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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평균값, 내면의 소리를 듣는 일

브런치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라는 이름표

by 김남정

길을 걸을 때마다 나는 '평균값의 법칙'을 떠올린다. 어떤 날은 마음이 이유 없이 벅차오르고, 어떤 날은 괜히 우울한 기운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오래 걸어보면 알게 된다. 밝은 날과 어두운 날이 반복되며 결국 마음의 선도 어느 지점으로 수렴한다. 좋아하는 일을 향한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다. 매일 들뜨고 매일 감동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 안에서 의미 있는 순간이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을 조용히 기다린다. 그 기다림이 쌓이며 결국 내 삶의 평균이 만들어진다.


최근 읽은 책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될래>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연주는 실력을 보여주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멋진 곡을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처음 그 구절을 읽었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누군가 '이렇게 치고 싶다'라고 말하면 당연히 누군가의 칭찬, 감탄을 기대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선생님은 연주는 타인의 평가를 향한 손짓이 아니라, 내면 깊은 곳에서 조용히 올라오는 욕망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문장을 곱씹다 보니 자연스레 내 글쓰기가 떠 올랐다. 돌아보면 나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글을 써온 것이 아니었다. 조용히 나를 들여다보고 싶어서, 말로 다 설명되지 않는 마음의 흐름을 붙잡고 싶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특별한 목적이 없다 해도, 좋아하는 일을 향한 이유가 내 안에서 분명히 존재했다. 그리고 그 느린 쓰기의 길을 걸어오면서, 오늘 나는 작은 선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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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 브런치 팀으로부터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이름표를 받은 것이다. 큰 타이틀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오래 기다리던 햇빛 한 조각처럼 느껴졌다. 조용히 써오던 글들이 하나의 분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면서도 따뜻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누군가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마음을 울렸다.


무엇보다 이 성취는 결코 혼자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글을 읽고 공감해 준 독자들, 함께 글의 길을 걷는 글벗들, 매일의 생활을 지켜보며 묵묵히 응원해 준 가족 덕분이다. 좋은 날과 덜 좋은 날이 반복되는 동안에도 내 글을 기다려준 사람들이 있었고, 그 마음들이 나의 평균값을 어느 순간 눈에 띄지 않게 끌어올려주었다. 내가 비틀거릴 때도 기다려주고, 작은 문장 하나에도 따뜻한 마음을 보내준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이 내가 있다.


좋아하는 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결국 단순하다. 그 일이 남이 아니라 '나'에게 닿기 때문이다. 누가 읽어줄까 걱정했던 마음도, 이 길이 맞나 흔들리던 순간도 결국은 내면과 대화하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은 늘 빠르지 않지만, 기다림 속에서 나는 조금씩 변했다. 나는 쓰는 사람으로, 읽는 사람으로, 그리고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하는 사람으로 성장해 왔다.


오늘의 길은 어쩌면 특별할 것 없는 하루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디작은 한 걸음이 모여 결국 평균을 올리고, 그 평균이 어느 순간 나를 또 다른 지점으로 데려다준다. 누가 보지 않아도, 누구의 박수가 없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향한 마음이 계속 길을 만들어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기다림과 성찰이 쌓여 만든 나의 길 위에서, 나는 또 한 번 조용히 나를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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