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본진이 없었다.
여기서 본진이라 단어는 ‘돌아다니지 않고 한 방송을 정해 팬이 되는 방송'을 일컫는다. 딱히 보는 방송 없이 계속 헤매기만 했다. 그때 갑자기 든 생각이 있었다. 이럴 거면 그냥 내가 제대로 방송을 해보는 게 어떨까? 1년 동안 방송을 눈팅하며 봤던 경험과 예전'D'의 방송을 봤던 경험을 살려 진심으로 방송을 한다면 나름 괜찮은 방송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기도 전에 코로나로 인해 심리적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없는 갈증을 계속 느끼고 있었다. 사회에서는 코로나로 인해 밖에서 돌아다니지 말라는 얘기가 많았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눈치가 보이기에 가벼운 전화로 안부를 묻고 말기를 반복했다.
마침 일하는 상태도 아니었기에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그리고 애초에 그렇게 큰 욕심은 없었다. 온전히 내 목적은 나의 삶을 기록하며 내가 하는 얘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출발했다. 무엇을 하는 게 현명할까 생각하던 와중, 책을 읽는 방송을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공부하는 방송을 하면 시청자들에게 좋은 어필을 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OBS라는 송출 프로그램을 통해 첫 방송을 시작했다.
결과는 아무 반응이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시청자들이 오더라도 예전 ‘D'의 방송을 즐겨보던 시청자들이 지나가던 내 닉네임을 보고 잠시 얼굴을 비췄다. 그 상태로도 괜찮았다. 방송을 하던 사람들이 방송을 그만두면 내가 겪었던 경험들이 전부 사라지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게 사라지지 않고 미미하게 남아 자리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와 기쁘기도 했다. 하지만 'D' 시청자들 외에는 크게 반응은 없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내 판단이 어리석기도 했다. 공부하는 방송을 딱히 볼 필요도 없을뿐더러, 게임 방송으로 먹고사는 스트리머들이 천지인데 왜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책 읽는 방송을 선택한 것일까? 기대하지 않았다는 거짓말에 굴복했지만, 일주일간은 계속해서 책을 읽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방송을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이 들 때 마침내 시청자가 찾아왔다. 너무 신기해서 물어봤다. ‘아니 제 방송 왜 보고 있는 거예요?’ 채팅에 글이 올라온다.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조금은 잔잔한 방송을 찾고 있었어요.’ 처음으로 받아보는 채팅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진짜 일궈낸 밭에 노력의 결실을 얻어낸 느낌이랄까? 책을 읽고 난 후에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방송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잠시 멈춘 채 매일매일 방송을 켜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시청자도 방송하는 사람이었고 그 시청자의 시청자도 들어오기도 했다. 조금씩 다양한 시청자가 늘어나면서부터 내가 예전에 경험했었던 것 같은 소규모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하나의 힐링이 되었다. 사람들이 찾아오고 점점 얘깃거리가 많아지다 보니 점점 책을 읽는 비중은 사라지게 되어 아쉬움을 느꼈지만 그래도 다른 콘텐츠를 보고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 시간이 소중했다. 시청자가 팔로우 수가 50명을 넘겼을 때는 남다른 뿌듯함을 느끼고 감사 편지를 써서 톡방에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시청자 수가 한 자릿수를 돌파한 계기가 있다면 바로 트위치를 통한 레이드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한국에서 서비스가 종료된 플랫폼 트위치의 경우 방송을 끝내고 난 후 내 시청자를 다른 스트리머의 방송으로 옮겨줄 수 있는 ‘레이드’라는 시스템이 존재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방송하고 있을 때 ‘D’의 방송에서 같이 놀던 시청자 ‘I’가 레이드를 보내주셨다. 처음 받게 된 레이드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어버버 말을 얼버무리고 있을 때 최대한 그 시청자들을 잡고 싶은 생각에 계속해서 웃긴 얘기들과 말들을 생각해 보았다.
“여러분 지금부터 제가 술방을 하겠습니다”
이미 책과는 멀어진 방송이었다. 사람들을 잡기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이라도 써야만 했다. 마침 그날이 불금이었고, 사람들과 디스코드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중이었고, 시청자의 얘기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감정적인 영역을 조금 끌어 올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처음으로 가졌던 온라인 술자리. 사람들과 함께 술을 한잔 기울이며 온라인으로도 이렇게 술자리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큰 재미를 느꼈다(비록 그다음 날 숙취로 고생했지만). 레이드를 보내주신 분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시청자 수가 한 자릿수를 넘긴 것에 행복함을 느꼈다. 그때부터는 좀 더 시청자들에게 다가가고자 나만의 캐릭터를 만들게 되었고, 가끔은 게임을 하기도 했으며, 사람들이 좋아하는 노래와 만화를 추천받기도 하며, 공부와는 조금 동떨어져 있는 방송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사실에 행복했다. 방송을 통해 계속해서 재미를 느끼던 와중, 예상치도 못한 일이 발생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