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그래서, 그랬다고

2. 챙기긴 해야 하는데 할 건 다 하는 친구(2)

by 하현태



국어국문학과. 내가 이곳에 진학할 것이라고는 정말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그 석 달의 고민과 결정이 내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켰다. 대학생이 되고 많은 것이 변했다. 우선 99년생이라는 이유로 형 오빠 소리를 듣게 되었고, 아침까지 술을 마셨으며, 함께 놀러도 다녔다. 그 모든 순간 동안 나는, 19학번 하현태였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L의 연락이다.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L에게 연락이 왔다. 왕십리에서 동기들과 술을 마시는데, 너도 나오지 않겠냐고. 그때, 그 연락은 내게 무척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L과는 새터의 같은 조였고, 여차여차 말도 잘 통해서 빠르게 가까워지긴 했다. 그런데 그런 연락을 받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혼자가 편했다. 대학생이 되고 난 후에도 비슷할 것이라 여겼다. 그렇기에 새터의 분위기는 조금 어색했다. 그들은 나를 평범하게 대해줬다. 새터 당시 조원 모두가 술과 음식을 가지러 나갔을 때 M과 둘만 남은 적이 있었다. 조용하게 있으려 했는데 웬걸, M이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먼저 말을 걸어준 것. 그것 자체가 매우 신기했다.

새터는, 정말이지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났다. 그 모든 시간을 같은 방에서, 함께 보냈다. 함께. 3개월 전만 해도 교실 분위기가 싫어서 복도를 나돌았던 내게는 무척이나 어색한 분위기였다. 가끔 술을 마셔도 괜찮냐고 묻기는 해도, 이제는 이 질문도 없이 내게서 술을 빼앗지만, 끝까지 함께였다.


다시 L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아무튼 그 연락을 받고 무지 놀랐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으나 대여섯 정도가 모여 있었다. 그때의 만남을 계기로 우리는 더욱 빠르게, 더욱 깊게 친해졌다. 시간이 지나 이에 관해 물어보니 L은 뭐 그런 걸 묻냐는 반응이었다. 여전히 웃기고, 소중한 친구다.


L과는 이날 이후 영혼의 단짝이 되었다. 그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술자리가 2021년 5월 1일, L, S, K 넷이 함께였던 때였다. L과는 점심부터 함께였고, S와 K는 저녁에 모였다. 그렇게 1차, 2차를 지나 대망의 3차. 마땅히 갈 곳이 없던 우린 편의점 맥주와 새우깡을 사고 근처 아파트 공원으로 향했다. 그 길이 꽤 경사진 오르막길이었는데, 취한 L은 휠체어를 끌고 신나게 달렸다. 물론 더 취한 나는 좋다고 두 팔을 쭉 뻗고 바람을 만끽했다. 그걸 지켜보던 K와 S는 어이가 없다며 동영상을 찍었다.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이후 가평으로, 건대로 기 엠티를 갔고 강원도로 답사도 갔다. 그 모든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고 보니 과의 중심이 되어 있었다. 이 중 P와 친해진 계기가 아주 웃기다.

P의 첫인상은,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서울 사람 그 자체였다. 나긋한 서울 말씨와 아나운서 같은 외모. 처음 봤을 때부터 친해지고 싶었지만, 딱히 계기가 없어 시간만 흘렀다. 그러다 P의 생일. 친해지고 싶다는 마음 딱 하나만으로 선물과 함께 카톡을 보냈다. 이후 빠르게 술약을 잡았다. 나는 치킨집을, P는 소주만을 위한 집을 추천했고 결국 치킨집에 가게 되었다.


그때의 P와 나는 안면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다시 말해서, 내 주량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서 P는 크나큰 오해를 했다. P는 정말 술이 목적이었고, 나는 술보다는 대화와 치킨이 목적이었다. 여기서 P는 내가 자신에게 다른 목적이 있는 줄 알았다고 했다. 물론 이 오해는 대략 30분, 맥주 한 잔에 취한 내 모습을 보고 풀렸지만 말이다. 살뜰하게 취한, 나만 취했던가, 우린 친한 동기이자 동생인 J에게 오라고 연락했다. 다시 생각해도 웃기다. 잠실에 사는 J에게 당장 왕십리로 오라고 했으니. 그런데 더 웃긴 건, 정말 바로 달려온 J다. P의 오해를 들은 J는 아주 크게 웃었다. 살뜰하게 마신 우린 이마트를 한 바퀴 돌고 헤어졌다.


2년 전 L, J, B, P, W와의 왕십리 술자리에서 들었는데, 당시 자신에게 생일 선물을 준 게 동기 중에서 내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다른 학교에서 반수를 하고 온 P는 여차여차 과 생활에서 멀어진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내게 처음으로 선물도 받고 성격도 잘 맞았으니 내가 꽤 소중했었나 보다. 2차 자리였는데, 아주 아주 거나하게 취한 P가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의 모두를, 특히 나를 칭찬했다. 우린 소중한 구경을 한다며 웃었고 다음 날 P는 머리가 깨질 것 같다며, 어제 실수한 건 없냐며 물었다. 다시 생각해도 참, 웃기고 소중한 친구다.


그래, 그랬다. 이런 식으로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연락하고,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성격 덕에 건달의 부학회장을 3년 동안 연임, 반강제로, 했고, 과대와 학년 대표와 선거관리위원장을 겸임했고, 술자리를 위해 사람을 모으는 것도 내 몫이 되었다. 웃긴 일이다. 지금도 서울에서 동기들을 만나려면 내가 연락을 돌려야 한다. 서울에서 가장 먼 곳에 사는 내가 그 역할을 맡았다는 게 웃기지만 말이다.


그 모든 시간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시를 쓰고 책을 낸 멋진 사람, 술은 못 마시면서 술자리에는 항상 있는 사람, 국문과의 마당발, 자기 이야기는 안 해도 잘 들어주는 그런 사람. 나는 그렇게 살아갔다. 그렇게 살아올 수 있었다.


2018년 11월 수능이 끝났고, 12월부터 계속 불합격을 통보받았다. 2019년 1월 즈음 간신히 예비 1번을 받고 2019년 2월. 중학교 동기 K와 롤을 하다 받은 등록금 관련 문자. 예비 발표 하루 전이었기에 스팸인가 긴가민가한 얼굴로 이름과 수험번호를 채워 넣을 때. 그때의 내가 2월 말의 나를 상상이나 했을까.

교실과 멀어졌고, 그 길고 깊은 여백을 채우기 위한 노력은커녕 복도를 나돌며 시나 쓰던 2017년부터 2018년까지의 나. 다가오지 않았으니 다가가지도 않았던 그때의 내가, 2020년의 나를 그려보기나 했을까. 다시 생각해도 정말이지 꿈 같은 나날이었다.


나는, 내가 그런 사람이 될 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래 나는, 내가 챙김을 받을 줄만 아는 그런 멍청이로만 살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나는 챙기긴 해야 하는데 할 건 다 하는, 굳이 챙기지 않아도 모두의 곁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었다. 그런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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