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래서 너였고
나에게는 10년이 넘는 인연이 정말 많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나 생각해 보니, 새삼 듣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느 정도냐면, 술자리에서 “넌 네 이야기를 참 안 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말이다.
꽤 충격이었다. 그 정도로 내 이야기를 안 하나, 하고 잠깐 돌아봤다. 정말 안 했다. 술자리에서는 술이 약하다는 이유로 조용했고, 다른 자리에서는 게임이나 농담 정도의 가벼운 주제에 관해서만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내 이야기를 먼저 하자니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무턱대고 “나는 있지,”로 입을 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이렇게 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초등학생 때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의 나는 미드 NCIS와 CSI에 푹 빠져있었다. 그래서 과학수사대를 꿈으로 삼았는데, 드라마를 유심히 보니 피와 시체를 매일 봐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자신이 없었기에 시선을 옮겨, 범죄 심리학에 빠지게 되었다. 사람의 눈과 입, 몸의 미세함에서 진실을 파헤치는 기술이 매력적이었다.
중학생이 된 후, 정말 많은 심리학 도서를 읽었고 프로이트와 융, 아들러의 이론을 공부했다. 그렇게 사람을 알아가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 상담사를 꿈꾸게 된다. 그때부터 나의 말을 하는 것보다 상대의 눈을 응시하고, 표정을 읽으며, 맞장구치는 것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성공적인 상담까지 경험했으니, 내 방식에 의심은 없었다.
고등학생이 되고 김해로 가게 되었다. 터널 하나만 지나면 있는 곳이었는데, 그 터널이 여간 긴 게 아니었다. 더군다나 9년 동안 다녔던 등굣길을 벗어나는 것 역시 여간 불안한 일이 아니었다.
입학이 확정된 2월, 무슨 리더쉽 프로그램이 3일 정도 진행됐다. 아직도 생각난다. 무슨 자신감 증감이랍시고 오바스러운 대본을 한 명씩 읽으라고 시켰다. 진심으로 토가 나올 것 같아 화장실에 가는 척 자연스레 열외 되려고 했다. 그런데 무슨. 끝까지 나를 기다리는 게 아닌가. 다시 생각해 보니, 나의 고등학생 시절은 이때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 같다.
여하튼, 한 번 다문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등교 이후 말하는 상대라고는 날 도와주던 공익 형이 전부였다.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는데 교실에 앉아 있을 수나 있었을까. 그래, 이 상황은 3년 내도록 이어졌다. 그러니 대학생의 내가 얼마나 놀랐겠는가.
나는 사람이 무섭다. 그래서 ‘듣기’로 도망쳤다.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해도 다들 좋아했다. 내 이야기를 안 해도 괜찮았다. 더욱 적극적으로, 자연스럽게 주제에서 나를 배제했다. 그렇다 보니 “넌 네 이야기를 참 안 한다,”는 그 무엇보다 날카롭게 느껴졌다.
‘그럼 내 이야기를 해도 되나? 그런데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저 질문을 듣고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었다. 이십여 년을 듣기만 한 내가 곧잘 말하길 바라는 건 과욕이지 않을까. 이 글을 쓰는 한 달 동안 그때의 상황을 떠올려보려 애썼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평소처럼 떨떠름한 웃음으로 넘겼던 것 같다. 아마 평소처럼, 가만히 듣고 넘겼던 것 같다.
*혼자가 편하지만 혼자가 불편한 사람의 공간
*네이버 블로그 소개 글
대학생이 되고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했다. 저 소개 글은 블로그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문장이다. 처음에는 재밌는 일이 있으면 일기처럼 올렸는데, 이제는 월말에 몰아 올리고 있다. 정말 많은 친구가 등장하고, 수많은 장소에서의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끔 새벽마다 글들을 돌아보는데, 그 재미가 쏠쏠하다.
사람에게서 벗어나고프면서도 사람이 고픈 그런 아이러니한 존재가, 바로 나다. 그래서 ‘나’는 ‘너’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했다. 정말, 정말 노력했다. 가장 최근에는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평소 눈여겨보던 작가님께 먼저 인사를 드렸다. 먼저! 멀리 가지 않고 당장 일 년 전의 나조차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먼저, 생전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함께 있던 M과 나는 서로의 발전에 놀라워했다.
이따금 성장하는 걸 몸소 느낀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코엑스나 백화점에 다녀오면 다음 날까지 진이 빠진 채 누워만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오히려 먼저 말을 걸고, 대꾸하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 그렇게 ‘나’는 ‘너희’에게 또 한 걸음 다가갔다.
웃긴 건 생전 모르는 사람과는 대화를 잘 이어갈 수 있는데, 친한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또 입을 다문다는 것이다. 이걸 엊그제, 3년 만에 본 K, J와의 저녁에서 느꼈다. 예전보단 나아진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면 또 듣고만 있는 내가 보였다.
물론 당장 수다쟁이가 되기란 어려울 것이다. 아직 여러 난관이 남아 있겠지만, 그중 가장 두꺼운 문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꽤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잘 듣고, 내가 해결해줘야 해.’라는 생각이 강박으로 변질한 것 같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일상과 생각을 나누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만 하다.
기회가 된다면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욕심일 수 있지만, 내 이야기만 한 시간 내내 해보고 싶다. 물론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른다. 아마 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날을 위해, 그 나를 위해, 너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