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놀고, 먹고, 쓰고

3. 사람 사는 이야기, 서울

by 하현태



2019년 2월 15일. 우리는 학사복을 차려입고 교실에 모였다. 우리는 한껏 꾸민 채 오랜만에 모여 사진을 찍었다. 막 사진첩을 돌아보니 M과 R, C와 후배 K, 그리고 J와 다른 C까지. 10여 장의 사진이 남아 있었다. 삼 반은 그렇게 교실에서 마지막 단체 사진을 찍고 강당으로 향했다. ‘산쿠미(さんくみ = 3반)’는 그렇게 눈물 반 웃음 반으로 졸업식을 마쳤다.


졸업식이 모두 끝나고, 창원의 어느 고깃집에서 다시 모였다. 반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첫 자리였다. 어느 정도 먹고 마시니 배가 찼고 취기가 돌았다. 그렇다고 헤어지기에는 아쉬움이 훨씬 진했다.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기에 술을 마실 수 있는 노래방에서 흥을 이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K가 스토커를 불렀고, C가 보헤미안 랩소디를 불렀으며, 다른 C가 귀여운 일본 노래를 불렀다. 아, 들어가기 전 빠른 년생 K가 민증을 찾지 못해 한바탕 소동도 있었다.


나는 조용히 맥주를 마시며 구경만 했다. 첫술이었고, 다들 알다시피 주량이 0잔이라, 노래방도 오랜만이었기에 그게 최선이었다. 더불어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그 분위기가 좋았던 거지 친구들이 편했던 건 아니었다. 아무튼 자리가 끝나고 방향이 같은 A와 L를 차에 태워 돌아왔다. 무슨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뭐, 서울에서 보자는 말이었던 것 같다. 만나지는 못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서울에 간 후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아.”


모두가 떠난 후, 집에 돌아오는 차에서 했던 술주정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기 전에 어느 정도의 예상을 해두는 편이다. 그게 행복한 상상이든 끔찍한 망상이든, 떠올려본 후에 반응까지 미리 해둔다. 그런데 정말, 말 그대로, 서울행은 아무런 그림도 그려지지 않았다.

조금 뒤의 이야기인데, 안 그래도 고민이 많은 아빠한테 걱정을 켜켜이 쌓은 거라고 엄마한테 한 소리 들었다. 그냥 술주정이겠거니 하고 넘길 줄 알았는데 다들 걱정이 컸던 모양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한양대학교에 붙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예비 1번으로. 아무튼 갈 곳이 생겼다. 입시가 끝난 시점에서 이것만큼 기쁜 일이 또 있었을까.


2월 28일. 입학식을 했고, 3월 1일부터 3일까지 새터에 갔다. 사진첩을 돌아보니 첫날 찍은 조 단체 사진이랑 술자리 사진 한 장밖에 없다. 낯을 많이 가려서 걱정이었는데, 19학번 동기들은 전혀 그런 것 없이 편하게 다가와 줬다. 3년 동안 교실에서 했던 말보다 3일 동안 숙소에서 한 말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즐거웠다. 술도, 술 게임도, 대화도. 행복했다. 동기도, 새로운 도시도, 이 시간도. 웃긴 일도 있었다. 1999년 12월 14일생. 느린 99년생은 족보를 부숴 먹기 딱 적당했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00년생으로 살았는데, 단 3일 만에 99년생이 되었다. 그래서 나이를 소개한 후 “아뇨, 재수는 아니고 현역입니다.”를 꼭 붙였다. 괜한 자존심에.

그 이후는 뭐, 서울도 사람 사는 도시였다. 한동안 시골 쥐의 서울 나들이가 이어졌고, 운 좋게 트와이스 팬미팅 예매에 성공했다, 새 앨범이 나올 때마다 종류별로 사 모았기에 시험 기간 따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녀왔다. 졸업 후에 들은 이야기인데, 3반 중 나를 싫어했던 애가 그걸 보고 욕을 했다고 한다. 그 애는 졸업식에 오지 않았다. 카톡 계정을 지워서 반 단톡에서도 나갔다. 3년 내내 뒷담화를 일삼더니, 꼴이 좋다.


아무튼, 그랬다. 서울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시끄러웠다. 왕십리에 있는 대부분의 술집을 갔고, 주말이나 공강 때는 성수동과 서울숲의 카페를 돌았다. 코엑스도, 동대문도, 잠실도, 건대도 자주 다녔다. 인문대 밴드 동아리인 다살놀애의 공연을 보기 위해 답사 조 인원과 홍대도 갔는데, 아직도 가끔 생각난다. 축제 때는 아이돌도 보고, 클템 해설위원도 봤다. 정말, 서울은 티비나 유튜브에서나 볼 수 있는 환상의 도시였다.


서울은 동시에 탐욕스러운 도시다. 맛있는 것도, 멋있는 것도 전부 가졌으면서 여전히 바란다. 나는 그런 서울에게 친구를 몽땅 빼앗겼다. 동창들은 방학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고, 졸업 후에는 아예 서울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친구를 만나려면 서울에 가야 한다. 그런 이유로 하루 종일 집에 있거나 좋아서 하는 카페에 가는 게 전부다. 또래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눈 게 어언. 외롭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럼에도 종종 찾아와준 동기들 덕분에 김해 역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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