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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

사랑하는 일, 나답게 살아내는 일

by 김남정

교과서 사이에 읽고 싶은 책을 끼워 넣고 몰래 읽던 학생이 바로 나였다. 요즘 예전의 나를 하나씩 되짚어보며 문득 떠올렸다. 어떤 일에 푹 빠지면 정신을 못 차리는 기질이 분명 내 안에 있었다는 걸. 한번 좋아지면 질릴 때까지 반복해 듣던 노래들, 그 시절의 나는 늘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아이'였다. 그 집중의 방향이 공부가 아닌 책과 노래 듣기였다는 차이만 있을 뿐, 흡수력이 좋은 아이였음을 이제야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세월이 흐를수록, 오래전 그 아이가 가르쳐준 '몰입의 힘'이 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비로소 깨닫고 있다.


'왜 그토록 어떤 것에 빠졌을까?'생각해 보면, 아마도 그때부터 나는 나를 이끄는 무언가 내면의 질문과 감각을 따라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은 계절의 끝 풍경들에서 발걸음이 멈출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마음속에서 조용히 올라오는 질문 때문이다. 내 마음을 오래 붙잡는 것은 톨스토이가 동화 속에 남긴 세 가지 질문이다.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인가?"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오랫동안 알던 구절인데, 요즘은 마치 새 문장을 읽듯 가슴 안으로 들어왔다. 인생의 속도가 예전보다 조금 느려지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길어지며 이 질문들이 새롭게 들린 것이다.


걷다 보면 과거의 나와 내가 한길에서 마주칠 때가 있다. 교과서 속 책을 몰래 읽던 소녀, 딸 둘을 키우며 정신없이 달리던 엄마, 그리고 지금은 각자의 인생을 가는 딸들을 둔 부부로 지내며 다시 나를 발견하는 중년의 나. 서로 다른 시기의 내가 겹쳐지며 묘한 떨림이 찾아온다. '과연 지금 이 순간을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따라온다.


가장 중요한 때는 '지금'이라는 사실


우리는 늘 미래를 향해 움직인다. 오늘을 희생해 내일을 준비하고, 현재의 감각을 밀어두며 언젠가의 성취를 기대한다. 그래서 '지금'은 자꾸만 뒤로 밀린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말한다. 우리가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언제나 '지금'이라고.


이 사실을 나는 글을 쓰면서 더 강하게 느낀다. 요즘 나는 '읽고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오래된 소망을 조금씩 실천하는 중이다. 빠르지는 않지만 매일 읽고, 매일 쓴다. 누군가의 창작물을 매일 읽고, 그에 대한 내 생각과 감정을 문장으로 짓다 보면, 비로소 '창작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주 얕게나마 알 것 같다. 말하자면, 매일의 글쓰기는 나를 현재에 단단히 묶어두는 행위다. 언젠가가 아니라 지금 쓰기. 나중이 아니라 오늘 읽기. 지금에 충실하려는 마음이 창작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가장 중요한 때'를 조금 더 의식하며 살려고 한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을 때 핸드폰을 뒤적이지 않는 것, 산책길에서 한 걸음이라도 더 온전히 발바닥 감각으로 느껴보는 것, 커피 향이 피어오르는 찰나의 순간을 허투루 넘기지 않는 것.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감각을 회복하는 작은 습관들이다. 이 작은 순간들이 모여 하루를 만들고, 또 그 하루들이 모여 내 삶이 된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나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


'가장 중요한 사람'에 대한 질문도 다시 보게 됐다. 과거엔 누군가를 돌보고 책임지는 데 많은 힘을 쏟았다. 어쩌면 나 자신은 늘 뒤에 있었다. 그러나 인생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조용히 깨닫게 된다. 내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내가 나를 돌보고, 나의 상태를 살피고, 나에게 따뜻이 말 걸어주는 일이 다른 어떤 관계보다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 요즘의 나는 조금씩 그것을 배우는 중이다. 걷고, 읽고, 쓰는 일은 결국 '나를 다시 데려오는 일'이었다.


아이들이 독립하고 집안이 고요해진 뒤로, 인간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인연이나 언젠가 다시 이어질 관계들을 종종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말한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언제나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라고. 우리가 사랑을 건네고 행동할 수 있는 대상은 결국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편과 함께하는 일상에서 별 의미 없는 대화를 오래 나누고 느긋한 식사를 하며 생각한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기울이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을 읽고 응원해 주는 독자들, 글벗들, 가족들도 내 현재를 지탱하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브런치 팀으로부터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이름표를 받은 날, 기쁨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고마움이었다. 나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읽고 기운을 나눠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작은 성취가 가능했다. 가장 중요한 사람은 결국 '지금 나와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사랑하는 일, 그리고 나를 성장시키는 일


그리고 마지막 질문.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톨스토이는 그 답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했다.


사랑은 거창한 행동이 아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다하는 것. 그리고 때로는 나에게 마음을 다하는 것. 이해하려 애쓰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작은 선택의 바탕을 '따뜻함'에 두는 것이다. 선행(善行)이라는 말은 거창한 봉사가 아니라, 상냥한 한마디, 좋은 표정,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자세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기에 나는 한 가지를 더 더하고 싶다.

'나 자신을 성장시키는 일'도 사랑의 한 종류다.


필라테스에서 낯선 동작을 시도 했을 때, 몸은 솔직하게 반응했다. 근육통이 심해 하루쯤 쉴까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결국 또 해냈다. 조금씩 나를 괴롭히고, 조금씩 한계를 마주하고, 또다시 회복하는 과정, 그 속에서 나는 단단해졌다.


글쓰기도 그렇다 꾸준한 창작은 근육을 키우듯 마음의 힘을 기르는 과정이다. 매일 마주 앉아 문장과 씨름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조금 더 '내가 되고 있다'는 감각이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가능하다면 평생 글을 쓰며 살고 싶다. 글쓰기라는 예술 속에서, 조금씩 더 단단하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톨스토이의 질문들이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처럼 다가온다.


나는 조금 느리지만 꾸준히 읽고, 쓰고, 움직이며 나를 돌본다. 그 과정에서 길 위의 바람과 빛처럼,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발견하게 된다. '길 위에서 나를 만난다'는 말은 결국 이런 의미일 것이다. 삶의 질문에 서둘러 답을 찾지 않고, 지금의 순간 속에서 나를 천천히 만나 보는 일.

걷는 나도, 쓰는 나도, 다시 시작하는 나도 모두 그 길 위에서 조금씩 자라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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