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넷플릭스 <27일의 밤>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누가 정하는가
목요일 저녁, 남편과 함께 넷플릭스에서 영화 < 27일의 밤 >을 보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노년의 자유'와 '정상성의 기준'을 묻는 작품이다. 부유한 과부 마르타 호프만(83세)이 딸들에 의해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당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코미디의 외양을 띠지만 영화가 던지는 문제의식은 결코 가볍지 않다.
자유로운 노인, 불안한 자녀들
마르타는 세련되고 활기찬 노인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인생을 즐긴다. 남편을 잃은 후에도 여행을 즐기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때로는 젊은 연인과의 관계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딸들의 눈에는 그 모습이 '위험한 일탈'이다. 딸들은 어머니의 자유분방한 행동을 '정신 이상'으로 판단하고, 결국 그녀를 법원을 통해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 한다.
이때 법원이 임명한 정신감정 전문가 레안드로(다니엘 핸들러)는 그녀의 정신 상태를 평가해야 한다. 그는 마르타가 진짜 환자인지, 아니면 단지 자유롭게 사는 노인인지를 평가해야 한다. 그는 점차 확신하지 못한다. 마르타가 정말 비정상인가, 아니면 사회가 노인의 자유를 견디지 못하는 것인가. 그 과정에서 오히려 레안드로 자신이 '정상적 삶'이란 무엇인지 되묻게 된다. 영화는 레안드로의 시선을 따라가며 관객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
'정상'의 기준은 누구의 시선인가
< 27일의 밤 >은 코믹한 대사와 따뜻한 장면 속에서도 사회적 편견을 정면으로 비판한다. 젊은 이는 자유를 누릴 수 있지만, 노년의 자유는 종종 '위험'이나 '치매'로 간주된다. 같은 행동도 나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현실, 영화는 이 모순을 예리하게 드러낸다.
딸들은 "어머니를 위해서"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러나 그 '위함'에는 통제의 욕망이 숨어 있다. 영화는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어떻게 개인의 삶을 억압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르타는 병든 노인이 아니라, 여전히 욕망하고 사랑하며 선택할 줄 아는 인간으로 그려진다.
그녀의 대사는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나는 아직도 나를 사랑할 줄 안다. 그게 왜 문제지?"
이 한마디는 영화의 핵심을 압축한다.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회, 그 사회의 틀을 넘어서는 마르타의 목소리는 낯설지만 통쾌하다.
아르헨티나에서 한국으로... 노년을 대하는 태도
아르헨티나의 이야기이지만, 영화가 그려낸 상황은 한국 사회에서도 낯설지 않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노인'을 보호의 대상, 혹은 관리의 대상으로 규정한다. 부모가 홀로 살면 "위험하지 않나", "치매는 아닌가" 걱정하지만, 그 속에는 '노인이 독립적으로 살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특히 여성 노인의 자유는 훨씬 더 좁은 틀에 갇혀 있다. 혼자 여행하거나,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 '철없는 행동'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비정상일까?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 놓은 정상의 기준이 너무 좁은 건 아닐까?
영화를 보며 문득 내 어머니 세대를 떠올렸다. 자녀 곁을 떠나 홀로 살기를 선택한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외로움'이나 '불안'이란 단어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자유를 향한 용기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용기를 자녀 세대인 우리는 얼마나 존중하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존엄은 스스로 선택할 권리에서 나온다
< 27일의 밤 >이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노년의 삶도 여전히 '자기결정권'을 가진 주체적 삶이라는 것. 나이 듦은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의 삶을 더 깊이 통제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기다.
마르타의 행동은 사회의 잣대에 맞춰보면 엉뚱하고 위험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살고 싶다"라는 강렬한 의지가 있다. 그녀는 늙었다는 이유로 자신의 세계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 모습은 오히려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나이 들어야 하는가'를 묻는 거울이 된다.
영화 속 레안드로는 결국 마르타를 '정상'으로 판정한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사회적 기준에 맞춰 살아온 그 역시, 마르타를 통해 진짜 자유가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우리 사회가 배워야 할 노년의 얼굴
< 27일의 밤 >은 웃음과 따뜻함 속에 날카로운 질문을 품은 영화다. 노화, 자유, 가족, 존엄이라는 주제를 유머스러워하게 풀어내며, 관객에게 스스로의 가족관계와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노년을 동정이나 부담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대신,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는 사회. 그것이 영화가 제안하는 새로운 관계의 모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도 저렇게 살 수 있을까?"
남편은 말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은 아니더라도 건강이 담보 된다면 지금의 부모님 세대보단 더 유연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 거 같아."
누군가의 허락 없이, 나답게 늙어가는 삶.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노년의 존엄 아닐까.
< 27일의 밤 >은 단순히 노인 문제를 다룬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맞이할 '삶의 마지막 계절'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묻는 영화다. 자유롭지만 존엄하게, 혼자지만 당당하게, 나이와 상관없이 스스로 선택하고 살아갈 권리. 마르타의 모습은 나에게 '노년의 새 얼굴'을 보여주었다. 그 단순한 진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오래 남는다.
마르타의 자유분방한 웃음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당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있나요?"
그 질문이 귀에 남아, 영화의 여운이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https://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3181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