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래서 우리라
나의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했다. 특히 앉아 있는 나에 관한 것이라면 꽁꽁 싸매기 바빴다. 그랬던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나는 성장이라 부르기로 했다.
5월, 영국 여행기의 업로드를 예약해두고 시드니를 다녀왔다. 해외를 다닐 때마다 느끼지만, 이번에는 정말 마음에 드는 휠체어 브랜드도 알게 되었다, 휠체어가 참 많다. 그래서인지 사람들도 익숙하다는 듯 반응한다. 카드를 찍고 플랫폼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직원들이 다가와서 어디로 가냐, 슬로프가 필요하냐 물었다. 그 이야기를 모든 역에서, 모든 직원에게서 들었다. 서울에서는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친절을, 시드니에서의 일주일 내내 들었다.
오페라하우스에서는 투어 예약을 도와준 직원을 만났고, 서큘러키에서 자빠졌을 때는 멀리서 뛰어와 손수 일으켜주신 어르신을 만났다. 시드니. 날씨는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사람은 그 어디보다 좋았던 곳. 그런 곳에서의 일주일은 무척 꿈 같았다.
나는 아직도 사람이 무섭다. 초등학교 때 산 지팡이가, 삼발이라 부르는, 그렇게 싫었다. 그것과 걸으면 모두가 나를 보고, 모두가 나를 비웃는듯한 기분이 들어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 그 삼발이를 들고 갔다. 그걸 들고 혼자 걸었고, M과 함께 걸었고, A와 함께 걸었다. 혼자 걸었을 때는 10분만 지나도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는데, M과 함께 걸을 때는 30분을 꼬박 걸어 다녔다고 한다. 함께 걷는 게 이런 기분이었구나. 나는 그걸 올해가 되어서야, 스물하고도 일곱을 더 먹고서야 알게 되었다.
더 현대에서 혼밥도 했다. 스시집에 웨이팅을 걸고, 기다리고, 차례가 와서 자리에 앉기까지를 모두 혼자 해보았다. 사실 전에도 몇 번 식당에 혼자 앉아 먹었는데, 웨이팅부터 자리 안내까지의 과정을 오롯이 혼자 경험한 건 처음이었다. 돌아보니 이번 서울 여행은 정말 뜻깊은 시간이었다.
혼자.
나는 아무래도 혼자가 편했다. 과도하게 친절하게 구는 것도, 눈치껏 양보하는 것도 싫었다. 어딜 가든 인사나 설명, 소개 같은 게 나에게 온 적이 없었다. 어렸을 때는 가만히만 있어도 누군가가, 대부분 엄마가, 대신 해결해주니 무척 편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전조증상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김해외고에는 멘토멘티 제도라는 선후배 교류 문화가 있다. 우리는 후배가 선배의 키워드를 뽑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하하호호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선택받았다. 그게 후배 K다. K는, 정말 나 같았다. 1년 전 멘토 선배 O에게 “너는 참 말이 없구나!”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몰랐는데, K를 만나 보니 그때 선배의 심정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천천히 친해졌고, 처음으로 학교 밖에서 밥을 먹었다. 그런데 아뿔싸! 나는 직접 주문해 본 적이 없고, K는 낯을 가려 말이 없다. 그런 어색함 속에서 나를 움직인 건 ‘선배’라는, 어쩌면 처음 가져보는 책임감 비슷한 거였다. 18년 인생 처음으로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음식을 주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리고 별것 아닌 그때의 그 경험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때의 그 내가, 참 대견하다.
혼자.
혼자가 편하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 그 욕구와 요구가 커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혼자 라면을 끓여 먹었을 때, 비로소 혼자여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동기들의 도움도 컸다. 그들과 함께한 술자리와 약속들이 나를 혼자이게 했다.
가장 큰 계기는 작년 2월, L의 집에서 보낸 하룻밤이다. 요리와 술을, 특히 술을 아주, 좋아하는 L과의 저녁은 삼겹살과 고구마 소주로 시작해서 육사시미와 불냉면으로 마무리했다. 그때, 그 집이 인생 두 번째 친구 집이었고, 첫 남의 자취방이었다.
우리는 정말, 99년생만의 품격있는 시간을 보냈다. ‘장송의 프리렌’을 보며 김치와 삼겹살 조합에 감탄했고, 패션이 구리다며 핀잔과 옷을 선물 받았다. 잘 때 즈음에는 연애에 관해 허탈하게 이야기했다. 팁을 준답시고 낸 L의 중저음 목소리로 내뱉은 문장은 아직도 어이가 없다.
요즘은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더위 탓이 가장 크고, 나가도 볼 사람이 없다는 게 두 번째로 크다. 그 덕에 요리 영상을 보며 언젠가 해 먹어 봐야지, 생각하며 라면과 배달 음식을 찾는다.
예전이었다면 생각도 하지 못했던,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 글이 올라가는 8월 6일 아침은 싱가포르 가족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있을 시간이다. 아주 어렸을 때의 일본을 시작으로 초등학교 졸업 여행으로 동창 K와 떠났던 홍콩과 마카오, 고등학생 때 다녀온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일본, 작년의 영국과 올해의 호주, 그리고 싱가포르까지. 벌써 8개국을 돌아다녔다. 연말쯤에는 후쿠오카를 다녀올 예정이다.
여행을 다닐수록 뚜렷해지는 문장들이 있다.
“다음엔 혼자 오고 싶다.”
지난달에 전주에서 해본 덕에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성능 좋고 튼튼한 전동 휠체어와 삼발이면 어디든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국내 여행을 혼자 다녀와 보고 다음은 일본, 그리고 가능하다면 유럽까지 다녀오고 싶다.
“다음엔 동기들과 오고 싶다.”
동기 J, K와 저녁을 먹으며 여행에 관해 이야기했다. 대학 동기들과 어디로든 떠나는 것이 꿈인 나는 당장 떠나자는 말을 간신히 삼켰다. 아무래도 그때는 혼자여야겠지. 그러나 혼자만은 아니겠지.
상상만 해도 행복한 시간이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혼자는 못 살겠다 확신한 내가, 이제는 혼자 떠날 생각까지 하고 있다. 나는 이걸 대뜸 고백부터 하게 된 계기라 쓰고, 우리라고 읽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