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Fika)에서 배우는 오후 세 시의 마음
커피를 좋아하지만 커피에 대한 지식은 얕다. 내가 아는 건, 커피는 고도가 높을수록 맛있다는 사실 정도다. 1900m 이상에서 재배한 원두가 가장 맛있다고 한다. 고도가 높으면 재배면적이 좁고, 품종도 희귀해진다. 그래서 비싼 원두를 마실 때면 조금 더 집중해 맛을 음미하게 된다.
하지만 나의 커피 경험은 꼭 비싼 커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집에서 내려 마시는 원두커피, 드립팩, 혹은 커피 머신으로 만든 따뜻한 라테 한 잔. 커피는 나의 하루를 조금 더 여유롭게 만들어주는 매개체다.
얼마 전 스웨덴의 커피 문화 '피카(Fika)'에 대해 읽었다. 스웨덴 사람들은 하루 중 일부러 커피를 마시는 시간을 갖는다. 단순히 카페인 충전이 아니라, 삶의 속도를 잠시 늦추고 대화와 사색을 나누는 시간이라고 했다. 오후 세 시가 되면 친구나 동료와 함께 커피와 작은 디저트를 곁들이며 '피카 타임'을 갖는다. 그 이야기를 읽으니 마치 스웨덴의 오후 세 시 햇살 아래 앉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나만의 커피 타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예전엔 점심 이후 커피를 즐겼지만 요즘은 오전 열시다. 오후에 마시는 커피가 수면에 방해를 주기 때문이다. 간단한 아침을 먹고 남편 도시락을 싸고 운동을 하는 아침의 빠른 템포를 한 잔의 커피로 마무리한다. 커피를 내리는 순간 마음의 고요를 느낀다. 글이 막힐 때, 생각이 꼬일 때, 커피 향으로 숨을 고른다. 그 향이 내 머릿속의 먼지를 털어내는 것 같다.
요즘 우리나라 커피 문화가 발전한 것도 반갑다. 예전에는 커피를 사치처럼 여겼지만, 지금은 집에서도 저렴하게 좋은 원두를 구할 수 있고, 카페마다 개성 있는 메뉴를 낸다. 덕분에 커피 한 잔이 단순한 음료를 넘어, 나를 잠시 멈추게 하는 작은 의식이 되었다.
가끔은 남편과 일부러 카페에 간다. 집에서 내려 마시는 커피도 좋지만, 새로운 공간에서 마시는 커피는 또 다른 감각을 깨운다. 익숙하지 않은 의자에 앉아 사람들을 바라보다 보면 내 생각이 확장되는 기분이 든다. 각자의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나도 내 삶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된다.
한 번은 글이 도무지 풀리지 않아 집 근처 작은 카페로 갔다. 그곳에서 마신 커피는 특별할 것 없는 아메리카노였는데,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 카페 주인의 느긋한 손길, 벽에 걸린 작은 엽서 하나까지가 모두 나의 시간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날 썼던 글은 평소보다 훨씬 가볍고, 긍정적이었다. 마치 커피 향이 내 글에 스며든 것 같았다.
커피는 나에게 작은 '멈춤'이다. 순간을 길게 늘여 앉아 나를 바라보게 한다. '피카'의 의미가 바로 그것 아닐까.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일부러 삶을 천천히 마시는 것, 하루 세 번 밥을 먹듯, 하루 한 번은 나를 위해 커피를 내린다.
가끔은 마음에 드는 원두를 사 와서 주말 아침에 남편과 나누어 마신다.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다 보면 지난 한 주가 한결 부드럽게 정리된다. 이렇게 커피는 내 하루를 정돈하는 의식이자, 나를 현재로 붙잡아 두는 닻이 된다.
오늘도 나는 커피를 내린다. 드립포트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를 듣고, 거실 가득 퍼지는 향기를 맡으며, 내 안의 생각들이 조금씩 풀려나가는 걸 느낄 것이다. 커피는 결국 나에게 이런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 이 순간이 네 것이다."
한 잔의 커피 속에서 나는 오늘의 나를 발견한다. 뜨거운 향기, 오전의 열기를 낮춰주는, 그 사이에서 내 삶도 조용히 익어간다.