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에서 자유로, 자유에서 온전함으로
박완서는 어느 산문에서 "붙잡으려는 마음이 무겁게 한다."는 말을 남겼다. 나는 이 문장을 오래 곱씹었다. 삶을 돌아보면 내 손을 무겁게 했던 건 언제나 '집착'이었다. 버리지 못한 물건들, 이해받고 싶던 욕망, 이미 지나간 시간에 대한 미련들. 그것들은 모두 내 마음에 작은 돌처럼 쌓여,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었다.
최근 나는 그런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다. 서랍 속에 오랫동안 간직했던 물건들을 정리했다. 이런저런 사연으로 내게 온 추억의 물건들이 이젠 예쁜 쓰레기가 되었다. 그렇게 작별을 하고 나니 그 물건들을 오래 붙잡고 있었던 내 마음이 깃털 구름처럼 가벼워졌다. 물건도, 욕망도, 미련도.... 꼭 쥐고 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기억은 내 안에 이미 충분히 남아 있음을 알았다.
삶은 강물 같아서, 움켜쥐면 흘러가 버리고 손을 피면 시원히 감싸 안긴다. 나는 이제 강물 속에 손을 내민 채, 흘러가는 것을 흘려보내고 남는 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작은 일상 속에서도 다짐한다. 좋은 걸 먼저 하고 살기로 했다. 김밥을 먹을 때 가장 좋아하는 속은 신선한 야채, 그다음은 불고기, 마지막은 참치다. 예전에는 좋아하는 걸 아껴두었다가 끝에야 먹곤 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먼저 좋아하는 걸 집어 들며 "이 순간이 가장 좋다"는 마음을 맛본다. 삶도 다르지 않다. 기쁨을 미루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누리는 것이다.
집착하지 않는다는 건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무심함이 아니라,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한 준비일지도 모른다. 관계에서도, 글에서도, 꼭 내 뜻대로 붙들려하지 않을 때 오히려 더 진실한 모습이 드러난다. 브런치에 글을 쓰며 나는 그 사실을 자주 체험한다.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으면, 문장은 의외로 더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어쩌면 집착을 놓는다는 건 '상실'이 아니라 '회복'이다. 가득 찬 서랍을 비워낼 때 남는 건 공허가 아니라 숨 쉴 공간이다. 지나간 시간을 붙들지 않을 때 오는 건 허무가 아니라 현재의 충만함이다.
오늘도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모든 것으로부터 집착하지 않는 것이 내 삶의 목표라고.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도달해야 할 거창한 이상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매일 조금씩 연습하며 살아가는 아주 사실적인 길이라고. "비워야 채워진다. 집착을 놓아야 온전히 손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