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에게 시란
고등학생 때가 생각난다. 석식을 먹고 9시까지는 야자 시간이었다. 모두가 잠과 싸우고 책과 씨름하던 그때, 나는 교실 맨 뒷자리 아니면 복도에 마련된 자습실 책걸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시나 써댔다. 그때의 시를 묶어 처음이자 실패작인 『빛과 어둠의 그림자』를 냈다. 255페이지나 되는 대서사, 시. 그때의 난 감정을 숨기는 법을 몰랐다. 그래서 이백오십오라는 막대한 페이지에 내 전부를 받아 적었다.
“시를 써야겠다.”
이런 다짐을 하게 된 계기는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반 친구 M. 두 번째는 ‘폼생폼사’. 마지막은『죽은 시인의 사회』.
M에 관한 이야기는 이전에 했으니 넘어가고. ‘폼생폼사’는 이름 그대로 시에 살고 시에 죽는 자율 동아리였다. 처음 결성되었을 때는 낯을 가리는 탓에 들어가지 못하고, M과 친해진 후에야 들어갔다. 저녁을 먹고 교실로 가던 길 5반 K와 1반 L이 내 지원서를 잘 읽었다며, 함께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해줬던 건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
한 달에 두어 번, 정독실 야자까지 전부 끝난 11시부터 1시간 30분 정도 모여 시를 나눴다. 공간을 예약하는 게 어려워 세탁실에 모이기도 했다. 우리는 행복했다. 아니, 나는 그때에서야 비로소 숨 쉴 수 있었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원서가 수업 교재였다. 읽기만 했을 뿐 아니라 난도질하듯 단어와 문법을 공부했고, 그게 시험 문제로 출제되었다. 아, 이 모든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감상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윌튼 아카데미와 김해외고는 퍽 닮아 있었고, 죽은 시인의 사회와 폼생폼사는 판박이였다. 그 짧은 시간도 없었다면 나는 닐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모쪼록 폼생폼사에 든 후부터는 교과서보다는 시를 더 가까이했다. 쓰고, 쓰고, 또 썼다. 그때의 시들은 대부분 다시 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감정이 진하거나, 화자가 곧 저자인 것 천지였다, 만 그때는 그게 내 세상이었다. 그것만이 숨구멍이었다.
3년 동안 심리학과를 가겠다고 설치던 내가 마지막 3달의 결정 끝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내신과 수능의 벽은 높았다. 정말. 너무나도. 예비 1번으로 합격하자마자 당연하게 문학 학회에 들었고, 당연하게 시를 썼다. 동기들은 이미 몇 권의 책을 낸 내가 멋지다고들 말했다. 그럴 때마다 기쁘면서도 한 편으로는 양심에 찔렸다. 이게 시집이라고 불리는 게 옳은가에 관해 한참이나 고민했다.
2019년 연말. 유성호 교수님이 나를 불렀다. 대뜸. 정말 대뜸 한대신문 문예상에서 내「새 (鳥)」가 가작을 받았단다. 내 시가 처음으로 인정받은 순간이었다. 기뻤다. 행복했고, 잠실 롯데타워에서 스테이크를 썰었던 게 생각난다.
이후 정말 많은 시를 썼고, 책을 냈다. ‘빈칸’을 만나 글 전시도 여럿 해보고, ‘파도’와 ‘꿈공장플러스’에서 책을 내기도 했다. ‘시시싯’을 만났고, ‘마우스북페어’에 두 번이나 나갔다. 이런 다양한 경험 중 가장 인상적인 것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책방 오타루’에서의 북토크라고 말하고 싶다.
북토크. 정확하게는『포에틱 이펙트 1%』의 독서 모임이었다. 우리의 시를 읽은 사람들과 우리의 시에 관해 이야기하고, 들었다. 우리의 시가 누군가에게 닿은 현장. 그것보다 보람찬 장소가 또 있을까. 나의 문장이 누군가에게 밑줄 그어진 상황. 그것보다 행복한 순간이 또 있을까.
“사랑합니다. 감사의 말로는 부족할 것 같아 대뜸 고백부터 하게 되었네요.”
모임이 끝나고 소감문을 적을 때, 이 문장이 가장 먼저 생각났다. ‘감사’라는 단어에 감정을 담기엔 너무나 빈약해 보였다. 그래서 정말 대뜸 고백으로 시작했다. 이후의 문장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을 찍어올걸 그랬다.
나에게 시란.
이 주제로 글을 쓰고 있는 것도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도 어떤 단어도, 어떤 문장도 찾지 못했다. 지금 이 문단 역시 딴짓과 시집의 힘을 빌려 간신히 늘어놓고 있다. 이 십여 년 동안 시에 숨은 뜻과 시인의 의도를 찾아 점수만 받아본 폐해일까. 문장을 이어가는 것도, 다음을 생각하는 것도, 무척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다만 한 문장이 머릿속에서 맴돌 뿐이다.
나에게 시란.
있어 보이는 비유와 환유 따위에 담기에는 너무 진심이고, 없어 보이게 줄이기에도 너무 진심이다. 대뜸 생각났는데, 시를 쓰지 않았더라면 2019년보다 조금 더 일찍 죽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시란.
아직은, 어쩌면 평생, 이 문장 앞에 서면 굳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한 가지, 시를 쓰는 이유만큼은 명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