K와 농구를 하다 친해졌던 걸로 기억한다.


2학년이 되고 반이 섞이며 K와 S를 알게 되었고, 초등학교 동창인 두 명의 J와도 더 가까워졌다. 중간중간 어렴풋한 이름들이 있는데, 당장 기억나는 건 저렇게 일곱이 전부다. 그중 연락이 끊긴 K를 제외한 애들과는 가끔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마산즈’가 되었다. 우리는 일 년에 두 번은 만났고, 일 년 중 365일을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눈다. 대학생이 되고 여러 단톡방이 생겼지만, 이 방만이 유일하게 ‘장애인’이란 단어가 자유롭다. 나는 그런 자유로움이 좋다.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단톡은 하나도 없다. 아니, 연락하는 친구가 있냐는 질문에 당당히 답으로 내놓을 수 있는 이름이 M, 한 명뿐이다.

같은 반이었던 M과는 크게 접점이 없었다. 그러다 2학년, 독서 토론 활동에 나를 끼어 주어 급격히 친해졌다. R과 M, 그리고 나는 ‘19’라는 이름을 짓고 정말, 정말 열심히 했다. 아직도 생각나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 그 기억 덕에 우리는 더 빠르고 깊게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복도에서 첫 번째 줄 맨 뒤에 앉아 있었고, M과 R은 교탁 쪽에 서 있었다. 변명해 보자면 당시의 나는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래서 의견을 내지 않고 조용히 듣기만 했다. 그들은 그게 마음에 안 들었다.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엎드려 자는 척했다. 뚜벅뚜벅. 그들이 다가왔다. 크게 혼나거나, 팀에서 제외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들이 내게 준 것은 내침이 아닌, 장난스러운 꾸중이었다. 이후로는 정말, 정말 열심히 했다.

M이 아니었다면 국어국문학과를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M이 아니었다면 책을 사랑하지도, 시를 쓰지도 않았을 것이다. 낯간지럽지만, M은 내 삶의 연장선이 되어주었다. 가볍게 언급하자면, 나는 2019년 2월에 죽으려 했다. 진심으로.


대학생이 된 후 생긴 대표적인 단톡방으로는 ‘-롤-’이 있다. 처음에는 동기 J, 선배 P와 롤을 하기 위해 만들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A, L, C, P까지 일곱이 모여 만담을 나누는 톡방이 되었다. J는 새터 때 방을 돌다 알게 되었다. 당시 선배의 옆자리에 앉아 있어서 당연히 선배인 줄 알았다. 이후 동기라는 것을 알고 놀랐던 게 아직도 생각난다. L은 새터 때 같은 조였다. 날카롭게 생겼고 담배까지 피우길래 무서운 애인 줄 알았는데, 그냥 가늘고 먹는 것을, 특히 술을, 좋아하는 애였다. C는 부산 만덕 출신이라는 이유로 빠르게 친해졌다. 이후는 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19학번의 마스코트이자 영원한 막내가 되었다.

A는 두 학번 위의 선배였는데 과방에서 살다시피 했다. 어쩌다 보니 19학번의 요정이 된 그는 마냥 재밌다가도 가끔 어른스러운 형이다. 두 명의 P 중 한 명은 학생회 선배였고, 다른 한 명은 짝선배였다. 전자는 정말 멋진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허당에 게임을 좋아하는 애였다. 후자 역시 처음에는 마냥 큰 사람이었는데, 지내고 보니 정이 많고 재밌는 애였다.


나는 나와 관련된 그들을, 그리고 그들과 관련된 모든 것을 사랑한다. 나에게 친구란 거리낌 없이 ‘장애인’이라 불러주는 존재고, 거창하지 않게 함께이기를 권유해 주는 존재이며, 술에 취해 휠체어를 밀고 오르막을 질주하는 존재이다.


혹 이 글을 읽고 나와 친해지고 싶어졌다면, 부디 거리낌 없이 다가와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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