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에게 사랑이란
1부와 2부에서 휠체어에 앉은 삶에 관해 털어놓았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읽는 모두가 3부와 4부만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이제부터는 지독한 사랑과 평범한 관계, 그리고 꿈이자 일상인 시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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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 시를 보면 또 사랑 시구나, 싶어.”
시시싯의 합평 시간, M이 내 시에 대해 입을 열었다. 딱히 충격이라 할 건 없었다. 1년간 내놓은 시의 대부분이 사랑이었으니 말이다. 다만 생각의 계기는 되었다. 어쩌다 그렇게 사랑, 사랑, 사랑 타령만 하게 된 걸까. 그것도 저릿할 정도로 달콤한 사랑이 아닌, 미처 이루지 못했거나, 미쳐 바라보기만 하는 사랑을.
절절한 사랑 일대기를 톺아보려면 초등학생 때로 돌아가야 한다. 당시 좋아했던 아이가 있었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문방구에서 반지만 봤다 하면 걔를 주겠다고 설쳤다는 엄마의 증언이 넘치는 걸 보니, 꽤 좋아했던 것 같다. 아무튼 반에 잘생긴 아이가 전학을 오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엄마 등에 업혀 등교를 하니, 이유는 모른다, 누군가가 걔랑 걔가 잘 어울린다고 소리쳤다. 어린 마음에 꽤 상처였나 보다, 아직도 기억하는 걸 보니. 그랬다. 나의 첫사랑은 그렇게 실패했다.
남자 중학교였으니 넘어가고, 고등학생, 대학생까지. 몇 번의 두근거림이 있긴 했으나 비슷하게 끝났다. 원인을 생각해 보자면 초등학생은 때는 너무 어렸고, 고등학생 때는 자존감의 높낮이 차이가 심했다. 그렇게 보기만 하다 접기를 한 번, 두 번 반복하다 보니 자연스레 사랑과 먼 사람이 되어 버렸다.
새로운 만남은 불안하고 알던 관계는 멈춘다. 그동안의 사랑은 이 문장으로 축약할 수 있다. 소개를 받자니 내가 어떻게, 같은 생각만 깊어진다. 그렇다고 한 발을 더 내딛자니 나 같은 게, 같은 죄책감만 짙어진다. 그래서 내가 서 있는, 내가 앉아 있는 곳이 지금, 여기다.
대표작으로 불리는, 감사하게도, 『새 (鳥)』는 고등학생 1학년 말 즈음에 적은 사랑 시다. 당시 『황조가』에서 암수 정답게 노니는 꾀꼬리를 바라만 보던 유리명왕에 마음이 동했다. 더군다나, 또 한 번의 두근거림이 모니터 속 한 줄이 되어가고 있던 차였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그때부터 사랑 시만 썼다. 이루어지지 않을 사랑과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에 집착했다. 아주 최근에서야 다른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시시싯의 덕이 크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읽은 『새 (鳥)』는, 새삼 정말 낡은 시라는 생각만 든다. 2018년 언저리, 당시 고등학생이 썼다고 보기에는 문체며 표현이며 무엇 하나 먼지에서 자유로운 곳이 없다. 다시 생각해도 어떻게 2019년 한대신문 문예상에서 가작을 받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친구들은 비익조, 하면 나를 먼저 떠올려준다. 새삼 인복이 좋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나에게 사랑은 한 마리 파랑새다. 그저 가만히 지켜만 보면서 어깨에 와 앉을 행운 따위만 바란다. 나는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흘려보낸 사랑을 후회한다. 그때 알았더라면, 그때 다르게 반응했더라면, 그때, 그때…. 후회만큼 쓸모없는 건 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만 후회하게 된다. 그리고 오지 않은 행운을 원망한다.
나에게 사랑은 두 마리 비익조다. 그저 보고만 있어야 하고, 보기만 해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누군가를 시샘한다. 그러다 문득 혼자임을 실감하고, 실망하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오지 않을 사랑을 원한다.
그동안의 사랑을 한데 엮어 『우리는 왜 일기 속에 편지를 쓰나요』를 냈다. 수신인 없는 편지 따위가, 나에게는 최대한의 용기인 셈이다.
나에게 사랑은. 나에게, 사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